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의 당시 기록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신인배우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제가 활동할 당시, 아니면 저는 그랬었죠. 그중 하나가 '샵'이었어요. 여기서의 '샵'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계신 연결된 미용실입니다. 보통 매니저분들께서 알거나 이미 소속사와 연결된 곳으로 가게 돼요.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러 군데를 다니다 보면 그중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기준은 여러 가지예요. 아티스트 분들이기에 본인들의 개성과 추구미가 있으니 그게 잘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말이 잘 통해서 인간적으로 잘 맞는 사람도 있죠. 12월 26일, 제주도에서 만난 이 친구는 둘 다를 가진 선생님이었어요.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사람. 불현듯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설레고 궁금했어요. ' 어떤 모습일까, 어떤 6년의 삶을 살았을까. ' 얼마나 궁금했던지 꿈에도 나왔다니까요.
애플민트 화분을 골라 샵 안으로 들어갔어요. 모던한 스타일의 옷차림과 검은 머리색, 은색 링귀걸이를 하고 마중 나온 친구의 모습은 신기할 만큼 꿈에 나왔던 모습과 흡사했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6년 전 얼굴은 그대로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이 성숙해진 느낌 이랄까요. 대표원장이 적힌 명함을 받는데 기분이 새로웠어요. 이렇게 성장을 했다니 너무 멋지다, 엄마 미소가 났습니다.
늘 미용실에서만 보던 우리가 처음으로 사적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근황부터 지금 하는 고민들, 가치관, 바라보는 미래상까지 각자의 넓은 공간을 구석구석 주고받으며 대화는 이어졌죠. 우리가 알고 지냈던 그때, 꿈만을 쫓고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던 그때,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던 그때를 회상하며 불안감을 공유했습니다. '우리들의 20대는 전쟁터였어.'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꽃집에 나를 데려갔습니다. 개성이 넘치는 공간에 신이 나 있는 사장님이 나왔습니다. 작은 선인장을 인형 머리에 합쳐 만든 시그니쳐 식물이 있는 이곳도 멋짐이 묻어나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어요. 30대 중반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명함을 대신하는 것 같아요. 오늘 만난 여성들처럼요. 명패를 내세우지 않아도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으로 여기는 태도, 독립적이고 고유한 컬러가 묻어나는 인상이 존경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제주에서 만났던 '멋진' 사람들의 특징은 제주에서 팔자 좋게 살 것 같은 예상을 빗나가는 사람들이었어요.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죽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자신의 시간과 젊음을 갈아버리고 치열한 고민을 하죠. 그럼에도 이 사람들에겐 생동감이 느껴졌어요. 같은 전쟁터 안에서 무엇이 다른지 그들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제주가 가진 마법이 힘의 존재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매년 다이어리를 씁니다. 일기장도 있고 제주살이용 일기장까지 따로 있습니다. 특별한 기록장, 디데이의 형식으로 적어 내려가던 날이 어느새 120일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한 권의 일기장이 책처럼 느껴집니다. 매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긴 일기장.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내 책'을 내보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깜찍한 생각이 듭니다. 가방에 일기장들을 다 넣고 카페를 갑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오롯한 시간을 보내는 루틴을 하기 위해 카페 선정은 평소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검은 모래가 보이는 고요한 카페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펼쳤습니다. 볼록하게 올라온 일기장 안에는 제주도를 오기 전과 후가 나뉘어 있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인 나를 느끼며 분명하게 달라진 나를 바라봅니다. 이제 곧 제주를 떠날 시간이 옵니다. 내려올 때와 다른 기대감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오늘의 나로 제자리로 돌아간 뒤의 삶은 어떨까요?
2022년 올해의 마지막 날, 제주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친구들과 함께 성산일출봉에 갔습니다. 6년 전, 로마에서 맞이했던 새해의 카운트다운이 생각납니다. 콜로세움에 가득 찬 사람들 모두가 함께 외치는 카운트다운, 이 날의 감명이 또 다른 문화, 풍경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했었는데 올해는 제주에서 맞이하게 되어 더 특별함으로 기록될 것 같아요. 제주는 따뜻합니다. 1월인데도 춥지 않아요. 떠오르는 해를 가뿐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산일출봉에 숫자가 새겨집니다. 레이저로 만들어진 카운트다운이 0을 향해 달려갑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어멍, 가족들, 내 친구, 겨울이, 제주, 바람, 들 꽃, 따뜻함, 검은 돌, 또 뭐가 있더라 아아.. 아!!!
"해피 뉴 이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18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