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01)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중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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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볼락 : 디지털 헬스케어 프로덕트를 만드는 간호사
왜 종교는 꼭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까
초등학교 시절, 문화상품권을 준다던 교회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러, 길을 걸어가던 내게 인상이 좋아 큰 일을 할 것 같다던 종교까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지속적으로 종교의 영향 속에 있어 왔음을 깨달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에는, '종교' 그 자체에 매우 큰 관심이 생겨, 기독교, 불교, 힌두교에 대해서 공부해보기도 했다.
이웃들과 나의 고통과 어려움을 공유하며,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기독교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 지 배울 수 있었고,
정신적 성장을 통해 번뇌를 다스리는 불교를 통해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으며,
신의 본질적, 궁극적 모습은 '나'에 이르게 된다는 힌두교의 우파니샤드를 통해 '주체적 사고'를 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런 가르침들로 무장된 내게 누군가 물어본다.
'그래서 어느 종교를 믿는다고?'
기독교도 믿고, 불교도 믿고, 힌두교도 믿는다면?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좋고,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서 벌을 받게 된다고 믿고 있기에, 기독교와 불교를 믿는다고 답변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러 종교를 같이 믿는 게 종교인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기독교와 불교는 양립할 수 없으며, 괴상한 믿음의 방향은 이단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왜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 선택해야만 할까?
4대 종교의 핵심 키워드
기독교 - 사랑과 자비, 사회적 봉사, 속죄와 부활
불교 - 윤회와 업보, 명상과 수양, 비폭력과 자비
힌두교 - 넓은 포용력, 다신교, 철학적 깊이
이슬람교 - 공동체 의식, 엄격한 규율, 자선 활동
유신론과 무신론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폴 티리 돌바크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무신론자로 태어난다.
모태신앙의 경우 해당 '신앙의 근간'이 자유의지로 선택된 것이 아니므로, 논외의 케이스로 두겠다.
그렇게 태어난 무신론자들은, 여러 환경과 경험을 통해 '신'을 믿게 되며 유신론자가 되어간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분포 비율은 각각 84%, 16%이다.
무신론자들은 속한 종교가 있었던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종교의 역사 혹은 교리 등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신론자들은 왜 신을 믿지 않을까?
미국의 무신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위와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에 계속 의문이 들어서,
종교단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필요성을 못 느껴서 등등
여러 이유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를 포함한 무신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84%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종교통합의 시도들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거창하게 종교 통합으로 이야기를 하였지만, 사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 유신론자에게는, 한정된 색채에서 벗어나 다채로움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 무신론자에게는, 유신론을 이해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도구가,
나는 그것이 종교의 통합, 즉 4대 종교에 대한 핵심적 내용이 담긴 하나의 '미디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교인들 혹은 무교인들이 고정된 종교적 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개척하거나 따르고자 하는 부분을 '미디엄'에서 차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신성모독일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만, 종교적 교류를 위한 대화의 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 등은 서로를 더 알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종교를 통합한다는 것의 의미
결론적으로, 종교 통합의 의미는
사람의 가치관 혹은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내가 위에서 이야기 한 종교통합 '미디엄'이 아닐지라도.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며,
그 사회를 구성하는 80% 이상의 인간은 종교를 믿고 있다.
1. 착각적 통제감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사람이 주로 신을 많이 찾는 시점은, 무언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것을 맞닥뜨릴 때이다.
가령, 대입 수능시험의 결과를 기다릴 때, 자연재해를 맞닥뜨릴 때, 면접 절차의 결과를 기다릴 때, 등이 그 예시이다.
이때 우리는 신을 찾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이는 착각적 통제감(Illusion of Control)으로 칭하며,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닐까?
2. 종교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분화된다.
큰 분류로는 4대 종교(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로 나눌 수 있으나, 그 종교 내에서도 많은 종파와 교파가 존재한다.
결국 교파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서술된 성경에 대한 이해, 관점, 해석의 차이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같은 교리 내에서도 종교적 지향점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가령,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성공회의 경우, 16세기 영국의 국왕 헨리 8세가 결혼 무효소송을 교황에게 제출했으나, 이를 거절당한 후 만들어진 교회라는 주장이 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공회와 천주교가 지향하는 바는 같으나, 성공회의 신부는 결혼 / 이혼이 가능하지만, 천주교의 신부는 성직을 받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결혼을 원하는 신부라면 필요에 따라 교파 내에서도 성공회를 택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 믿음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3.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타 종교에 열려있어야 한다.
가톨릭은 전 세계 모든 종교와의 대화와 일치를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타 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특히, 천주교 신부들은 타 종교를 공부하며, 본인의 신앙심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으로 알게 된 하나의 종교만을 바라보고, 다른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거부하는 자세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과 바로 결혼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진정으로 나에게 맞는 사람, 종교를 찾기 위한 다면 더욱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4. 기도를 통한 간절함의 표출이 의미하는 것은?
기도는 항상 간절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간절함을 통해 우리는 진정 그 간절함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받게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친구와 싸워서 사이가 나빠진 게 다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인 경우.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친구에게 직접 사과를 하거나 화해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을 것이다.
우리는 간절함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주제는 다소 민감한 주제였던 만큼, 독자분들의 날카로운 비판들이 예상된다.
다만, 이러한 의문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굳건한 믿음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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