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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5. 이별/ 관계 지속 단계

②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준비- 관계패턴 분석 및 직면

by Helping Hands

내가 사는 우주의 축소판, 연애와 결혼


관계를 지속하기로 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이별을 선택했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지난 만남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이 끝난 후 상처나 두려움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이별을 고하기 무섭게 새로운 상대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자신을 보살펴주고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둘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하든, 새로운 만남이 보다 발전적이고 건설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지난 만남에서 드러난 패턴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전 또는 더 오래된 연애, 결혼 관계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끌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상대방은 나의 어떤 면을 좋아했는지,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문제와 그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 이별에 이른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런 자기 성찰을 통해 우리는 성장을 경험하고 이후의 관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계의 역동


심리학에서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역동(dynamics)에 초점을 맞춘다. 상담이나 치료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역동은 내담자가 타인,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투영하는 하나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상담자는 이 관계에서 나타나는 내담자의 대처방식, 그리고 내담자를 통해 이야기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 방식을 통해 내담자가 관계에서 나타내는 주요 이슈들을 파악하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한다.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관계 역동이 내담자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반영하는 축소판이 되듯, 가장 친밀한 관계인 연애, 결혼 역시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관계를 가장 압축적이고 밀도 있게 드러낸다.



원가족이 연애와 결혼에 미치는 영향


부모와 형제자매를 포함하는 원가족과의 관계는 연애와 결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 형제처럼 인생에서 최초로 경험하는 관계에서의 패턴이 연애나 결혼에서도 반복되거나, 원가족으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투사되어 채우고자 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감정표현이 많지 않고 부모에게 기대거나 응석을 부릴 수 없었던 환경에서 자란 A가 있다고 하자. A는 어릴 때부터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자라났고, 누구에게 기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가 다정다감한 성격의 B라는 연인을 만나면서 마음을 무장해제한다. 처음에는 A가 너무 독립적이고 의지하지 않아서 B가 A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조금 더 자신에게 기대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B의 한결같고 지지적인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연 A는 B에게 심적으로 상당히 의지했고 어느새 자신이 부모에게도 하지 않았던 응석이나 어리광을 부리며 마치 유아기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다. 처음에는 A가 자신을 신뢰하는 것 같아서 기뻤던 B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는 A가 부담스럽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당당하고 자신감 있던 A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 같아 당황스럽다.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관계는 없다


A와 B의 사례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애나 결혼을 통해 나의 부족함,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를 충족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온전히 수용받고 싶어 한다. 이런 욕구 자체가 틀렸거나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연인이나 배우자가 나의 모든 것들을 받아주고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상담사라면 상담을 받는 동안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인, 배우자는 우리의 상담사가 아니다.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도 온전히 해주지 못한 일을, 평생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이런 비현실적인 기대를 계속 안고 살아가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패턴을 잘 살펴보고, 충족되지 않았던 욕구는 무엇인지, 그것을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충족받고 균형을 맞춰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썸, 데이트, 연애, 결혼 그 무엇이 됐든 관계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선을 넘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선을 넘지 않고서는 그저 안전한 경계선 밖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용기 내어 상대방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알아가는 과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정도 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연인과 배우자는 나와 동등한 인격체이지만, 동일한 인격체는 아니다. 그렇기에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설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인(人) 자의 모양을 잘 살펴보라. 서로 기대고 있지만 50대 50으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누구 하나가 완전히 누워버리면 人자의 모양은 흐트러져 버린다.




진로/커리어에서의 애도와 자기 성찰


진로와 커리어에서도 연애, 결혼에서의 이별과 같이 애도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 실직이나 퇴직, 전직, 이직, 창업 등 이전 커리어가 끝나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자발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커리어 전환을 맞았다면 이전 커리어에 대한 마음 정리가 어느 정도 많이 되어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 맞은 실직이라든지 원치 않은 갑작스러운 전직 등의 경우 이전 커리어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이에 대한 평가와 정리가 잘되어야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기가 수월해진다. 마치 연애나 결혼생활에서 전 애인, 전 배우자와의 갑작스러운 또는 원하지 않는 이별을 맞게 된 사람이 이에 대한 충분한 애도나 성찰 없이 다른 사람을 성급하게 만났을 때 다양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운이 좋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사랑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잊는 것 같은 치유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만남을 통한 치유는 이별에 대한 애도와 성찰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업무적, 대인관계적, 상황적 어려움 등 사람마다 이전 진로나 커리어에서 경험했던 문제들이 다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연애, 결혼에서 이전 관계의 패턴을 돌아보는 것처럼 나의 관계 맺는 방식, 서로에게 가졌던 기대, 충족되었던 또는 충족되지 않았던 욕구들을 평가해보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 진로와 커리어 선택에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기대치를 갖고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직면’


연애와 결혼, 진로와 커리어 영역에서 모두 이별은 ‘상실’의 경험에 해당하며, 상실 중에서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major life events)에 속한다. 따라서 이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이나 생각, 의식적/무의식적인 반응을 잘 살펴보고 적절히 다루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직면하고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서 미뤄두고 한구석에 처박아둔 마음의 조각들은 나중에 더 큰 후유증을 동반한 채 더 큰 덩어리들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당장은 힘들고 아플지 몰라도, 나에게 남아있는 상처나 흉터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아픈 곳이 있다면 빨간약도 발라주고, 반창고도 붙여주자.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을, 나부터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 인정하고 직면하기로 한 순간, 이미 문제는 반 이상 해결되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하는 일만이 남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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