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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02. 2022

고수들이 바글거리며, 비급들이 난무한

Writer's block Diary: 4일째

영화 와호장룡 중 한 장면 by film-grab.com


나는 방송대를 다닌다. 오늘은 신현욱 교수님의 <현대세계의 이해와 영어듣기>의 온라인 출석 수업을 받았다. 강독한 텍스트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에세이 'Stranger in the Village'이었다. 1951년에 쓰여졌다고 하는 이 에세이에는 스위스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짱박혀 글을 쓰고자 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I thought of white men arriving for the first time in an African village, strangers there, as I am a stranger here, and tried to imagine the astounded populace touching their hair and marveling at the color of their skin. But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being the first white man to be seen by Africans and being the first black man to be seen by whites."
나는 아프리카 마을에 처음 나타난 백인들, 내가 여기서 이방인이듯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 백인들의 머리칼을 만지고 그들의 피부색에 경이로워하는, 놀란 흑인 주민들을 상상하려 애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최초로 목격한 백인과, 백인들이 최초로 목격한 흑인 사이에는 말이다.


회사를 다니며 동시에 학교를 다니는 건 분명 힘겹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또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이런 텍스트를 꽤 많이 접했던 건 그런 힘겨움을 상쇄해주는 큰 즐거움이었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로 기막히게 살려낸 영문학의 시초 '베오울프(Beowulf)', 케이트 쇼팽의 '실크 스타킹(A Pair of Silk Stockings)',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 Elephant)', 로렌스의 '아돌프(Adolf)' 같은 작품들은 학과 공부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작품들이지만 일생토록 모르고 살기엔 너무도 아까운 명작들이었으므로.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된 무명 작가들의 놀라운 작품들도 적지 않다. 가령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Educated)> 는 모르몬교 집안에서 자라나 학교에 가지 못했던 여자아이가 어떻게 하버드 대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었는지, 가족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자신을 분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놀라울 정도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중문학으로까지 장르를 넓혀서 생각하면, 한국에도 숨은 글잘러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한때 돈이 되는 웹소설을 써보겠다며 공부하듯 웹소설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읽은 게 싱숑의 <전지적 독자시점>, 백수귀족의 <바바리안 퀘스트>, <데몬소드>, 글술술의 <천재 배우의 아우라> 등이었다. 도덕과 상상력의 한계를 돌파한 것도 모자라 긴 호흡의 서사시를 맛깔나게 풀어낸 그 작품들 앞에서, 더 이상 웹소설은 문학이 아니라는 주문을 외울 수 없었다.


아는 언니로부터 추천받은 BL소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연애사>는 또 어떤가? 고수위 BL 웹툰인 <야화첩>마저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문학적인 구석이 있었다. 비록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어떠한 사상이나 정서를 다룬다고 할지라도 해당 장르의 문법을 지키며 독자를 색다른 경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찾게 하는 이야기만의 매력이리라. 관심을 두기 전엔 존재조차 몰랐던 작품들이, 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인에게 엄청난 기세로 팔려나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그럴때마다 나는 세상에는 정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로 무지무지하게 많다는 걸 실감한다.


좋은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기 자신을 드러내보인다. 이를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한다. 독자로서의 나는 잘 쓴 글 앞에서 그저 즐거운 어린아이가 되어버리지만, 작가로서의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 자의식 따위는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감정이겠지만.


아, 그러나 결국 나는 바라고 원한다.


고수들이 바글거리며, 비급들이 난무한 이 글쓰기의 세계에서 부디 고수의 칼에 팔다리가 베여나가기를, 비급의 한 귀퉁이에 감동의 선혈을 흩뿌리기를, 그래서 고이 눈 감기 전에 진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꼭 하나만 더 만나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수집된 이야기들이 기묘한 작용을 통해 언젠가 내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할 때, 사소한 부채질을 해줄 수 있도록, 감히 기도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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