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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6. 2021

그 폐허는 어떻게 사라졌는가?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4) 폴아웃 4

그와의 이별이 있은 후, 꽤 오랫동안 괜찮지 않았다.


어느덧 이십 대의 끝물, 인생이 송두리째 폐허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폐허의 이유는 단지 망한 연애에 있지만은 않았다. 폭격과 난투로 완전히 파괴된 마음속 도시의 전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의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법. 누가 청춘을 희망의 시절이라 했는가. 어쩌다 내 청춘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인생에 정말 어떠한 의미가 있기는 한가.


어쨌거나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영원히 폐허밖에는 마주할 수 없을 터였다. 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면, 마음을 풍요롭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로는 살 만하게 되돌리는 것도 역시 내게 주어진 몫일 터였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십 대 초반, 할머니의 호소와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나같이 자유분방하고 삐딱한 인간이 공직에 종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나마의 월급마저 끊기자 당연한 수순처럼 생활고가 찾아왔다. 작가가 되겠다며 도전한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는 번번이 낙방했다. 할머니는 9급 당선 소식에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걸려고 했을 정도로 기뻐했기 때문에 사직 소식에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친척들도 물론 정신 나간 선택을 내린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나 자신조차 나를 지지하지 않는 날들이 길어졌다. 이젠 어떡해야 하나.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다.


네 살 때 헤어졌고 스물넷이 되어 만났으니, 우리 모녀의 상봉은 이십 년만의 일이었다. 찾아간 건 나였다. 언젠가는 만나야지, 품어왔던 어릴 적의 막연한 꿈을 그때쯤엔 이루고 싶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날은 2007년 7월 7일이었고, 엄마의 생일이었다. 


엄마가 재혼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얻었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또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은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서먹했던 사이가 만남을 계기로 한 순간에 돌변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남인 듯 아닌 듯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저 가끔 메시지나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화가 났다.


인생이 꼬인 게 모두 부모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공백으로만 존재했던 엄마에게 특히 화가 났다. 제대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는 것도,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남들처럼 적당히 맞춰가며 살 수 없는 것도, 엄마 탓이 아닐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재혼으로 얻은 자식들에게만 사랑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대놓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심 억울했다. 내게도 사랑 한 번 듬뿍 주면 어디 덧나나. 스스로의 인생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책임이고, 부모의 영향이 지대하긴 하지만 그것은 유년의 한때만 그럴 뿐, 인생 전반에 걸쳐서 결코 결정적일 순 없음을 당시의 나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 좀 살려줘.”


어느 밤엔가, 전화통을 붙들고 터져 나온 고백에 엄마는 꽤 놀랐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랴부랴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지도 않았을 거고, 이제부터는 나랑 살자며 정식으로 할머니에게 인사할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천의 어느 재개발 예정구역, 그러나 재개발을 거부하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사람들만 남은 구역.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던 판잣집들 끝에 엄마의 집이 있었다. 앞이 떨어져 나간 경운기, 구겨진 페트병과 유리병 조각,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뒤엉킨 철골, 벽마다 가득한 붉은색 퇴거 명령들...


그로부터 한참 후 <폴아웃 4>라는 게임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때의 풍경들과 다시 조우했다.


2015년 베데스다는 폴아웃 시리즈의 제 4탄을 세상에 내놓는다. 방사능 낙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게임은 예기치 못한 핵폭발 이후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https://youtu.be/W_LvxeA7b64


주인공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다(성별을 여성으로 택하면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갖게 된다). 전 세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그러던 중, 가정방문으로 영업하는 남자의 말에 홀려서 주인공은 핵전쟁에도 안전하다는 볼트라는 지하시설에 가족 단위로 가입을 하게 된다.


펑! 


모두가 우려하던 대폭발은 기어이 벌어지고,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주인공 가족은 어찌어찌 근처 산속에 있는 볼트 시설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한 대피소가 아니었다. 대피시설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냉동시켜 수백 년 후에나 깨어나도록 하는, 일종의 임상 시험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을 든 그들 앞에서 거부할 권리는 진작에 없었음을 주인공은 깨닫는다. 아,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잠시 깨어난 주인공의 눈에 나의 배우자가 살해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어린 아들만 괴한에게 끌려간다.


번쩍! 


눈을 떴을 때, 세계는 완전한 고물투성이가 되어 주인공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자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남은 인류는 인스티튜트와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 레일로드, 커먼웰스 미닛맨 등의 단체로 나뉘어 대립하며 주인공을 끌어들이고자 하지만, 주인공이 궁금한 건 단지 이것 뿐이다. 


배우자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걸까? 내 아이는 살아있을까? 그 애도 날 보고 싶어 할까? 만일 살아있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서로를 찾아내야 할까?


나는 폴아웃 4의 모든 걸 사랑했다. 


남 얘기 같지 않은 스토리텔링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폐허로부터 느껴지는 기묘한 아늑함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유년기를 보낸 고향은 낙후된 시골이었고 엄마네 동네 역시 만만찮게 낙후돼 있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안팎으로 폐허에서 보낸 셈이었다.


어쩌면 폐허는, 내가 속해 있어야 할 곳인지도 몰랐다.


당시 엄마는 고등학생 아들과 둘이서 살고 있었고, 대학생 딸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방학 때만 귀국했다. 엄마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나와 살게 되면서 트러블이 잦아져 그들의 관계는 일단락된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세 식구가 된 우리는 영종도가 내다보이는 반도 끄트머리에서, 신라면과 고구마로 한겨울을 났다. 엄마는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하며 교회를 꾸준히 다니는 것으로 삶의 동력을 얻었기에, 나도 덩달아 집안 청소를 도왔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엄마를 따라 낯선 예배당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찬송가 가락을 흥얼거렸다.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돌이켜보면 나의 배다른 형제들은 참 괜찮은 아이들이었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내가 자신들의 핏줄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존중해주었다. 엄마와 언제나 친구처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러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점점 그곳은, 내가 속해있을 곳이 아닌 듯했다.


어릴 적부터 반복해서 들려준 할머니의 말과 달리, 엄마는 마녀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여자였을 뿐. 엄마에게도 배다른 형제가 있으며 엄마도 나처럼 외로운 유년기를 가졌음을 알게 되고 나자 미움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내가 무신론자로 계속 남는 쪽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삶에서 감당할 몫이 있었을 뿐이었다. 


아빠도 엄마도,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던 때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일이 풀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그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세상의 무수한 이별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자연사의 일부이므로.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어느 새벽, 폭설을 뚫고 어렵사리 개척 교회에 기도를 다녀오던 길. 


엄마와 나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앉아 있었다. 와이퍼가 삐걱삐걱 돌아가고, 길가에 내놓은 연탄재가 전조등에 비춰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흘러나왔다. 


거기에 모녀는 없었다. 젊은 여자 하나와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자 하나, 사랑과 이별의 기억을 간직한 여자가 둘 있었을 따름이다. 아무런 말없이 가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노래가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때만큼은 엄마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과 눈 속에서, 그러나 태양에 어둠이 물러가고 눈이 햇살에 녹듯, 우리의 폐허는 서서히 원래의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또한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자연사의 일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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