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01)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이 우리의 삶에 중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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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초부엉이
게으른뚱냥이 : 메타버스, AI 산업 특화 정보통신공학자
침 뱉는 알파카
빨간 볼락
의무교육으로부터 시작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2024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시험을 치르러 가는 학생들을 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어릴 적의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것을 성실히 수행하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그들이 지시하는 일에 단 하나의 의문을 품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어릴 적 수업시간에 반 친구 한 명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그저 그 아이의 반항과 장난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수업 시간 중간에 돌발스럽게 물어본 “이거 왜 해야 해요?”라는 질문에 선생님 또한 그 친구의 반항과 장난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친구의 질문은 꽤 일리가 있었던 것 같다. 미적분, 행렬, 기하와 벡터 등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들은 어른이 되고 나면 특정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지식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파파고와 같은 훌륭한 번역기의 등장으로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해외여행 다닐 때 큰 어려움은 없다. 외국으로 이민 혹은 거주를 하지 않는 이상 영어를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의무교육은 무엇을 위해 설정된 것일까? 적어도 나는 미래의 내 아이가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그 아이의 질문을 반항과 장난의 표시로만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미래의 내 아이를 이해시킬 수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이번 주제를 선정하였다.
지식은 권력을 대물림하는 수단이다. 그럼 의무교육은 대한민국 학생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의무교육에 대해 두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첫 번째, 의무 교육은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줄 세우기 위한 수단
어쩌면 너무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이며,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주장이다.
한국의 수능은 우리의 학문적 소양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확인하기보다는 단 시간 안에 정해진 유형의 문제를 누가 더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풀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우리의 학창 시절 목표에서의 최우선순위가 대학입학 말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의무교육은 학생들 대학에 보낼 때 사용하는 기준으로서 사용하는 잣대로 보인다.
두 번째, 지식은 곧 권리와 권력을 넓혀주는 수단이기에, 의무교육은 국민들의 최소한의 권리 보호 도구
지식은 곧 우리의 권리와 권력을 넓혀주는 수단이기에 의무교육을 통해서 국민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 아닐까? 이는 삶의 전반에 걸쳐 생각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이고 본질적인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지식의 소유는 곧 권력의 소유와 동일시되어 왔다. 글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만이 읽고 쓸 수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글로 지식을 적어낸 책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더 나아가 책을 소유할 수 있는 자와 소유할 수 없는 자가 나뉘어 있었으며, 왕, 귀족과 같이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일반 백성, 하층민, 노예는 책을 소유할 수 없었으며, 글을 읽을 수 조차 없었다.
하위계층이 지식을 가지게 되는 순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배우지 못한 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중에는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은 기준 또한 존재한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사람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즉, 자신의 권리와 권력을 넓혀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민주주의의 탄생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 아테나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민주주의에서는 “성인 남성 아테나인” 만이 민주주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성, 아이, 외국인, 노예들은 참정권을 얻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만한 지식이 없는 존재, 즉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 오히려 길을 흐리게 만들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식은 곧 권력이다. 국가는 의무 교육이라는 토대 아래에 의무적으로 국민들이 일정한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게 만듦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의무교육은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논의되었던 모든 의견에서 한 가지 동일한 포인트는 바로 의무교육이 학생과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1) 국가는 큰 규모의 기업체이다.
한국의 교육은 국민이 4대 의무(국방, 납세, 교육, 근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국민들 통제하기 훨씬 쉽지 않을까?
(2) 의무교육은 선별을 위한 검증도구다.
의무 교육은 라벨링의 역할을 한다. 먼저 의무 교육에 들어가는 교과 내용을 편찬하는 것은 교사와 교수진들이다. 여러 가지 학문과 지식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정하는 것은 결국 위원회의 주관이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내용을 선정하는 것일까? 물론, 연구결과에 의해 밝혀진 사실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집필진이 집필한 내용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면, 본질은 이를 교육체계 내에 편입하고, 의무교육을 잘 따르는 학생을 분류하기 위한 내용을 위주로 선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에게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과 같은 보상이 따른다. 의무 교육을 잘 따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대로 낮은 대학, 낮은 임금과 같은 처벌이 주어진다. 결국 의무 교육은 국가로부터 주어진 것을 잘 이행하는 사람을 라벨링 하기 위한 수단이다.
(3) 의무교육은 국민의 생산량과 노동효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다.
의무교육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등장한 이유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18세기 산업화 시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간단한 산수 정도는 해야 한다.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근로자를 양성하기 위해, 즉 우수한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공교육이 등장한 것이다.
18~19세기가 자본가의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생긴 것 등 사회의 안정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설파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전 국가의 정책적 방향성으로 구축한 것이 의무교육이다.
만약 의무교육 외에, 내 아이에게 딱 한 가지 교육만 해줄 수 있다면?
(1) 커뮤니케이션 - 빨간볼락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갖춰야만 하는 능력이 있다. 바로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규모의 일들은 혼자서 수행하지 못한다. 타인과 협동하고 그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의 말을 들으면서 이야기의 근거, 맥락을 파악하고 또한 나의 의견을 조리 있게 잘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2) 논리학 - 골초부엉이
논리학은 철학, 수학과 연결이 된다.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논리학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생산해 내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역사 - 침뱉는알파카
역사를 배우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바로 근본이다. 역사에 등장한 위대한 인물 혹은 무언가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알게 된다면 그 근본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는 우리가 배운 지식들이 과거부터 무엇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해당 지식을 현재의 문제 해결과정에 접목 가능하다.
(4) 정보 - 게으른뚱냥이
세상이 변함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은 달라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식을 구하는 방법도 변한다. 어른이 되어 필요한 것은 학생 때 배운 과거의 지식이 아닌,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5) [당신의 선택은?]
무엇을 선택했든, 그 경험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당신만이 당신의 자녀에게 전해줄 수 있다.
그런 가르침과 지식들이 쌓여 하나의 성장한 인격체를 형성하게 될 것이며, 그 인격체는 당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당신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무엇'과 '왜'를 함께 가르쳐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