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살짜리 집과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하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때가 있다. 장크트 갈렌(St.Gallen)이라는 스위스 동부 지역 도시도 그중 하나였다.
스위스만 아니라 유럽에 올 때면 친구나 지인이 있는 지역에서는 어김없이 그들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장크트 갈렌에서도 한 농부의 집에서 2박 3일간 신세를 졌다. 마침 지인이 이 집에 머물고 있던 터라 나도 좀 더부살이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는데, 고맙게도 오갈 데 없는 여행객을 받아주었다(역시 사람은 뻔뻔하고 볼 일이다).
농부의 집은 생 갈렌이라고도 불리는 장크트 갈렌에서 S-bahn(대도시에서 외곽 지역, 근교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을 타고 20분쯤 들어가는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잠시 풍경을 바라보는데, 푸르게 펼쳐진 너른 들판과 드문 드문 보이는 집들, 저 멀리 보이는 호수까지 탄성을 자아낼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도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니만큼 이 집에 머물지 않았다면 평생 와볼 일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또 새로운 곳을 알게 되다니 행운이다.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십여 분 정도 걸었을까. 한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조주택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집은 지은 지 200년이 넘었다고 했다. 200년이라니. 조선 시대에 지어진 집이니 거의 유적지 같은 느낌이다.
연세를 많이 잡수신 어르신인 만큼 집안 곳곳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삐그덕 끼이이익하는 나무소리가 들렸다. 혹시 경망스럽게 뛰기라도 하면 "네 이노옴!"하고 집이 호통을 칠 것 같았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여닫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빗장 역시 함부로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뭐든 건드리기만 하면 망가뜨리기 일쑤인 마이너스의 손, 똥손인 나로서는 만지기도 조심스러웠다.
집 자체가 매우 커서 나 같은 길치는 집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겠다 싶었다. 그리고 설마 했던 그 일은 역시나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도 여러 군데였는데, 내 방에서 내려가는 길을 헷갈려서 집주인인 다니엘 방을 노크하기도 했고, 또 다른 방에 머물고 있던 친구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했다. 아무래도 신이 나를 창조하실 때 방향감각과 공간지각 능력을 깜빡하고 안 넣으신 게 분명하다.
내가 머물 당시에는 이 고택의 주인이자 체리 농사를 짓고 있는 다니엘, 나의 한국인 지인, 수확철을 맞아 일손을 돕기 위해 일꾼으로 고용되어 온 루마니아 친구 두 명이 함께 있었다. 다양한 국적과 나이, 성별을 가진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여 첫날 저녁은 한식을 나눠먹었다.
지인과 함께 라볶이, 불닭볶음면, 주먹밥을 준비했는데,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누가 더 매운맛을 잘 참는지 내기를 했다. 한국인으로서 조금 치욕스러운(?)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루마니아 친구(男)의 승리로 끝났다. 나도 지인도 매운맛에 취약한지라 쉽게 결과에 승복했다. 벌겋게 입술이 퉁퉁 부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 친구에게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었지만 20대의 패기인지 호기인지, 기세 등등하게 자기가 1등이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루마니아 친구는 2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자그마한 체구와 동안으로 십 대 소녀처럼 앳되어 보였다. 매운맛 내기에서 1등을 한 친구와 같은 도시 출신인데, 3년 전에도 이 집으로 수확철에 일손을 도우러 함께 왔다고 했다. 두 친구 모두 영어가 상당히 유창했는데, 영어실력으로 미루어볼 때 본국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많이 받은 친구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차이와 동유럽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더 잘 사는 서유럽이나 다른 나라로 가서 육체노동을 하는 상황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이 친구들을 보며 문득 2년 전 유럽여행을 위해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 대기하는 동안 만난 리투아니아 친구가 떠올랐다. 그때도 혼자 여행길에 올랐는데, 공항 대합실에서 유난히 큰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맥주를 마시는 대머리 젊은 백인 남자가 눈에 띄었다. 덩치도 크고 왠지 인상이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가급적이면 눈도 마주치지 말고 말도 섞지 말아야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난 이 남자가, 갑자기 비교적 가까이 앉아있던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아... 인상도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일단 물어보는 말에 다 대답을 해주었다. 막상 얘기를 하다 보니 험상궂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순박한 친구였다. 이래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조금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내적 반성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자기는 리투아니아 사람인데, 본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았지만 몸 쓰는 일인 도축업자로 외국에서 일했다고 했다. 한국 진해에서도 일한 적이 있고, 얼마 전까지는 영국 런던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잠시 태국에서 머물기 위해 가는 길인데,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어제부터 공항에서 계속 지루하게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덩치는 산만한 친구가 보기보다 외로움이 많은가 보다.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 덕분에 나는 내 비행기 시간이 다될 때까지 그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에는 둘이 셀카도 찍고 SNS 계정도 교환해서 맞팔로우까지 했다. 나중에 리투아니아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자기가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경우가 꽤 많았다. 한 번은 호주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네덜란드 사람인데 스위스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나도 스위스에 살았었다고 반가운 마음에 한참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 때문에 한국에도 자주 오고 한국인 친구들도 많다는 이 아저씨와도 친해져서 결국 연락처를 주고받고, 한국에 왔을 때 만나기도 했다. 반대로 아빠를 모시고 스위스에 여행 갔을 때 이 아저씨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루체른을 방문하게 되어 안부인사나 전할 겸 루체른에 간다고 연락을 했는데, 리기산으로 하이킹을 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합류하겠다고 해서 아빠와 나, 네덜란드인 아저씨라는 오묘한 조합으로 셋이 함께 산행을 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여행할 때는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그리스인 여자 친구와 친해져서 같이 할슈타트를 둘러보고 식사, 디저트를 함께 즐겼다. 그리고 오는 길에는 여기에 중국계 미국인 여자 친구 한 명을 더 알게 되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잘츠부르크에서 나와 같은 호스텔에 머물고 있어서 숙소까지 동행했다.
스페인에서 여행할 때는 바르셀로나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다른 방에 머물던 미국인 여자 친구를 알게 되었다. 일정이 오래 겹치지는 않아서 아침에 바닷가로 함께 산책을 나가 이야기한 것이 전부였는데, 먼저 떠난 그 친구가 편지를 남기고 갔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웠다고, 계속 소식을 전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편지와 함께 연락처를 적어놓았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 짧게 인연을 맺을 때마다 만남과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나라, 다른 환경, 다른 문화에 속한 누군가와 수십 년의 인생 중 이렇게 짧은 순간이라도 접점을 공유하고, 깊이 있는 관계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함께 했던 기억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흥미롭다.
이런 짧고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인연들이야말로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계속 여행을 떠나는가 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상상치 못했던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