2022.10.27
※ 이번 글은 아래 링크의 글과 바로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fb1ddbe37b19479/11
'반려동물 초상화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는 성공적이었다. 애초 기획보다 시간이 오래 (거의 밤 11시 무렵까지!) 걸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과정과 결과가 훌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시간이 긴 것도 이해할만하다. 참여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관계형성 서클-을 가졌다. 서클을 통해 그림에 자신없지만 큰 맘 먹고 도전했다는 참가자부터 질병으로 인해 안락사 날을 받아둔 강아지의 보호자까지 다양한 주민을 만났다.
관계형성 서클 후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이 초상화 완성도를 높이려고 시간을 한참 넘겨가며 그림을 지도해주셨다. 좀 과장하면 내 강아지 초상화의 절반은 선생님이 그려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상화 그리기 선생님 두 분은 우리 마을 상가와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각각 같은 이름의 미술스튜디오를 운영하신다. 그리고 한 분은 여기 살고 있는 주민이다. 마을을 위한 행사라 생각해 강사비도 저렴하게 받고 서클부터 수업까지 기꺼이 수고해 주셨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두 분이 기꺼이 수락해 주신 덕에 성공적으로 <반려동물 초상화 그리기 원데이클래스>가 진행될 수 있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행사 전 조합과 협의를 하는 과정이 미묘하게 불편했다.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던 조합 사무국의 태도가 미온적으로 바뀌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행사진행에 관한 얘길 하면 '그런 것도 필요해?', '요청하니까 체크는 해줄게'라는 식이었다. 나는 우리가 파트너관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황이 주민센터(사무국)에 문의하는 민원인(나와 멍냥의 임원들)처럼 흘러갔다. 사무국에 다른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어쩌겠나?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은 것을...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은 사무국의 거리감 있는 태도가 아니라, 행사의 지원 주체가 변경된 것이다. 분명 나와 멍냥의 임원들은 상임이사 JW, 팀장 HC, 즉 사무국과 대화를 하고 약속을 했는데, 공동체활성화위원회(이하 공활위)의 위원장이자 조합이사인 AU가 등장한 것이다. 이사 AU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행사는 원래 공활위 몫이다. 그러니 사무국이 아니라 나와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했다. 당시 조합의 구조, 각 위원회의 역할이나 인적구성을 잘 몰랐던 나는 이 인터셉트가 좀 이상했지만, 여기는 이렇게 굴러가나 보다 하고 말았다. 누가 되었건 우리는 조합과 함께하는 행사라는 타이틀만 가지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사 AU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기획한 행사에 작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 AU는 입주 초 '이음공작단'이란 마을 내 단체를 이끌었다. 이음공작단에서 <이웃집살롱>이라는 타이틀로 소강연을 두 번 했었다. 두 번째 소강연의 주제가 <동물과 살아가는 마을이야기>였는데, 여기서 '동물'은 들개(유기견)다. 이해는 간다. 당시 단지 주변은 물론 단지 안까지 떠돌이개들이 들어와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선 조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사는 강아지들의 마을카페 출입문제도 해결 못한 동네에서 들개와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흠.... 그리고 쪼잔해서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이 강연에 우리 동아리를 초대하지 않은 것도 서운했다. 하나뿐인 반려동물 동아리고 활동도 활발히 하는데 말이다. 내가 이 행사를 기획했다면 제일 먼저 반려동물 동아리를 초대해 의견을 나눴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선 내 동물(그러니까 나의 반려견)이랑 여기서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판에 초대받지 않은 <동물과 살아가는 마을이야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소인배다.... 그래서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행사자체는 의미 있고 유익했을 거라 생각한다. 주제가 내 일상에서 멀어서 그렇지. 가난을 못 벗어난 60년대 대한민국에서 '아프리카 구호 바자회에 참석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은 광경을 본듯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런 정도의 마음으로 이사 AU와 초상화 그리기 행사 며칠 전에 급박하게 논의를 했다. 이미 모든 행사준비가 끝난 상태라 AU는 지원승인만 하면 되었다. 그때 나는 AU가 강사비와 물품지원을 결정하며 못내 아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의견을 보태고 참여하고 싶어서 그러나? 싶었다. 그런 거면 좋은 신호다. 조합의 이사님이 그런 의지를 가졌다면 나쁠 게 없지 않나. 어쨌거나 초상화 그리기 행사는 최초 기획대로 진행하고 두 번째 행사인 반려동물 건강관리법 특강부터는 같이 논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서 살짝 번거로워졌다. 전에는 사무국에 전화해 팀장 HC에게 기획서며 지원금 신청서를 보내고 문의사항을 확인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뀌고는 공활위 이사 AU와 사전회의, 서면보고를 하고 난 후 결제? 결정? 이 떨어지면, 사무국 팀장 HC와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의하는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단계가 늘어나고 상하관계가 생긴 것이다. 상임이사 JW가 전폭적인 지원을 면전에서 약속한 행사인데 말이다. 이 과정은 스트레스였다. AU와 직접 소통하는 나도 번거로웠지만, 서류부터 행사 관련 제반사항들을 관리하는 멍냥임원 HK가 굉장히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무슨 국가지원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사무국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다. 공공기관이 지원금을 주는 사업도 일단 서류통과되고 나면 가이드라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 번의 행사를 약속했고, 그것을 무사히 치러내는 게 중요해서 이 모든 과정을 감내했다.
첫 행사는 나름 성황리에 끝났지만, 본 게임은 두 번째 행사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혈압이 오른다. 나와 조합의 악연도 이 무렵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조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이제 대의원 명단부터 조합의 조직구성, 구성원들의 성향과 성격, 직업과 드러난 정보를 모조리 확인했으며, 동네의 세세한 것까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 하면 조합의 태도, 결정, 사업 중에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인배라 납득가능한 논리적 답을 찾지 못하면 잠을 못 잔다. 그래서 직접 답을 구했다. 아주 열심히, 생업도 살짝 미뤄가면서....
문득 그런 영화가 떠오른다. 순진한 이방인이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뭣 좀 해보려고 나섰다가 마을을 틀어쥔 기득권 원주민들에게 호되게 당하고는, 시민운동가(내지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그런 영화말이다. 지금의 내가 딱 그 꼴이다.
결론은 심히 단순한다. 힌트는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온 '악의 진부함(혹은 비속함)(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이다. 평범한, 그러나 사유하지 않고 사유할 줄 모르는 이웃이 권력을 쥐었고, 그들의 무능에서 나온 결정이 마을공동체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서서히 훼손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에 영화 속 빌런처럼 사악하고 간교한 악당은 없다. 현실의 빌런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이웃, 때때로 정의롭고 존경할만한 면이 있다고까지 여겨지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으로 생긴 상처와 고통, 손해는 영화만큼 극적이고 아프다. 가장 속상한 건 그들이 외면한 나의 이웃이 마을에 대한 애정을 잃고, 떠날 결심까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