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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2. 2022

딱 한 가지의 기술

Writer's block Diary: 13일째

 

추억의 <머털도사>는 90년대 초반, 내가 어린아이일 무렵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한국판 단편 만화영화다. <흙꼭두장군>과 더불어서 하도 재미있어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이 애니메이션은 설날이나 추석 때만 재방되곤 했던 귀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무도 굳이 찾아보지 않을 듯하여 대략의 내용을 축약해보자면 <머털도사>는 누덕 도사 밑에서 갖은 심부름을 하며 언젠가 자신도 도사가 되어 마음대로 도술을 부리고 싶어하는, 맹해보이는 아이 머털이가 펼치는 활극이다. 드림웍스의 <쿵푸 팬더>를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그보다 20년은 먼저 나온 이야기다.


누덕 도사는 십 수년 넘게 머털이를 수하로 부리면서 딱 한 가지만을 가르쳐준다. 바로 저 이미지 속에서처럼 머리털을 곤두세우는 기술이다. (아, 그래서 머털이었나?)


그나저나, 동물은 언제 털을 세우는가?


사자의 갈기를 떠올려보자.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서, 내지는 상대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실제 몸집보다 더 큰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털을 곤두세운다. 인간 역시 털 빠진 원숭이긴 하지만 솜털이라는 게 남아 있기 때문에 몹시 긴장하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면 정말로 솜털이 곤두서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고.


하지만 조막만 머털이가 아무리 더벅머리를 곤두세운다 할지라도 그는 사자의 이빨과 사자의 발톱을 가지지 못한, 그저 촌스러운 시골 아이일 뿐.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더벅머리를 통해 약간의 도술을 발휘하긴 했지만 결국 그는 왕지락 도사의 제자, 꺼꾸리에게 소중한 머리털을 모조리 빼앗기고 쓴맛을 보게 된다. 시금치 빼앗긴 뽀빠이처럼, 뿔테 안경을 빼앗긴 서태지처럼 머털이는 그렇게 모든 가능성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황폐한 땅에도 언젠가는 새싹이 돋는 법.


머털이는 나락 속에서도, 겨우 솟아나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확인하며 전복의 때를 기다린다. 알고보니 머털이는 그 머리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머리칼을 뜯어 한 올 한 올 사용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지켜보는 당시에는 그저 온갖 변신술에 혼이 팔려 있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누덕 도사가 오직 한 가지의 기술만을 가르친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실 기술이란 것도 별 게 없는 것. 그것을 특별한 무엇이라 여겨 거꾸리처럼 이 스승, 저 스승을 찾아 헤메며 영리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에둘러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마치 인생처럼,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신이 인간에게 그러했듯 하나 뿐인 스승에게서 밥풀 묻은 주걱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면서도 청개구리처럼 저항 끊지 못하던 삶. 그래도 우리의 머털이는 괜찮을 거다. 그때 기른 맷집 평생을 우려먹고 살아도 괜찮아지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어차피 별 게 없는 게 사실 별 거였으니. 머리털을 세울 수 있는 건 다, 마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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