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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Sep 30. 2022

썼으니, 써버렸으니, 그걸로 됐다.

Writer's block Diary : 2일째

Photo by Samuel Austin on Unsplash


불행할 때 주로 글이 탄생한다는 건, 아무래도 찝찝하고 불쾌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행복할 때 쓴 글보다 불행할 때 쓴 글이 여러모로 뛰어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같기도 하다.


우선, 사람들은 행복할 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행복을 누리기에도 급급한데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물론 자랑을 섞어 글을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명하고 경험 많은 사람들일수록 그 비율은 낮아질 터. 게다가 행복보다 불행은, 분석을 필요로 하기에 복잡한 레고 구조물처럼 이리저리 뜯어볼 구석이 많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가늠해보며 불행은 비로소 다룰만한 것이 되니까. 수많은 작가들이 비극 속에서 탄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당사자에게는 끝끝내 마다할 일이겠지만.


오늘, 오랜만에 글을 한 편 썼다. 게임 에세이 <어쩌다 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의 아홉 번째 이야기. 게임에 관한 이야기는 내게 각별했으므로 이 이야기들을 종이책으로 내고 싶어 브런치 연재를 멈추었고, 두 군데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으나 끝내 출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손봐야 할지 고민했으나 답을 얻지 못한 채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연재는 중단되었고 지독한 글럼프에 허우적대야 했다.


역시나 휴재기에 종지부를 찍은 건 결코 다시 써보자! 으쌰으쌰! 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최근 누군가에게 쉽사리 털어놓을 없는 슬픈 일이 하나 벌어졌다. 그 슬픔을 동력 삼아 오래간만에 글이라는 것을 쓰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글을 쓰자고 비극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나 비극을 직면했을 때 오히려 좋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라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소름 끼칠 때가 있다. 작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부디 스스로가 글을 쓰는 불행인이기보다는 글을 쓰지 못한대도 행복인이 되기를 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잘 쓴 글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 모순적인 바람이, 글로부터 스스로를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생활이 우위가 되는 한, 글이 설 자리는 좁아지게 마련이니까.


내일이야 어쨌건 오늘은 슬픔의 힘으로 글을 써냈고 기어이 개점휴업의 가게에도 반짝, 전구 하나에 힘겹게 불이란 게 들어왔는가 보다. 무엇이 동력이 되었건 결과물의 질이 어떻건 아무튼 썼으니, 써버렸으니, 그걸로 됐다.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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