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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엄마의 절친 텔레비전

  “띠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자마자 “야야~ 큰일 났다.” 전화기 너머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무슨 일 있나? 어디 아프나?”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아 엄마 말을 가로질러 다그쳐 묻는다. “테레비를  켰는데 목소리만 들리고 사람이 안 보인다. 고장이 났나?  우짜노?” 마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사람처럼 축 처진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흐른다.

  엄마에게 텔레비전은 아침에 눈을 뜨며 마주하고 잠들기 전까지 바라보며, 긴 겨울밤은 잠든 후까지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이다. 자식들이 하나둘씩 집을 떠나면서 그 공간에 텔레비전이 비집어 들어왔고, 십 년 전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시면서 그 큰 빈자리의 외로움을 텔레비전이 채웠다. 그때부터 엄마의 일상에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절친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 마음을 아는 막내딸이기에 “엄마 퇴근하고 오늘 밤이라도 갈 테니깐 걱정하지 마라.” 말하니 “밤늦은 시간 왔다 갔다 하면 니가 얼마나 피곤할꼬? 그래도 꼭 온다고 하면 기다릴게”하며 걱정 서러움과 기대감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신다.

  전화를 끊고 퇴근 후의 일정을 정리해본다. ‘퇴근하여 아이들 저녁밥 챙겨주고 친정을 갔다 오면 밤 11시를 훌쩍 넘길 텐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서툰 밤 운전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불면증을 앓고 있는 엄마의 긴 밤을 생각하니 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야야 아랫집 형부가 와서 테레비를 봐주고 갔는데 그래도 안 나온다. 웬만 한건 형부가 고쳐 주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고장이 났네.”라며 답답해하신다. “엄마 알았다. 어떻게든 고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엄마 마음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조급한 전화벨이 또 울릴 것 같아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 일정이 있어 힘들다는 반응이다. 어쩔 수 없이 해당 유선방송국에 전화를 했다. 당일 출장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간절하게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방송국에서 오늘 방문을 해줄 수 있고 무료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조금 후, 유선 기사님으로부터 오후 5시~6시 사이 방문 가능하다는 문자도 받았다. “휴우~”그때서야 마음이 놓았다. 

  오후 5시를 조금 넘기자 엄마의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야야~ 방송국에서 왔다는 사람이 테레비 잘 고쳐 주고 갔다. 아이고 좋다. 테레비 잘 나온다.”라며 어린아이 마냥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엄마 오늘 밤 테레비 볼 수 있어 좋겠네.” 말하자 “그래 좋다. 니가 제일 효녀다.” 하며 전화를 끊으신다. 나는 유선 방송국의 전화 한 통으로 ‘효녀’가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 엄마에게는 큰 불편함이고 외로움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 잇몸에서 피가 나고 아프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토요일 오전 진료를 예약하고, 금요일 밤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엄마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민경아 전원일기 안 하나?”하시며 손녀를 부른다. 친정 텔레비전 리모컨은 간단하여 엄마가 조작 가능하지만, 우리 집 리모컨은 복잡하여  매번 손녀 불러 텔레비전을 틀어달라고 했다. 딸아이는 리모컨을 들고 ‘Btv’에 ‘전원일기’를 말하니 여러 채널에서 하루 종일 방영을 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었다. 전원일기‘김 회장님 댁’ 화면이 나오자 엄마는 만족해하시며 고단한 몸을 눕힌다.   

  그날은 나도 엄마 옆에서 전원일기를 보았다. 오래된 필름이라 흐리긴 했지만, 그 속의 농촌 풍경들은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정겨웠다. 돌로 쌓은 돌담이며 큰방과 연결된 툇마루, 돌멩이 구르는 먼지 나는 흙길,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선 미루나무들~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내가 어린 시절을 그리는 것처럼 엄마도 그 시절이 그리워서 전원일기를 즐겨 보시는 걸까?’ 불현듯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져 물어본다. “엄마 전원일기 재밌어?”말하니 “내가 재미로 보나, 그냥 사람만 보지. 작년까지는 드라마 의미를 대충은 알고 봤는데, 요즘에는 말은 들리는데 의미를 통 모르겠다.”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는 세월을 받아들이기도 벅찬 아흔의 연세에 드라마의 의미까지 이해하기 힘들어지니 인생의 큰 ‘낙’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드라마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고개를 끄덕이시며 “복길 할미가 그래서 화가 났네~~ㅎㅎ ”하며 웃으신다.  엄마가 전원일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날 만큼은 웃으며 보실 수 있도록 옆에서 엄마의 귀가 되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엄마는 멋쩍은 미소를 띠우며 “너그들이 바빠 자주 못 오는 것은 쪼매 서운한데, 테레비가 고장 나서 안 나오면 많이 답답하고 외롭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일상에 볼거리를 제공하고, 밤마다 자장가를 불러주는 텔레비전은 이미 엄마에게 절친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크으응 휴~ 크으응 휴~” 엄마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전원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다음날 엄마는 시골로 가셨지만 나는 전원일기 몇 편을 더 보았다. 그 풍경들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즐거움을 엄마가 선물로 주고 가신 것이다.

  요즘 들어서 ‘효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비싼 물건과 맛난 음식 그리고 용돈이 최고의 효도라 생각했었는데, 부모님의 일상에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 또한 효도가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엄마의 절친 텔레비전이 고장 나지 않도록 관리해 주는 것. 그것 또한 우리 엄마에게는 큰 ‘효도’ 임을 알게 되었다.

  아침이 밝아온다. 나는 엄마에게 효도를 하고 싶어 전화를 한다. “엄마 간밤에 텔레비전이 잘 나오더나? 혹시 고장 나면 언제라도 전화 주세요. 막내딸이 달려갈게요.”라고 말하자, 흡족하신 듯“오냐, 오냐”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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