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 잘 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말. 아직도 그녀를 떠올리면 저 말부터 풍선처럼 둥실대 웃게 된다. 그녀 덕에 아무 것도 모를 때부터 내 몸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22년 지기 그녀가 오랜만에 놀러온다. 스무살, 동아리에 들어가 만난 그녀는 한 해 선배였다. 부서가 달라 직속은 아니었지만 같은 과에, 같은 동네에서 자취에, 아마 코드가 맞아서였겠지. 우린 금방 친해졌다.
22년 중 오랜 시간을 같은 동네에, 그중에서도 한 시절은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살기도 했다. 동아리 생활이 끝나고도 졸업과 취업, 만남과 이별, 꼴같지 않은 일들과 설렘이 폭발하는 순간들, 우리를 치유하거나 등 떠밀어 주름지게 하는 시간의 모든 힘을 함께 지켜보았다.
책의 초고를 써서 가장 먼저 보여준 사람도 그녀, 아프리카 가기 전 세부에서 머물 때 여행을 온 것도, 아프리카-중동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였던 터키로 날아와 함께 여행을 한 것도, 그녀였다.
맛있는 것, 재미난 것, 좋은 것, 커피와 영화, 여행과 와인, 정치질과 쇼핑 모두 그녀와 함께였다. 한 시간 반씩 통화를 하느라 뜨거워진 귀를 어루만지던 것도 그녀와였고 남자친구가 없었던 적은 있어도 주말에 그녀를 만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있었다.
결혼 전까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직장이 이전해 새로운 도시로 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녀와 조금씩 멀어져갔다.
낯선 도시에서 외로움을 다루는 일이, 타인과 가정을 꾸리는 일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돌덩이처럼 버거워 눈물이 날 때도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다.
여전히 마음 깊숙이 두텁고 소중하지만, 물리적 거리와 분투의 지점이 달라진 현실 앞에서 예전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뉴스, 기분, 마음, 건강, 요즘으로부터 단절돼 있다. 가끔씩 안부를 물으며 그녀와의 우정을, 그 우정에 기대 빛났던 청춘을 추억하는 정도다.
그녀의 1박 2일 방문을 고대하며 오늘 그녀가 잘 방을 청소하고 함께 점심을 먹을 레스토랑을 골라 예약을 했다. 중간 중간 서울로 출장을 갈 때나 그녀가 몇 번 놀러왔을 때를 빼면 실로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벗들 중 그녀가 가장 많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눈시울이 뜨겁게 고마워진다.)
짧은 시간 그간의 공백을 다 메울 수도, 그때처럼 서로에게 100% 솔직할 수도 없겠지만,
괜찮다.
말에 말을 섞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포개고 잊혀져가던 취향을 다시 떠올리고 양념 삼아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나의 반쪽이었던,
그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