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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Jan 04. 2023

삼다수

시로 쓰는 제주도

삼다수


매일 생수를 사 마시는 길 건너

편의점의 사장님

카드를 돌려주며 말한다

내일부터는 다른 분이 계실 거예요

새로운 아르바이트요?

아니요 점포를 넘겼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봤자 생수 한 병인데 그의 허리 숙임에는 백록의 생명수,

그 그릇이 담겨 있었네


연말에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도, 동네도 마음에 든다. 좀 더 북적거리는 동네라서 인근에 편의점도 더 많다. 이사 오기 전 집 근처에는 편의점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항상 생수를 샀다. 삼다수는 편의점에서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는 시간대엔 항상 점주처럼 보이는 분이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느 날 계산을 하다가 나에게 다음 날부터는 본인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셨다. 점포를 넘겼다고. 사장님은 지금까지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셨다.

 

제주도는 육지보다 물가가 대체로 비싸다. 제주도는 삼다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나는 우스갯소리로 귤, 삼다수, 제철방어 빼고는 모조리 다 비싸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삼다수는 매우 질이 좋은 생수다. 석회질이 적어 물맛이 깔끔하다. 나는 귤만큼이나 삼다수가 제주도에 어울리는 특산품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마시는 생수가 특별해질 수 있을까? 편의점이 맛집이 될 수 없듯이 생수도 특별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편의점 사장님의 인사 덕분에 고작 생수뿐일 삼다수가 특별해졌다. 어쩔 땐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고인 물보다 페트병에 담긴 삼다수가 더 아름답다.



작년 9월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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