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친애하는 마르무사
택시기사는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는 사막을 함께 달려온 정일랑 벌써 잊었다는 듯 짐과 함께 우릴 부려놓고 금세 떠났다. 손님 없이 돌아가는 그가 느낄 무료함에 택시비를 얹어준 탓이리라.
택시가 발길을 돌린 그곳엔 돌담인지 돌무더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길이 꼬불꼬불하게 펼쳐져 있다. 그늘 한 점 없는 그 길을 따라 55리터 배낭을 삶의 무게처럼 지고 갔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위로 위로 올라가야 했다. 중천의 해가 뒤통수에 내려꽂혀 몇번이고 땀을 훔쳐내고 마른 입안을 혀로 닦았다. 무거운 배낭 안에 든 짐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버리며 계단을 올랐다. 배낭이 텅 비었구나 싶었던 순간, 중세 어느 영주의 성처럼 우뚝했던 수도원이 예상 외의 코믹한 '개구멍' 같은 입구로 반겨주었다.
마르무사. 그곳은 위장술에 능한 FBI 요원처럼 절벽에 몸을 숨기고 있다. 멀리서 보면 흙투성이 돌투성이 산자락일 뿐이다.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인 이곳에서 박해를 피하려면 이정도 위장술쯤이야 싶다.
네팔 카트만두의 타멜거리,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 그간 거쳐온 여행자의 골목들에서 그러했듯 요르단 암만의 레인보우 스트릿에서 흐느적흐느적 걸어다니다 아일랜드 배낭여행객을 만났다. 청년은 다른 곳 다 필요 없고 "시리아에선 오직 마르무사!"를 외쳤다. 여행서 하나 없이 몇 페이지 복사한 론니플래닛 쪼가리를 들고 요르단까지 어찌어찌 넘어온 나는 마르무사가 무슨 고대 유적쯤 되나 했다. 그래도 청년의 제안이 솔깃했던지 수첩 한쪽에 마르무사를 크게 적어두고 마침내 시리아로 향했다.
마르무사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새로운 벗을 환대했다.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방문계기가 달라도 우린 모두 저 고난의 계단을 오른 여행자들이었으니. 돌을 쌓아 올린 건물은 미로 같았고 이층침대나 매트리스가 들어찬 많은 방들 중엔 '소공녀의 다락방' 같은 곳도 있었다. 어느 방에서건 똑같은 건 뚫린 창으로 내다본 황량하고 황량한 바깥풍경뿐. 짐을 풀고 나자 특별한 임무를 받고 훈련을 받으러 중동의 사막까지 온 특수 요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요원의 일과는 단조로웠다. 식사 준비를 도와 소박하면서 풍성한 삼시세끼를 차려먹었고(일기장엔 온통 식사에 대한 칭찬이!) 거대한 원두막 모양의 테라스에서 종일 책을 읽었다.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 마음을 열고 들었다. 그리고 깊숙한 저편에 묻어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오래된 소망이었던지 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자마자 뭔가가 이뤄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신비로운 수도원에 오후 햇살이 스미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주 오래되거나 비교적 덜 오래된 책들, 넓고 반질반질한 책상, 책과 책 사이로 스미는 빛. 글자가 아니라 빛을 쫓다 보면 해가 저물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 매트리스를 옥상에 가져다 놓고 일몰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일몰을 보고 매트리스를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른다. 수도원 밖은 어차피 암흑이었으므로, 수도원의 불이 하나둘 꺼지면 침낭에 몸을 구겨넣고 떨어지는 별의 수를 헤아리다 떨어지는 그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썼다. 그리고 아침잠을 깨우는 건 어제저녁 작별을 고한 그 햇살.
일상이 단출해지면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옆사람에게 조금 더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지나간 그이들과의 시간을 다정히 떠올려보고, 어쩐지 마음도 가다듬게 된다는 걸 그곳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서도 내 마음에 수도원 하나 열어두고, 불빛 하나 켜둔다면, 잡다한 고민들과 걱정이 그 불빛속으로 수렴돼 "후!" 불면 꺼진다는 걸, 그곳에서 배웠다. 그리하여 모두의 마음속에 마르무사가 하나씩 생기길, 마르무사를 떠나오고 나서도 "Dear, Mar Musa"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면서 나는 바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