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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14. 2022

돈과 글

Writer's block Diary: 15일째

Photo by minho jeong on Unsplash


난데없이 돈 공부를 한다고 고백하자, 친구로부터 '김얀'이라는 작가를 추천받은 적이 있다.


검색을 해보니 작품 목록에 <오늘부터 돈독하게>, <돈독한 트레이닝>과 같은 제목 외에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이라든가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과 같은 제목도 함께 등장하여 약간 혼란스러웠다.


후자의 책들은 '달' 출판사에서 나왔고 내가 알기로 달은 시인 이병률의 책을 전담하는 감성 여행 에세이 전문 출판사인데, 김얀은 어쩌다가 전혀 생뚱맞은 노선으로 갈아타 재테크 에세이를 두 권이나 내게 됐을까. 좀 더 살펴보니 그는 브런치에서 돈 이야기를 연재하다 출판사의 컨택을 받았고 재테크 MZ 유투버 김짠부의 채널에 출연할 정도로 이 업계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무심하게 넘겼다가 문득 생각나서 그의 글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아뿔싸. 나와 삶의 궤적이 거의 겹쳐지는 게 아닌가. 돈 벌어서 글 쓰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그 짓을 반복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존재가 나 외에도 있다는 사실은 그러나 반가움보다는 씁쓸함을 더 불러 일으켰다.


작가가 가난하고 굶주린 존재로 이미지가 굳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글이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글의 종류에 따라서는 오히려 글은 글쓴이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주기도 한다. 웹소설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고 카피라이팅이나 UX라이팅, 또는 실용서적 중에서도 올타임 스테디셀러인 재테크 영역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말이다.


또한 10분의 1이라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가 어려운 작가의 종이책 인세 비율을 감안하더라도(나머지 3.5할은 출판사, 3할은 서점의 몫이며 기타 물류 유통 비용이 2할 정도로 되며 이 비율은 출판 편집업계 종사자님의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chamisulbook/9 을 참고해 수정했다. 이는 정률제이므로 책을 많이 팔수록 작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지 당신이 응원하는 작가가 있다면 사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사는 게 작가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전자책은 작가가 5할을 가져갈 수 있으므로...) 어쨌든지 책으로 대박이 나면, 아니 중박만 나더라도 어쨌거나 글쓰기 + 작가라서 가능한 각종 소일거리를 더해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갈 수는 있(는 것 같)다.


<프리랜서 작가로 한 달에 400~1000만 원 버는 법 알려 드립니다> 라는 글로 텀블벅 펀딩 성공에 이어 크몽, 탈잉 등에서 전자책 판매를 하고 있는 송아론 작가는 본인 소개에서 "홍보 영상, 게임 시나리오, 웹드라마, 학습만화, 아동뮤지컬 시나리오, 동화, 웹툰, 세계관 설정, 사업계획서, 카피, 등등"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은 글을 잘 쓰는 능력자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그 능력에 비례해 대가를 받는 일이 어렵기는 해도.


과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높이 평가하던 사회적인 분위기도 2000년 이후로는 확실히 배부른 돼지가 낫다는 쪽으로 전환된 듯하다. 통화량 증가에 따라 저축 외의 투자가 보편화되고 그렇게 불린 가치로 어떤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 금, 달러, 주식, 채권 따위의 자산을 사들여 포트폴리오를 분산시켰다. 단지 밥 먹고 잠 자는 데 쓰던 돈을 단순히 소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내일의 위험과 미지에 대비하는 게 현명한 삶이라는 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돈은 농축된 에너지이다. 돈은 사람이 직접 행하지 않아도 되게끔 많은 일을 대신함으로써 에너지를 아끼게 해준다. 귀한 시간과 능력을 투자해서 모은, 어쩌면 목숨의 일부일지도 모르는 돈은 당연히 귀한 곳에 써야 하지만, 경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시절에는 그게 그렇게 귀한 건줄 몰랐다. 웃긴 건 돈을 경원시하면서도 돈에 연연하는, 과거의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일반인들 중에도 돈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거니와 내 주변을 보아도 예술과 재테크를 병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생활과 예술을 제대로 즐기려면 사실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고급할수록 생활과 예술에 치르는 값도 비싸진다. 생활과 예술을 마음껏 즐긴다는 건 정신적인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정신적인 여유가 있다는 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과 연관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굶주리면서까지 예술을 추구하지 않고, 사실 그게 맞는 걸로도 보인다. 어느 정도의 생계가 해결되어야만 글도 읽히고 그림도 보인다. 창작하고픈 욕구 또한 생존의 욕구보다 계속적으로 강할 수는 없다.


돈 공부를 하고부터 나는 카르페디엠! 욜로 욜로! 재벌들 무조건 OUT! 류의 글이 철딱서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과 돈. 예술과 돈. 그 둘이 꼭 서로를 적대시해야만 하는 걸까. 이제는 깊이 있는 작품은 오히려 돈을 포함한 자본주의를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들에게서 기대해볼만한 무엇이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앞으로는 배부른 소크라테스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이미 조금쯤은 그런 시대가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아마 김얀 역시, 그걸 깨닫고 돈 공부에 더 전념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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