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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엄마 이름은 '이순기'입니다.

  토요일 저녁, 흰머리 염색 차 큰언니 집에서 머무르시던 친정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도 있었지만 추운 날씨에 한 치 앞을 모르는 노모의 건강이 걱정되어 모시고 온 것이다.

  “띠띠띠띠”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하고 뛰어나온다. 삼십 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구순의 연세에 고단하셨는지 ‘전원일기’를 틀어 달라고 하시며 거실 바닥에 몸을 누인다.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던 딸아이가 주황색 비닐봉지를 안을 드려다 보며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연필이랑 공책, 스케치북은 뭐야? 할머니 공부해”라고 물으니 “그래 할머니 공부하는 학생이다. 히히” 하며 부끄러운 듯 웃으신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아이도 덩달아 웃더니 “할머니 내가 공부 가르쳐 줄까?” 하며 칸으로 된 국어 공책을 펼친다. 공책 안에는 연필로 쓰인 엄마 이름 ‘이순기’가 적혀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딸아이가 다과상을 펴며 “할머니 빨리 오세요. 공부합시다.”하며 할머니를 부른다. 손녀의 부름에 회답하듯 빙그레 웃으시며 다과상 앞으로 몸을 밀친다. 테이블 앞에 마주 앉은 손녀와 할머니는 나이를 불문하고 선생과 학생이 되어있었다. 

  선생이 된 딸아이는 공책 첫 장에 큼지막하게 할머니 이름을 쓰고, 학생이 된 할머니에게 열 번씩 따라 써보라고 한다. 구순의 할머니는 착실한 학생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열 번 쓰기가 끝나자 욕심을 좀 더 내시며, 자녀

여덟 명 이름을 써 달라고 한다. 첫째, 둘째, 셋째 이름까지 쓰시던 할머니는 힘에 부치시는지 “선생님요. 손이 벌벌 떨려서 잘 못 쓰겠심더. 좀 쉬었다가 합시더.”하고는 소파 위로 널 부러진다. 나이 많은 학생을 가르치는 딸아이도 힘이 들었는지 “좀 있다가 아홉 시에 2교시합니다.”라고 말하며 할머니 옆에 눕는다. 80살 가까운 나이 차를 두고 손녀와 할머니는 그렇게 1교시를 마친다.

  친정엄마는 숫자는 알지만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다. 엄마 말에 의하면 유년시절 한글을 일치 감시 깨우친 외할머니(엄마의 엄마)께서 딸을 소학교에 보내셨지만, 공부에 흥미가 없던 딸은 학교 수업을 빼먹고 또래 친구들과 산과 들을 누비며 외할머니의 속을 섞였다고 했다. 그때 한글을 배우지 않은 것이 사는 동안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한 엄마는 든든한 아버지 그늘 아래에서 60년을 사셨다. 아버지와 늘 함께였기에 글자의 불편함 없었는데, 10년 전 아버지께서 저세상으로 가시면서 아버지의 명의로 되어있던 모든 서류들이 엄마의 명의로 넘어오면서 엄마는 이름 세자를 써야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다고 하셨다.

혼잣말로 “엄메(엄마)가 글자 배우라고 했을 때 배울걸 그랬다. 쯧쯧~~”라는 넋두리를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평생을 연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농사만 짓던 노인이다. 글자는 구불구불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글자가 되기까지 엄마는 연필을 끼고 사셨다. 그렇게 엄마 이름‘이순기’를 쓰시던 날, 평생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아버지 이름을 쓰고 싶다며  공책을 내밀었다. 엄마의 노력으로 공책에는 부모님 이름 아래로 팔 남매 자녀 이름이 빼꼭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의 이름과 자식들 이름은 하나씩 기억에서 지워져 갔지만, 엄마의 노력인지 고집인지 자신의 이름은 지금까지 꼭 붙들고 계신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가 다시 연필을 잡기 시작했다. 친정집 길 건너 아랫집에 사시는 큰 외숙모가‘치매’ 등급을 받으면서, 외숙모의 돌보미로 요양보호사인 외사촌 언니가 친정으로 왔다. 그 당시 코로나 확진 자가 증가하면서 경로당의 휴관일이  잦자 엄마는 경로당이 아닌 외갓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사촌 언니는 외숙모의‘인지교육’을 위해 글자와 퍼즐, 색칠 공부를 가르쳤다. 옆에서 찬찬히 지켜보던 엄마도 글자 공부가 하고 싶어 셨는지, 그날 밤 큰딸에게 전화해서 공책과 연필, 스케치북을 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외숙모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나이 구십에 글자를 쓰고, 색칠을 하고, 퍼즐을 맞추는 엄마. 힘은 들지만 하려는 의욕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80살 차이 나는 손녀에게 글을 배우는 용기에는 폭풍 칭찬이 절로 나온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저세상으로 가시면서 엄마에게 주고 가신 가장 큰 선물이 엄마의 이름을 찾아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금년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고, 무리수를 둔 계획을 세웠다. ‘내일 보다 젊은 오늘이다’ 큰소리치며 시작했지만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수시로 올라온다. 쉰을 맞은 딸은 불안하게 시작한 공부인데, 구순의 연세에 겁 없이 연필을 다시 잡는 엄마를 보면 너덜 웃음이 나고 심심한 위로가 된다.

  오늘 아침, 엄마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엄마는 큰소리로 “야야 외갓집에 왔다. 외숙모 하고 글자 쓰고 있다. 바쁘다.”하며 전화를 끊으신다. 엄마의 뜨거운 열정에는 여름 더위도 놀랐는지,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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