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03) 우리는 돈으로 어디까지 살 수 있을까?
주제 제안 및 작성자
금일 업로드되는 브런치는 게으른뚱냥이님의 발행임을 알립니다.
골초부엉이
게으른뚱냥이 : 메타버스, AI 산업 특화 정보통신공학자
침 뱉는 알파카
빨간 볼락
돈으로 구매 가능한 것
어렸을 때, 가족 다 같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줄이 길게 늘어선 어트랙션 앞에서 아버지는 어떤 티켓을 직원분께 건네주셨다. 티켓을 건네받은 직원은 우리 가족을 옆으로 나있는 다른 통로를 안내했다. 그 긴 줄을 무시하고 우리는 티켓을 직원에게 건네주자마자 어트랙션을 탈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린 시간을 돈으로 산 거야"
그동안 어른들로부터 배운 규칙은 "사람들이 줄 서 있을 때, 새치기는 하면 안 돼"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그 규칙을 어기셨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제재하지는 않았다. "돈"으로 구매했다는 이유로 새치기가 인정된 것이다.
점점 우리 사회의 가치가 자본 중심적으로 변화하는 만큼 돈과 경제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겨났다.
돈으로 구매 가능한 것은 그저 실체가 있는 물건들 뿐일까?
혹은 사람의 “노동”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구매 가능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또,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 발전과 비례해 늘어나는 물건과 서비스의 종류
최근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콘텐츠를 시청했는데, 바로 일본의 "렌탈 친구" 다. 돈을 받고 일정시간 동안 연인 혹은 친구 행세를 해주는 일종의 직업이다. 연인을 원하는 경우, 원하는 외모의 이성을 고른 후, 정해진 시간 동안 마치 진짜 연인처럼 같이 밥을 먹거나 데이트를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렌탈 친구를 일반적인 알바와는 다른 직업으로 느낀다. 렌탈 친구 혹은 렌탈 연인을 고용하는 것은 사람의 노동이나 시간 외의 다른 무언가를 함께 구매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다른 무언가"는 무엇일까?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다. 렌탈 친구/연인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뿐 아니라, 마치 사람의 감정을 구매한 것처럼 보인다. 본래 애인이나 친구는 나와 상대방 사이의 특별한 감정 (예를 들어, 사랑이나 애정, 혹은 우정 등)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렌탈 친구 혹은 렌탈 애인이 진심으로 구매자에게 애정을 가지거나 우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저 특정 시간 동안 애정이나 우정을 가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여타 다른 알바들처럼 시간을 판매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 이들이 상담원, 안내원 등 여러 서비스직처럼 사회적으로 흔히 부르는 감정 노동자와 무엇이 다른 걸까?
우리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고, 팔고 있었던 것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것들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 흔히들 사업을 하기 전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다. 자문은 정확이 무엇을 구매하는 것일까? 전문가가 오랜 기간 쌓아 올려온 경험일 수도 있으며, 전문가가 되기까지 공부해 왔던 지식일 수도 있다.
일례로, 나의 경우엔 시급 9,860원의 하루 3시간짜리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사장님이 나의 노동력을 구매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나로부터 구매한 것은 음식 서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돈 계산을 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계산 실력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날이 일하던 도중, 방학시즌이 되어 손님이 드문 날이 지속되었다. 하루 3시간 중 제대로 된 일을 한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에 그쳤다. 1시간을 내리 의자에만 앉아있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나의 노동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구매하신 거구나"
물론 그분들이 나의 시간만을 원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체력도 필요는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부터 가장 1순위로 구매하신 것은 올 수 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손님을 응대할 수 있도록 나의 3시간을 구매하신 것이다.
구매 가능함, 구매 불가함을 구분 짓는 것의 경계는?
앞서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시간을 돈으로 구매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 아르바이트만 존재하지는 않다. 일례로 "리셀러"를 들 수 있다. 최근까지 명품의 인기는 일반인, 고소득자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사고 싶어 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때부터 명품 브랜드들은 '선착순 판매'를 도입했고, 수요가 높아진 고가의 명품은 그저 돈만 가지고 구하기는 힘들어졌다.
명품매장 앞에서 새벽부터 혹은 전날밤부터 줄 서서 매장이 열자마자 명품을 구매하려는 일명 "오픈런"이 한때 성행했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구태여 오픈런에 자신의 시간을 쏟지 않는다.
대신 오픈런을 대신해 줄 대행사를 찾았다. 혹은 리셀러들에게 웃돈을 주고 일반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명품을 구매한다. 리셀러들은 자신들이 정상 판매가 대비 더 높은 가격에 명품을 판매하는 것에 있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땡볕에 명품매장 앞에서 몇 시간을 태우는 대신, 우리가 그 시간과 노고를 대신 태우고, 태운 만큼 돈으로 받은 것뿐이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결국 리셀러들 또한 시간과 노동을 판 것이다.
일반 알바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아르바이트는 값진 노동이고, 리셀러는 정의롭지 않은 노동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반면, 우리 사회에 절대 구매하지 못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매춘, 장기 매매, 매혈 등이 그 예이다. 매춘, 매혈, 장기매매. 이들의 특징은 성, 혈액, 장기와 같은 바로 사람에게서만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감정"도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르바이트 공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동성, 임상시험도 어찌 보면 우리의 신체를 판매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생동성, 임상시험은 알바 공고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고, 매춘, 매혈, 장기매매는 절대적으로 금지된 것일까?
흔히들 성, 혈액, 장기와 같은 것을 판매하게 될 시, "인간존엄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좀 더 간단하게 답해보자면 인간을 마치 "노예"처럼 사고파는 것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간을 노예처럼 판매하면 안 된다. 노예를 구매한다는 것은 타인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적인 것부터, 노동, 시간, 인격 그 모든 것을 판매하고 구매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매춘은 인간의 "성"만 판매하는 것이다. 인간이 “노동”, “시간” 혹은 “감정”을 팔듯이, “성”만을 판매할 수는 없는 것인가? 성이나 혈액과 같은 것을 판매한다고 해서 인간존엄성을 전부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인가?
또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매춘, 매혈, 장기매매 등이 불법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강제성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이나 혈액, 장기 등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매하는 사람에게 강제성이 전혀 없다면 성이나 혈액, 장기를 판매해도 괜찮은 것인가?
만약 누군가가 혈액을 특정 가격에 구매하고 싶다고 널리 공고를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본 어떤 사람이 이 정도의 가격이면 충분히 내 피를 팔아도 만족스러울 것이라 느꼈다. 그렇다면 이들의 거래는 어떠한 강제성도 없으니 거래를 해도 괜찮은 상황인 것일까?
기본적으로 구매해서는 안 되는 영역은 존재한다.
어떤 나라에서 돈만 내면 원하는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허용해 주는 "살인합법증"을 판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을 모아도 얻기 힘들만한 매우 높은 가격에 이를 판매한다 할지라도 "살인합법증"을 구매하는 누군가는 높은 확률로 존재할 것이다.
본인이 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다툼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살인합법증”을 구매할 충분한 재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 것이다. 불안이 매우 높아진 사회에서는 결국 모든 것이 "돈"을 기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재력이 충분한 사람은 나쁜 짓을 저질러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지만,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행동 하나하나에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돈으로 구매가능한 영역이 점점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그 영역을 좀 더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만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에서 겨울한정 딸기시루를 판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먹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런데 딸기시루를 구매한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웃돈을 주고 판매해 버렸다. 리셀러와 비슷한 상황이다. 웃돈을 주고 판매한 사람의 의견에 따르면 그들은 그저 대전까지 올 시간이 없는, 혹은 줄을 설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시간을 판매한 것뿐이다. 과연 이러한 행위에서 피해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성심당은 예전부터 "봉사"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해 왔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성심당 입장에서 가격은 그저 마지노선이다. 가난하던 부자던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성심당이 추구하는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웃돈 주고 딸기시루를 판매해 보자. 이러한 리셀을 어떠한 제제 없이 놔둬버리면,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전까지 내려가지 않고, 줄을 서지 않고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 딸기시루를 구매할 것이다. 결국 딸기시루는 돈 많은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심당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멀어져 버린다. 성심당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딸기시루 가격의 마지노선을 정해놓았다. 그리고 돈 이외의 것, 예를 들어 시간이나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이 딸기시루를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적어도 시간과 노력은 모두가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니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성”이 정말 인간 존엄성에 해당하는 것일까?
(1) 매춘, 매혈, 장기매매의 인간존엄 접근적 사고
인간의 3대 욕구라 하면 흔히, 식욕, 수면욕 그리고 배설욕(혹은 성욕)을 의미한다. 사람은 이러한 욕구를 돈을 내고 구매할 수 있다. 식욕이 커지면 음식을 구매하여 사 먹을 수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욕이 커지면 수면제를 구매해서라도 수면을 채우게 된다. 그렇다면 성욕 또한 그 욕구를 충족하고 싶다면 돈으로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식욕과 수면욕 그리고 생리적인 배설욕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성욕을 과연 기본적인 배설욕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욕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에 비해 더 큰 욕구를 제공해 준다. 인간의 쾌락 지수를 수치화한 표를 살펴보면,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을 때, 혹은 쾌변을 했을 때 보다, 성관계를 했을 때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여준다. 물론 해당 자료의 근거는 비과학적일 수 있으나,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이러한 성욕의 특징으로 보았을 때, "성욕이 인간 존엄성에 들어가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든다.
(2) 사회의 도덕윤리는 집단무의식에 따라간다.
보통 구매가 제한되는 것과 제한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윤리를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윤리는 집단 무의식에 따라가게 된다.
과거에는 노예를 하나의 도구로 보았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인간존엄성의 위배로 보고 노예를 불법으로 정한 것과 같이, 도덕윤리는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결국 사회의 기준, 즉 구매 가능한 기준은 인간 본능에서부터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도덕윤리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배웠던 집단 무의식에 의한 것이다.
기혼자이신 페미니스트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성의 성 매매를 성 노동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다시 교수님께서 여쭈어 보고 싶다. “본인이 직접 성 노동을 구매하실 수 있나요?” 혹은 “성매매 과거가 있는 이성과 교제를 하실 수 있나요?” 만약 이에 대해 “그럴 수 없다”라는 답변이 나온다면 이러한 답변은 그분이 집단 무의식에 의해, 혹은 과거에 배웠던 도덕법칙에 의해 나온 답변일 거라 생각된다.
(3) 동일한 재화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가치를 가진다.
무언가를 구매하는 데 있어서 얼마의 비용을 낼 수 있느냐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결국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구매할 수 없는 것, 혹은 금지된 것의 기준도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서 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기준이란 없다. 모두가 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하나로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한 유명한 라면집은 항상 문전성시에,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도 꼭 들리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그 수요가 너무 높았기에 어떤 사람은 먼 타국에서 왔을지라도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라면집 사장은 한 가지 묘책을 내었다. 바로 라면집 출입증을 500엔, 한화로 5000원으로 판매한 것이다. 12시 이전까지는 줄을 서서 먹을 수 있으나, 12시 이후부터는 출입증을 구매한 사람만이 라면집에 들어와 라면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꽤나 합리적인 요소로도 보인다. 시간을 들여 사 먹을 사람은 12시 이전에 와서 줄을 서면 되고, 시간이 아니라 돈을 더 투자해서 사 먹고 싶은 사람은 5000원을 더 내고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입장비와 재화의 구매비용이 다르게 나가는 곳은 이 라멘집이 처음은 아니다. 클럽 입장을 위해서는 입장을 위한 구매가 이루어지고, 입장 후에 술이나 음식을 위한 구매는 따로 이루어진다. 경매장 또한 경매와는 연관되지 않은 입장권이 따로 존재한다.
이는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시간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형태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라멘집 근처에 사는 사람이 라멘집에서 줄을 서는 시간과 먼 타국에서 여행온 사람이 줄을 서는 시간의 가치는 분명 다를 것이다.
(4) 우리는 시간으로 돈을 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은 어찌 보면, 시간을 들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시간을 재화와 교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에 시간과 재화 사이의 교환을 중개해 주는 요소로 “돈”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란 무엇일까?
돈은 사실 거래되는 가치에 비해 실질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물물교환을 쉽게 하기 생겨난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다 종이돈을 물질적으로 살펴보면 그저 예쁘게 염색한 종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려진 그림에 따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는 5천 원, 만원, 그리고 오만 원에 달한다.
이러한 종이돈은 우리 사회에서는 높은 가치에 교환되지만 반대로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리 가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그 물질적 가치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트코인, 주식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높은 가치로 사회에서 교환되고 있다.
결국 무엇인가를 구매한 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다.
돈으로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까?
돈으로 얼마를 내든 구매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까? 단란한 가족,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은 억만장자도 구매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은 돈으로는 합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라면, 반대로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합의된 대상만 가능한 것이다.
사회는 '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것들을 법적으로 정해두었지만, 우리 스스로는 정해두지 않았다.
성매매, 마약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돈이 있어도 그 두 가지를 살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더 많이 살 수 있을 것들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1.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
2. '돈으로는 절대 팔 수 없는 것'
을 정해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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