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block Diary: 14일째
냇가의 해오라비 무스일 서 있는다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무삼 하려는다
두어라, 한 물에 있거니 잊어신들 어떠리. (신흠의 시조)
한재덕_<해피엔드> <파이란> <올드보이> 모두 어릴 때 극장에서 재밌게 봤다. 세 인물이 모두 지질한 소시민이란 공통점이 보이더라. 공교롭게도 세 작품에서 모두 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사한 걸 선택하는 유전인자라도 있는 건가.
최민식_작품의 정서는 모두 다르다. 다만 작품을 선택할 때 나의 밑바탕에 있는 정서는 연민인 것 같다. 모두가 불쌍하다. 세상이 불쌍하고, 그 안에서 제각기 먹고살겠다고 바둥대는 사람이 불쌍하고, 나쁜 놈이든 좋은 놈이든 뚝 떨어져서 보면 모두가 다 측은하다. 나도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영화를 합네, 뭐를 합네 하면서 더운 날 이게 뭔가. 삶 자체가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삶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지랄 같나. <올드보이> 후반작업을 할 때, 어느 일요일 오전에 이런 걸 봤다. 연세 지긋하신 두 할아버지가 폼나게 차려입고 서로 손을 잡고 애들처럼 앞뒤로 신나게 흔들면서 걷고 계시더라. 운전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짠하던지 천천히 할아버지들 걸음 속도를 따라 운전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뭐 그리 좋은 일이 있었을까. 언제 적부터 저리 친하셨을까. 짱짱하던 시절 직업은 뭐였을까. 그런 그들은 지금 왜 저렇게 나이 들어 있나. 산다는 게 그냥 서글프게 느껴졌다. 내 나이가 쉰둘인데 늙으니 왜 공연히 서러워지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
(중략)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최민식_사나이픽쳐스에서 제작한 <신세계>의 강 과장.
한재덕_그건 황정민씨 영화지. 거기서 선배가 한 게 뭐가 있나. (일동 웃음)
최민식_어쨌든 배우라면 오감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창작물을 많이 접해야 한다. 돈 생기면 성형하지 말고 좋은 공연을 보고 콘서트장에 가라. 외형적인 데 말고 나의 내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돈을 썼으면 좋겠다. 진짜는 귀하다. 흔하지 않다. 내가 나를 귀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배우다. 남이 날 알아주기 전에 내가 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개차반처럼 놀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나를 차갑게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처절하게 외로워봐라. 우리말이 아니라 좀 그렇긴 한데 ‘곤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진짜 내 자신을 냉정하게 다그치고 통제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기질이 나와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다른 사람 피해주지 말고 일찌감치 때려치워라. 나도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재무장한다. 훌륭한 배우가 되기까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뭐냐고 여쭤봤는데…. 아무튼 훌륭한 말씀 잘 들었다.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린다.
최민식_미안합니다. (일동 웃음) 아무튼 스스로가 귀한 존재란 걸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개뿔도 없는 자존심으로 버텨야 한다. 그런 거 누가 챙겨주는 거 아니다. 그거 하나로 나도 지금까지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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