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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6. 2021

하지 않기를 할 수 없기에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5) 위쳐

‘서두를수록 길은 길어진다.’


그때 나는 <위쳐(The Wither) 1>을 한창 플레이하던 참이었다. 흠칫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포장 흙길을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리다 떠올린 것치고는 꽤 그럴싸한 문장이었다.


아무래도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것도 간달프를 닮은 현자임에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아포리즘이… 라며 슬슬 자뻑에 시동을 걸려는 순간, 해가 지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죽은 자들과 괴물의 시간.


아니나 다를까. 어둠의 단골손님 구울(Ghoul)이 눈앞에서 불쑥 손톱을 휘둘렀다. 눈알과 이빨이 모두 녹았는데도 어쩜 저렇게 재빠를까. 어쩐지 사람과 닮은 모습, 저것들도 한때는 사람이었을까. 혐오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향해서 나는, 아니 위쳐 게롤트는 쿠엔 마법을 시전했다.


텅! 하는 파열음과 함께 특유의 노란색이 허공을 반원으로 물들였다. 놈은 그르릉거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대개의 하급 괴물들이 그렇듯 놈도 혼자가 아니다. 1:N, 삽시간에 둘러싸였다. 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놈과 놈의 동료들은 상대를 향한 적의에 있어서만큼은 한마음 한뜻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구울들과 게롤트와 나는, 서로를 향해서 춤사위와도 같은 공격과 방어를 거듭했다. 괴물을 사냥해 먹고사는 위쳐의 일생이란 이렇듯 크고 작은 싸움박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예술적인 전투 액션으로 명성이 자자한 위쳐답게, 마법을 쓰거나 연속베기를 하는 게롤트의 몸놀림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열띤 전투의 대가는 구울의 피와 내장 따위. 하찮아 보이는 이것들을 열심히 모아두면 나중에 탕약을 제조하거나 퀘스트 수행에 써먹을 수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게롤트를 명상에 빠트린 다음, 나 또한 멍하니 의자에 기대어 명상 비슷한 걸 하려는 순간이었다. 또다시 그 문장이 자막처럼 떠올랐다.


‘서두를수록 길은 길어진다.’


무문관(無門關)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불교의 선종, 선종 중에서도 임제종이라고 불리는 계파에서 시작된 무문관은 하나의 철학이다. 이 철학은 구구절절 장황한 설명을 비계덩어리처럼 가차 없이 덜어내고, 핵심만을 묻고 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그 묻고 답하는 내용 자체에 있다.


-운문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운문 선사가 대답하였다. “마른 똥막대기니라.”


-파초 화상이 대중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내가 주장자를 주리라. 너희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그 주장자를 빼앗으리라.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 않은가?

불쑥 던지는 한 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앞이 캄캄해진다. 질문에 대해서 돌아오는 대답이란 게 엉뚱하기 짝이 없다. 현대에 전승된 무문관은 총 48개의 선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선사들이 바라는 반응은 정확히 그것이다.


듣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어, 질문과 답 사이에서 스스로 문을 뚫도록 만드는 것.


위쳐를 플레이할 때면 마치 나만의 무문관을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고많은 게임 중에, 위쳐를 할 때만큼은 철학자가 된 듯한 기분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전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을 우습게 여기던 나는 <위쳐 3>의 트레일러를 보고 반해서 이 게임을 시작했었다. 3탄부터 해도 되지만 굳이 1탄부터 구입해서 플레이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조악한 그래픽, 답답한 이동 방법, 이상한 방식으로 버튼을 눌러야만 먹히는 공격 등 아쉬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게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는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시리즈로 나와있는 소설 원작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게롤트가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라 그런 걸까? 게롤트는 단지 힘 세고 인기 많은 영웅 서사시의 주인공들과는 확연한 차별점을 갖는다. 바로 그의 영혼에 가득한 사르카즘(Sarcasme) 덕분이다.


멍청한 인물과 대화할 때 게롤트는 덩달아 바보가 된다. 농담 따먹기나 즐기는 캐릭터를 상대할 때 게롤트는 광대가 된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게롤트는 기꺼이 수컷이 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과 대화할 때 게롤트는 본색을 드러낸다. 인간의 의뢰를 받고 괴물을 사냥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때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다는 인식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사실 위쳐의 세계에선 주인공 게롤트 외에도 스쳐 지나가는 인물 하나하나, 괴물 하나하나가 확실한 의미를 띠고 존재한다. 그렇기에 메인보다 곁가지로 등장하는 자잘한 이벤트가 더 재미있을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숲길을 지나가는데 길가에 떨어진 핏자국과 편지를 발견한다든지, 읽어보니 어느 상인이 고향의 애인에게 자신이 금의환향하고 있으니 도착하면 결혼하자는 내용이었다든지,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가보니 산적에게 붙들린 상인을 구출하는 이벤트가 시작된다든지, 이벤트를 완료하니 보상으로 어마어마한 레어 갑옷 일부를 얻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하라고 만들어 놓은 건 모조리 해보기 위해,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맨 나중으로 미루게 될 정도였다.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쳐 게임은, 본편이 아니라 확장팩으로 나온 하츠 오브 스톤(Hearts of Stone)이다. 위쳐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가는 길이면 어디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오픈월드 지향의 RPG 게임이니까.


그러나 그렇게만 플레이하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잃은 돛단배 신세가 되기도 했다.


특히나 1탄에서는 텔레포트 사용이 제한적이고, 게롤트의 애마 로취도 아직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려면 계속해서 화살표를 누르고 있거나, 가려는 방향을 집요하게 클릭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게롤트는 움직여야 한다. 주인공이니까. 목적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다면 방금 때려죽인 와이번 눈알이나 길가에 널린 애기똥풀과 다를 바가 무엇이랴.


그러니 게임이 최악으로 재미가 없었던 건 아무리 베어도 피가 닳지 않는 해골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아니고, 게롤트를 이용하려는 이중 삼중의 중상모략을 알게 되었을 때도 아니고, 막일에 가까운 퀘스트가 네댓 개씩 밀어닥칠 때도 아니었다. 심지어 배 타고 들어가야 되는 블랙 턴 아일랜드를, 얼타다가 여섯 번이나 왕복했던 때도 아니었다.


할 일이 뭔지 몰라서 멀뚱하게 서 있어야 할 때가 노잼의 절정이었다. 게롤트도 나도 모두 괴로웠다.


‘해봐, 해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시체가 아니니까.’


맵을 열어도 저널을 뒤져봐도 아무런 느낌표가 뜨지 않을 때면 나는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영심이 노래를 마음대로 개사해 불렀다. 느낌표가 없다는 건 어떠한 오류로 인해, 또는 경로를 잘못 타서, 게롤트에게 일거리가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그럴 땐 길거리 사람들이나 주요 인물들에게 미친 듯이 말을 시켜야 했다. 대부분은 늘 하던 소리만 반복해서 대답한다. 그러나 어떤 인물에게는 회색 대화문이 아닌, 푸른색 대화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푸른색은 처음 해보는 대화라는 표식이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다행히 또 다른 퀘스트가 열리곤 했다.


이상하게도 해치운 건 분명 새로 열린 퀘스트였는데, 마무리되지 않았던 다른 퀘스트들이 함께 완료되는 걸 여러 번 겪었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퀘스트들이 말이다. 그럴 때면 게임과 인생은 참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릎을 치기도 했다.


사실 인생에서도 인과 관계가 나중에,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지금은 안 되는 일이 나중에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워지기도 하고,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 일도 꽤 많지 않던가.


오, 바로 이런 깨달음의 맛이 바로 위쳐를 하는 맛이 아닐까.


나는 위쳐 게임의 모든 편을 섭렵한 이후에도 가끔, 위쳐를 플레이한다. 이야기의 결말을 거의 다 알고 있음에도 그 세계에 속하고 싶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게롤트가 되어 생과 사를 묵직하게 느끼며 싸워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도살자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인 돌연변이 게롤트. 그 하얀 늑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해결이 어려운 현실의 문제들이 혹여나 실마리를 찾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는 몸집과 생김새,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았음에도 게롤트에게서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람에게도 괴물에게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그의 운명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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