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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Sep 17. 2021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 프롤로그

인생에서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게임에서 배웠다.

눈을 뜨니 바닥이었다.


지난밤 이불도 배게 없는 냉골에 고꾸라져 잠든 모양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콧구멍으로 밀려드는 알코올 냄새. 속이 울렁거리고 팔다리가 저렸다. 머리를 더듬어보니 게임용 헤드셋이 손오공의 죔쇠처럼 단단히 씌워져 있었다. 끝에 달린 전선을 따라가자 까만 모니터가 보였다. 오, 설마 기절했던 건 아니겠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책상 위 마우스를 흔들어보았다. 채팅창, 스팀창, 배틀그라운드 접속 오류 알람 창으로 바탕화면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단체 채팅방 하나가 열려 있었다. 접속한 사람은 나, 그리고 당시 내가 속해있던 클랜의 S모군.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누나!]


당신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꺼번에 기억이 되살아나서 머리를 쥐어뜯는 주인공을 아마 한 번쯤은 마주친 적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머리를 쥐어뜯는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글쓰기 수업 친구들과 진탕 마신 기억, 택시를 탔던 기억, 택시 안에서 클랜원들에게 집에 가자마자 접속할 테니 내 자리 비워놓고 한 놈도 빼지 말고 대기하라며 지랄했던 기억, 기어이 게임에 들어가서 되지도 않는 총질을 하며 나사 빠진 사람처럼 군 기억이 머릿속에서 장엄한 화산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게임 도중에 잠들다니 대단했어. 코도 골더라?]


시 나이 서른넷. 부끄러운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룸메이트 언니의 단잠을 깨울지도 몰랐다. 그 일 년 전의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서, 너는 앞으로 최신식 고사양 컴퓨터와 헤드셋 그리고 배틀 그라운드를 구매할 거라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생전 처음 보는 놈들과 피 터지게 치고받고 싸우게 될 거라 말한다면, 서른셋의 내 표정은 과연 어땠을까.


‘작가가 되고 싶다!’


어릴 적부터 그런 꿈을 꿨다. 운 좋게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장편소설 하나를 계약했다.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판사의 입맛에 맞춰 분량을 뽑아내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밋빛 미래는 어디로 간 걸까? 그럭저럭 참을 만하던 직장에서 팀장이 되기 직전에, 남은 생生은 소설가로 살겠다며 의기양양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당연히 꽃길만 걸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아니었다.


세상에 무언가를 보장하는 무언가는 없다는 진리를, 진즉 깨달았어야 했는데. 편집자가 더러 응모 시에 제출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말했을 때, 게거품을 물고 거절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이를 백 살 먹은 것 같았다. 급조한 이야기가 내 손을 떠나 산으로 가건 삼천포로 빠지건 마리아나 해구 아래로 가라앉건, 어쨌거나 작품 계약을 했으니 완결은 내야 했다. 할부도 아닌데 출판사로부터 달마다 쪼개진 창작지원금을 받아 생활비로 써야 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집필 활동의 유일한 진통제가 바로 FPS 게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회사 생활 틈틈이 즐긴 오락거리에 불과했던 배틀그라운드는, 순식간에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 일상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당시 오직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은 게임을 할 때뿐이었는데, 에임도 더럽게 안 좋은 주제에 총기 게임에 매달린 이유는 아마 원초적인 공포 앞에서 잡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의 나는 창작력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었으며 먹고 토하고, 토하고 먹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체중은 도리어 불어났으며 소설은 착실하게 망삘테크를 타고 있었고 편집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원고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뭐 그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빠져나갈 구멍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있었다.


모니터 속에 숨구멍이 있었다. 나는 에란겔에서 동료의 허리를 붙들고 오토바이를 탔고, UAZ를 몰다가 총을 맞고 폭발했다. 깔깔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미라마, 비릿한 녹음이 우거진 사녹에서 1,045시간 동안 기었다. 뛰었다. 헤엄쳤다. 수류탄을 던졌다. 웅크렸고 뛰어올랐다. 전우들과 더불어서, 때로 전우들 없이 홀로 죽였고 또 죽었다. 그리고 매번 되살아났다.


“어젯밤에 좀 시끄럽지 않았나요?”


다시 시계를 돌려, 방바닥에서 깨어난 그날. 숙취로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룸메이트 언니에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건넸다.


“시끄러웠어. 엄청나게요.”

“미, 미안합니다.”

“그래도 행복한 것 같더라. 그래서 뭐라고 말을 못 했죠.”


“행복이요?”


룸메이트 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그 날만이 아니라 매일 밤만 되면 내 방에서 미친 듯이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행복이라니... 행복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 앞에 말문이 막혔다. 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살아생전 완결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기에(왜 내가 쓴 이야기는 개구린가?), 불행하다 여기는 중이었으니까.


현실에선 불행하지만 가상현실에선 행복을 맛본다 이건가? 딱 게임 중독자라며 돌 맞기 좋은 소리네. 그렇게 한 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행복이란 어디서 오는 거지? 난 정말 불행한 게 맞을까? 어쩌면 불행과 행복은 샴쌍둥이와도 같아서 둘은 절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불행을 잊으면 행복이, 행복을 잊으면 불행이 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돌아보면 당시의 내겐 웃을 일이 좀처럼 없었다. 시골에서 홀로 상경해 집을 옮겨 다니느라 생활은 늘 쪼들렸고, 글 쓰는 사람 특유의 AT필드 때문에 마음껏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기어이 룸메이트 언니 외에 아무에게도 생일을 축하받지 못한 몸이 되자,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으로 이불 킥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가상현실은 뭐가 그리 달랐던 걸까?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몇 달 후 마침내 소설은 내 이름을 달고 출간됐다. 들춰보기도 힘든 책을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심지어 클랜원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서 팔아야 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긴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작가가 되면 무조건 행복해질 거란 믿음을 품고 있었다. 자다가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은 충격과 더불어 순진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눈을 뜨니 정말이지, 바닥이었다. 이것도 게임인 걸까? 난 아직 깨어난 게 아니었나?


그때 어딘가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병사여, 너만이 병사는 아닐지니. 얼마나 처절하게 죽었든지 아랑곳하지 마라. 징징거릴 바엔 닥치고 레디를 박아라. 언제나 새 판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라,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운 좋은 어느 때, 다른 판에서 너는 승리를 맛볼지도 모른다.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5등 안에, 적어도 한 명쯤은 때려눕힐 수 있으리라! 설령 당하는 쪽이 내가 된들 뭐 어떠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닐지니 무수한 기회가 남아있다. 멋있는 삶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멋있는 죽음이 있는 건 확실하다. 인생의 끝에서 우릴 기다리는 것 또한 어차피 죽음이다. 죽을 죽더라도, 제대로 겨룰 수 있었다면 그대 여한 더는 없을지니.


그렇게 게임은 나를 송두리째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 메두사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들끓었던 나의 욕망 목록에는, 라푼젤의 머리카락만큼이나 길었던 소원 목록에는 가장 소박한 몇 개의 항목만이 남았다. 좋아하는 게임을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기를. 수년째 해온 게임이 질릴 때쯤 다른 갓겜이 타이밍 좋게 나와 주기를. 혼자서만 즐거운 게임이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 모두 즐거운 게임을 할 수 있기를. 게임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결코 현실에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잊지 않기를.


결국 모든 가상현실은, 현실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존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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