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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3. 2022

멘탈 케어 혹은, 무의식이 마구 날뛰는 건에 대하여

Writer's block Diary: 14일째

Photo by Total Shape on Unsplash

건강이라는 단어는 주로 신체에 사용되어오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정신을 포함하여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신 건강이라는 것은 몹시 모호한 영역이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갈라본들 간, 폐, 창자처럼 마음을 똑똑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영혼이 심장에 속해있다고 믿어온 긴긴 옛날을 지나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영혼, 그러니까 마음, 다시 말해 정신은 뇌에 깃들어 있다는 게 학자들의 중론이지만 여전히 검증할 길은 없다.


대체 영혼, 마음, 정신 따위로 불리우는 이것은 무엇인가.


학자도 무엇도 아니지만 스스로와 타인의 마음을 관찰해보며, 나는 프로이트가 명명한 무의식이 바로 영혼, 마음, 정신 따위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내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말과 행동을 관장하며 문명의 법칙을 준수하는 것은 정신 건강의 '정신'은 결코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나 무의식은 정말 다루기 까다로운 영역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원래가 다룰 수가 없는 영역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의 날씨처럼 말이다. 무의식은 평소엔 영감으로 가득한 천사지만, 상처를 받으면 대악마로 돌변한다. 돌연한 악천후를 만나 콰르릉! 무너질 듯 신음하는 하늘처럼.


슬픔, 근심, 고통, 억울함, 쪽팔림, 배신감, 쓰라림, 기타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아픔이여 사라져라! 하고 개척교회 목사처럼 외치거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목탁을 아무리 두들겨도 상처 받은 무의식이란 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멸하려고 할수록 기세가 등등해지는 독일산 바퀴벌레처럼 날뛸 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놈의 무의식을 떼어버릴 수는 없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무의식은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냇가의 해오라비 무스일 서 있는다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무삼 하려는다
두어라, 한 물에 있거니 잊어신들 어떠리. (신흠의 시조)


두자. 태풍이 불 땐 아무도 바다로 나가지 않듯이. 나도 이제는 고통이 오면 그냥 유리창 안에서 구경만 하려고 노력한다. 어이쿠야, 이번 지랄은 좀 쎄다. 저기 간판이 날아가고 있네.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불타고 있네. 유리창이 자꾸 흔들려 깨질까봐 불안하네. 그래도 아직은 괜찮지. 저러다 말 걸 내 알지. 무의식아, 그래, 해라. 실컷 니가 하고 싶은 만큼 날뛰어라.


마냥 구경만 하는 건 아니다. 적극적인 발버둥도 필요하다. 작가로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생활인으로서 정신 건강은 중요하므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하는 게 관건이라고 본다. 신체를 돌볼 때처럼.


그래서 오은영 박사의 영상을 보거나 대학교 심리학개론을 수강하기도 하고, 기운이 좋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며 이유 없이 힘 빠지는 장소에는 가지 않는 등의 소거법도 구사해본다.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소리내어 투덜거리기도 하고, 내키지 않은 일은 아무리 부탁해도 거절한다. 그러지 않았다간 무의식이 언제 뭘로 복수를 할지 몰라서.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무기는 힘나는 말들을 차곡차곡 저장한 노션Notion 페이지다. 페이지의 제목은 [언제든 여기로 와] 이고 (힘들 때면) 이라는 전제 조건은 생략해두었다. 이 페이지에 잠시 머무르면 애지간한 혼란은 달래지곤 한다. 말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오늘 페이지에서 찾은 건 배우 최민식과 제작사 대표 한재덕의 대담. 아래는 일부고, 링크를 누르면 전문을 볼 수 있다. 좋은 말에 뭘 더하기가 뭣하니 오늘 일기는 여기서 일찌감치 닫기로 한다. 부디 모두의 무의식이 안녕하기를 바라며.


한재덕_<해피엔드> <파이란> <올드보이> 모두 어릴 때 극장에서 재밌게 봤다. 세 인물이 모두 지질한 소시민이란 공통점이 보이더라. 공교롭게도 세 작품에서 모두 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사한 걸 선택하는 유전인자라도 있는 건가.
최민식_작품의 정서는 모두 다르다. 다만 작품을 선택할 때 나의 밑바탕에 있는 정서는 연민인 것 같다. 모두가 불쌍하다. 세상이 불쌍하고, 그 안에서 제각기 먹고살겠다고 바둥대는 사람이 불쌍하고, 나쁜 놈이든 좋은 놈이든 뚝 떨어져서 보면 모두가 다 측은하다. 나도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영화를 합네, 뭐를 합네 하면서 더운 날 이게 뭔가. 삶 자체가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삶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지랄 같나. <올드보이> 후반작업을 할 때, 어느 일요일 오전에 이런 걸 봤다. 연세 지긋하신 두 할아버지가 폼나게 차려입고 서로 손을 잡고 애들처럼 앞뒤로 신나게 흔들면서 걷고 계시더라. 운전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짠하던지 천천히 할아버지들 걸음 속도를 따라 운전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뭐 그리 좋은 일이 있었을까. 언제 적부터 저리 친하셨을까. 짱짱하던 시절 직업은 뭐였을까. 그런 그들은 지금 왜 저렇게 나이 들어 있나. 산다는 게 그냥 서글프게 느껴졌다. 내 나이가 쉰둘인데 늙으니 왜 공연히 서러워지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
(중략)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최민식_사나이픽쳐스에서 제작한 <신세계>의 강 과장.
한재덕_그건 황정민씨 영화지. 거기서 선배가 한 게 뭐가 있나. (일동 웃음)
최민식_어쨌든 배우라면 오감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창작물을 많이 접해야 한다. 돈 생기면 성형하지 말고 좋은 공연을 보고 콘서트장에 가라. 외형적인 데 말고 나의 내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돈을 썼으면 좋겠다. 진짜는 귀하다. 흔하지 않다. 내가 나를 귀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배우다. 남이 날 알아주기 전에 내가 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개차반처럼 놀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나를 차갑게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처절하게 외로워봐라. 우리말이 아니라 좀 그렇긴 한데 ‘곤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진짜 내 자신을 냉정하게 다그치고 통제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기질이 나와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다른 사람 피해주지 말고 일찌감치 때려치워라. 나도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재무장한다. 훌륭한 배우가 되기까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한재덕_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뭐냐고 여쭤봤는데…. 아무튼 훌륭한 말씀 잘 들었다.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린다.
최민식_미안합니다. (일동 웃음) 아무튼 스스로가 귀한 존재란 걸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개뿔도 없는 자존심으로 버텨야 한다. 그런 거 누가 챙겨주는 거 아니다. 그거 하나로 나도 지금까지 살아왔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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