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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0. 2021

사춘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잔혹한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2) 곤 홈,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사춘기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자아가 절반으로 나뉘는 시기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절반으로 나뉘어져야 했다. 한쪽의 나는 지혜롭고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다른 쪽의 나는 충동적이고 심술궂고 매사에 조바심을 냈다. 그렇게 절반씩의 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10대가 훌쩍 지나갔다. 그걸로도 모자라 20대때도 여전히 둘을 화해시키지 못해서 쩔쩔맸다.


하이드 씨가 항상 힘이 더 세다는 게 문제였다.


내 속의 하이드 씨는 그래서 게임이란 유치한 애들이나 하는 멍청한 짓거리라고, 한마디로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종교적 믿음에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삼십 대가 되어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영상 때문이었다. 바로 위쳐 시리즈 3탄, The Witcher III: Wild Hunt 출시 전에 나온 시네마틱 트레일러, A night to remember. https://youtu.be/TXKbi-p87r4 5분도 안 되는 길이의 영상에 구비구비 담긴, 판타스틱 영웅 서사시에 난 얼이 빠져버렸다. 오, 괴물이여. 그대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는가. 오, 괴물 사냥꾼이여. 그대는 그녀와 대체 어떤 사이였던가. 그 점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날려버리게 된 것은, "곤 홈(Gone Home)" 그리고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부터였다. 전자인 곤 홈은 공포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추리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한 다소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https://youtu.be/x5KJzLsyfBI 반면 후자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해안가 소도시의 작은 예술학교를 무대로 한, 전형적인 틴에이지 영화로 보인다. https://youtu.be/AURVxvIZrmU 

위쳐와 같이 고대 유럽을 닮은 판타지 세계에서의 게임은 먼 곳으로 훌쩍 떠나는 듯한 나름의 재미가 있다. 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또는 약간 지나간 과거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게임도 존재한다. 배경이 비슷하다는 점 이외에도 두 게임은 공통점이 몇 개 더 있었다.

우선, 1인칭 시점의 어드벤처 게임(Adventure Game)이라는 점.

어드벤처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유도는 낮다.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 스토리가 요동치긴 하지만, 몇 가지의 결말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겐 게임이라기보다 어쩌면 인터랙티브 영화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장르일 것이다.

다음으로, 그 1인칭 시점이 사춘기 여자아이의 것이라는 점.

오랫동안 배낭여행을 하다가 자정 무렵 집에 도착한 곤 홈의 주인공, 케이틀린 그린브라이어. 블랙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어릴 적 살던 동네로 돌아온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주인공, 맥신 콜필드. 전자인 케이티는 텅 빈 집 안을 돌아다니며, 말썽쟁이 동생 샘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후자인 맥스는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어, 변해버린 옛날 친구 클로이의 목숨을 구해내야 한다. 그러나 연약한 소녀에 불과한 그들은 위기 속에서도 소중한 누군가를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에 못지않은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는 점.

소설은 독자의 감정 이입을, 영화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원한다. 그러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원하는 건 사실 감정 이입 그 이상이다. 화면 속 세상과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게 착각이래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진짜 겪은 일, 진짜 추억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게임의 이야기에 반응하게 된다.

내가 게임 속 아카디아 해안의 황금빛 물결을 바라볼 때, 그곳은 게임 속이 아니었다. 게임 속 어두침침한 서재에서 가족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심장이 싸늘해지는 기분은 거짓이 아니었다. 게임 속 동생의 일기장을 발견해내 뒤늦게 동생의 진심을 깨달았을 때, 나는 어느새 진짜 언니라도 된 것처럼 동생에게 좀 더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게임 기억의 폭풍을 고통스럽게 뚫고 나갈 때, 언젠가 나도 이걸 통과했었는데 싶어 아찔하기도 했다.


그러나 왜 이렇게까지 주인공의 선택에 감정 이입을 했을까?


어쩌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에 따라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의 미래가 자꾸만 바뀌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만큼은 실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운명이 비록 누군가가 마련해놓은 선택지에 따라 흔들리게 될지라도.

사실 실제의 인생에서도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이 바로 분기점에서의 선택 아니던가. 어느 학교로 진학할지, 누구랑 친구가 될지, 어른이 되어 어떤 직업을 가질지, 동시에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 중에서 누구를 받아들일지처럼 인생을 뒤바꾸는 분기점 말이다.

어리석은 우리는 분기점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좋았겠지, 싶어져 아득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우리는 결국 하나의 선택만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든 시간에 존재할 수도 없고, 모든 공간에 존재할 수도 없는 유한의 존재니까. 단지 별똥별처럼 어둠 속에 짧은 빗금을 긋다가 사라지게 될 운명이니까.


그러니 그저 그때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손을 그러잡으며,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나중이 되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나는 실제의 인생과 꼭 닮은, 내 이야기와도 비슷한, 두 개의 이야기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전 세계의 많은 게이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2021년 10월 11일 기준,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153,912개의 사용자 평가 중 96%의 긍정을 받아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퀄과 후속작도 이미 출시됐다. 곤 홈은 스팀의 12,007개의 사용자 평가 중 <곤 홈>은 76%의 긍정을 받아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리뷰 플랫폼 메타크리틱(www.metacritic.com)에서는 90점이라는 점수를 기록했다.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 사춘기의 잔혹함을 어떻게든 겪어내 제자리를 찾은 사람들.

그들은 어째선지는 몰라도 기꺼이 그 시절로 돌아가 맥스가 되고 또 케이티가 되었으리라. 아름답고 가슴 시린 사춘기를 하나 더 경험하며, 현실에서의 지난 선택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으리라. 그 점을 생각하면 낯모르는 친구를 여럿 얻은 것처럼, 가슴이 뻐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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