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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코로나가 덮친 그해 어버이날

그림출처:네이버 이미지

  황사가 온 세상을 뿌옇게 뒤덮은 오월의 어느 날 오후, 그녀는 허고개를 넘고 있었다. 구순을 넘기신 친정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이다. 그날이 어버이날이기에 그녀 또한  효도라는 것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친정의 파란 대문이 보이자 중2 아들 녀석이 “할머니”하고 뛰어 들어간다. ‘덜컹’ 현관문 소리와 함께 흰머리가 희긋희긋 하신 백발의 노인이 뜻밖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오야요”하며 손주를 가슴 가득 안는다. 그 뒤를 따르는 그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손주의 손을 잡고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신다.

  그 옛날, 여고생이던 그녀가 집안을 들어설 때의 건장하던 여인은 어디를 가고, 검은 반점이 군데군데 퍼진 얼굴엔 주름살이 고랑을 타듯 깊게 파인 왜소한 노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의 손을 잡은 그녀 또한 그 옛날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마주하고 있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기성을 부리던 그 해 5월,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으로 가족 모임은 다음 해로 미루고, 팔 남매 각자 시간을 조정하여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막내인 그녀는 이번 어버이날 어머니께 ‘통목욕’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결혼을 한 후로 어머니의 목욕은 줄 곳 막내인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목욕탕을 못 간 것이 한해를 넘기고 있었다. 말은 안 하셨지만 씻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몸이 얼마나 찌푸둥 하고, 근질근질하시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목욕을 해 드릴 참이다. 

  몇 칠전부터 힘이 빠지고 만사가 귀찮아 집 밖을 나가기 싫다는 할머니를, 아들 녀석이 팔짱을 끼며 “할머니 우리 집 안 가시면 저도 안 갈 거예요. 제발 같이 가셔요”하며 할머니 발에 신발을 억지로 신겨드린다. 할머니는 손주의 손에 마지못해 이끌리듯 대문을 나서신다.

  그날 밤 어머니는 허리춤의 빨간 주머니에서 몇만 원을 꺼내시며 양념 통닭을 시키라고 했다. 오랜만에 양념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셨지만, 내심 외손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시켰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는 욕실로 가서 따뜻한 목욕물을 받은 후 어머니를 부른다. “엄마 통속에서 때 좀 불리고 계세요”하며 욕실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설거지를 대충 끝내고 욕실 문을 열어보니, 뿌연 연기 사이로 가을 햇살에 잘 익은 홍시 같은 빨간 엄마의 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등장에 어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손주들이 할매 냄새난다고 할까 봐 더 자주 씻는다. 때는 별로 없을 테니, 힘쓰지 말고 조금만 밀어라.”때를 미는 딸이 힘들 까 봐 매번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는 엄마의 말에 관심이 없는 듯 양손에 때 타월을 끼며 “한해 묵은 때가 얼마만큼 있는지 한번 밀어보자”하며 등부터 밀기 시작했다. 양손이 밀면 미는 대로 움직이는 축 쳐진 피부와 검은 반점이 군데군데 퍼진 협소한 등짝을 보니 가슴이 메여왔다. 우리는 그 등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대고 잠이 들었던가? 그곳은 한없이 든든하고 포근한 낙원이었다.

  목욕을 끝내고 온몸에 로션을 발라 드리며 “엄마 나이 들면 몸이 건조해지고 가려움증이 생겨요. 몸 씻고 나오면 꼭 로션 발라”라고 말씀드린다. 로션이라도 발라야 축 쳐지고 야윈 어머니의 몸이 덜 초라해 보이고, 아직까지는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이 보고 싶은 내 욕심을 숨긴 말이었다.

  어버이날을 챙기던 그녀가 어느새 어버이가 되었다. 작년까지는 딸이 카네이션을 만들고, 학교에서 억지로 쓴 아들의 편지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어버이날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억울한 마음에 씩씩거리며 아이들을 부른다. “이번에는 카네이션도, 편지도 없네. 엄마 좀 서운하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엄마 바빴어요.” “엄마 지금 편지 쓸게요”하며 핑계를 댄다. 때늦은 아이들의 행동에 눈꼬리를 살짝 흘겨보지만, 그녀 또한 부모님께 다르지 않았다. 무심하게 지나간 어버이날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어쩌다 기억한 날에는 돈 몇 푼을 드리고 생색을 냈다. 자식을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부모가 되어 보니 서운함도 알아가고 무심함도 알아간다.

  몇 칠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작년과 달리 기억력이 흐려진다고 하며 치매를 의심했다. 나는 언니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며 “언니 엄마 연세가 구십이다. 기억력이 좋을 수가 있나? 건망증이겠지. 걱정하지 말자”라고 말했지만, 뭔지 모르게 찝찝했다. 엄마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꼬리를 물어 지나온 날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껴 산다고 엄마 옷 살 때마다 비교해가며 싼 거 사드리고, 행사가 있을 때 큰돈 쑥쑥 내보지 못했다. ‘그것이 뭐라고 그렇게 아껴 살았던가? 엄마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엄마를 위하는 마음 뒤에 내 욕심이 보였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보면 늦지 않았다. 고맙게도 지금 엄마가 살아계시지 않은가.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다행히 치매 검사 결과 엄마는‘건망증’이라고 했다.

  목욕을 끝내고 거실로 나오시는 엄마를 소파에 앉히고, 눅눅하게 불려진 손과 발톱을 깎아드렸다.  오랜 세월 고생의 흔적이 발바닥 군데군데 굳은살을 남겼고, 손등은 검버섯이 덮쳐 마치 나무껍질 같았다. 엄마 몸의 일부인 손과 발이었지만 '살아온 세월 동안 자식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그런 엄마의 손과 발에 조금의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모녀는 거실 바닥에 나란히 눕는다.  “엄마, 오랜만에 목욕하니 개운하지”라고 물으니 “야야 말이라고 하나. 니 없으면 누가 내 몸 씻겨 주겠노. 늦은 나이에 니를 낳아서 이렇게 호강한다”하시며 활짝 웃는다. "목욕"이라는 작은 것에도 이렇게 좋아하시는 엄마를 보며, 내가 준비한 '어버이날 선물이 꽤 괜찮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웃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덮친 어버이날은 모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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