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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7. 2021

깍두기지만 진심이었어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6) 배틀 그라운드

저벅저벅저벅.

사각사각사각.


누가 있다.


앞인지 뒤인지 위치가 헷갈리지만 아주 근처에 있다. 순간, 방금 전 총격전 이후 재장전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헷갈린다. 확실히 해두고 싶지만 그랬다간 빈 약실에 실탄이 장전되면서 나는 특유의 소리 때문에 적에게 위치가 노출될지도 모른다. 발자국 소리로는 한 명인 것 같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고 동료들이 함께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찌저찌 탑5에 들었지만, 자기장이 좁혀오는 구역에서 한바탕 교전을 치르는 바람에 팀원을 모두 잃었다. 간발의 차로 자기장 안쪽에 입성한 나는 길리 슈트를 입은 덕분에 적군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기장 안쪽의 기가 막힌 자리를 선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헤드셋 너머로 이것저것 알려주는 팀원들의 목소리에는 큰 기대가 실려있지는 않다. 샷발도, 무빙도 시원찮은 내가 치킨을 먹을 확률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잘 안다. “누나, 그냥 사격장에서 연습한다고 생각해.” 그래, 저 깍두기 누나 덕분에 우리 팀이 1등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이번 생엔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이러다 저 놈이 손바닥만한 이 초소의 문을 열어보면 어떡하지? 혹시 이건 총기 게임을 가장한 공포 게임은 아닐까? 아니, 잠깐만. 왜 손잡이가 없는 AKM를 들고 있는 거야? 아까 언덕 어드메쯤의 시체로부터 풀파츠 M4를 빼앗아놓고선!


무기 교체 때에 나는 소리를 감수하면서, 자신 있는 무기를 들었다는 자신감으로 용기 있게 죽는 게 나을까. 아니면 데미지가 5탄보다는 7탄이 훨씬 높으니까 오히려 마구 갈길 각오로 승부를 걸어볼까.


두다다다!


모든 생각을 끊어지게 만드는 총소리가 귀를 따갑게 울린다. 하마터면 방아쇠를 당길 뻔 했지만 여전히 초소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적팀에게 다른 팀이 붙은 것이다.


폴짝폴짝 뛰면서 유리창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본다. 4대 4인지 3대 4인지, 자동차는 폭발하고, 누가 누구와 편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전이 벌어지고 있다. 불구경을 하는 와중에 나는 얼른 무기를 바꾸고 소음을 틈타 장전을 해둔다. 여차하면 문을 열고 기어가는 놈에게 투척하기 위해서 수류탄 갯수도 확인한다.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그것이 전투의 본질이다. 이 게임에 참전한 이상, 가는 데는 순서도 논리도 없다. 분명한 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게임의 규칙. 살아남으려는 본능적인 발악.


두다다다, 다다다, 쾅! 으악!


또 하나의 전투가 끝났다. 왼편 상단에 떠오른 노란색 문구에 어안이 벙벙하다.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빵킬 치킨, 그러니까 아무도 죽이지 않은 내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기는 커녕 새우가 이기다니. 오, 이런 허무한 승리라도 승리니까 기뻐해야 마땅한 것일까?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아주 쉽게 죽는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블로거 중 한 분이 게시했던 포스팅의 일부다. 서로 모순으로 느껴지는 문장들이지만 결국 두 문장 모두가 진실이었음을, 배그를 통해서 절감하게 되었다. 생사의 기로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나는 참으로 모든 곳에서, 온갖 방식으로 죽었다. 어쩔 수 없는 죽음도 많았지만 현실에서라면 다윈 상(Darwin Award)감인 죽음이 더 많았다. 적을 피해서 슬라이딩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잠수하면서 강을 건너다 숨 한 번 쉬려는데 저격수에게 걸려서, 걸음이 느린 탓에 추적팀에 꼬리를 잡혀서, 팀내 에이스가 화장실 간 사이 창문을 깨고 들이닥친 수류탄 한 방 때문에….


그럼에도 내가 상대를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쏘다보니, 다 죽어가는 상대를 먼저 발견한 덕에, 다가오는 발소리를 이미 들었으므로, 깍두기답게 도무지 예측이 되는 움직임 때문에, 나도 가끔은 경쟁자를 물리쳤다.


이상한 말이지만 죽이거나 죽는 것에는, 똑같은 강도의 즐거움이 존재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대리 만족이랄까? 카타르시스랄까? 사실 현실에서 죽음은 딱 한 번 맞이하는 무엇이다. 죽은 이후에 스스로의 죽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하다. 상대방을 죽이는 것 역시 문명 세계에서는 당연히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괘씸한 사람은 차라리 피하려고 애쓰며, 어떻게든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제심과 사회성을 기르는 것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게임 속에서 죽고 죽이는 행위에 대하여 우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끔찍하지 않아? 게임이라 해도 사람을 죽이는 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게임이니까, 가짜라는 걸 아니까, 현실과 닮았으되 현실이 아니니까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는 것.


호미니드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해오면서 우리는 평화만을 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투쟁과 살육의 역사, 심지어는 식인의 역사마저 호미니드라는 두꺼운 책에서 상당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또한 악명 높고 잔혹한 독재자일수록 명예를 얻었던 시대가 분명 여러 나라의 과거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로운 시대가 열렸을 때, 인류는 어떻게 공존의 길을 찾아냈을까?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놀이가 바로 그 길을 열어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싸우는 하는 것으로 안전하게 서로의 타고난 잔인함을 달래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같은 편끼리 어떻게 서로를 도울 있는지, 다른 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잠재되어 있는 위기를 미리 연습하면서.


그러나 나는 그런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엔, 전장의 깍두기에 불과했다.


나는 병역의 의무가 없는 여성이고, 배그를 알기 전까지는 사격장에 가거나 총기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layer Unknown's Battle Grounds : PUBG), 배틀 그라운드를 처음으로 플레이했을 때는 소위 안전빵, 숨바꼭질 메타를 고수했다. 방에 숨거나, 풀숲을 기어가거나, 사람이 없는 쪽을 향해서만 뛰었다. 길이란 게 워낙 울퉁불퉁한데다, 방향 감각이 없어서 그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배틀 그라운드에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기장이 좁혀진다. 자기장 밖의 구역에 머무르면 충격으로 체력이 조금씩 깎여서 죽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플레이어가 적팀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타이밍 좋게 자기장 안의 구역으로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팀간 교전의 확률을 높인 것이다.


사실 FPS 게임은 그 특성상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들은 타고난 사냥 본능과 경쟁 심리에, 기본 체력도 대단하거니와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군대에서의 경험 또한 풍부하다. 물론 여성들 중에서도 미칠듯이 잘 싸우는 사람들만이 전장에 우글거렸다.


대체로 그런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임하는 경기에서 나 같은 뉴비의 운명이란 뻔했다. 교전이 벌어진 지 5분, 아니 5초도 안 되어서 사망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병사가 죽은 자리에는 시체 대신 나무로 된 관, 소위 도시락이 남겨지게 되어있다. 나를 해치운 팀이든 나와 같은 팀이든 하여간 누군가가 도시락 속 내가 힘겹게 파밍한 아이템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잠자코 다음 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배그에는 부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같은 팀과 같이 하려면 관전을 하면서 팀원들이 어떻게 기울어진 전력을 채우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그것이 10분이든, 30분이든. 이것이 바로 깍두기의 숙명이었다.


“누나는 게임을 왜 해?”


배그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을 무렵, 오랫동안 같이 게임을 해온 팀원이 물었다. 킬데(K/D, 목숨 당 처치한 적의 수)가 그래도 0.5는 돼야 게임을 할 맛이 날 것 아니야. 재미가 있기는 해?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나는 게임을 왜 하나.


피 터지게 싸우는 게 좋아서? 헤드셋으로 다같이 웃고 떠드는 게 즐거워서? 현실의 한계를 가능성이라는 착각으로 뛰어넘으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딱 떨어지는 답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배그에 대한 애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식어가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가며, 열정적으로,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매달렸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러다 어느 날, 결국 배틀 그라운드를 컴퓨터에서 지웠다. 남은 건 수십 기가에 달하는 텅 빈 저장용량. 마음도 딱 그만큼은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후 일 년 동안은 어떤 게임도 손대지 못하는 일종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게임의 신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인생 갓띵작과 나는 그렇게 조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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