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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보 Aug 03. 2021

한 번도 매지 않은 낙타가죽 가방을 버렸다

사막, 그리고 용기에 관한 이야기

과일에 빚댄다면 제사상에 올라온 배, 그것이 그 가방의 색깔, 그 가방이 태어난 도시의 색이었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북부 인도의 몇몇 도시들은 고유의 색에서 비롯된 별칭을 가졌다. 그 도시는 도시를 둘러싼 사막으로 상징되었기에 '골드 시티(gold city)'였다. 가방을 재활용 쓰레기함에 넣으면서 떠올린 것도 가방 색과 같은 도시의 금빛 풍경이었다.




밤의 플랫폼에 도착한 것은 새벽 6시. 일기장에는 기차역에 내려 어떤 숙소로 찾아갔다고 적혀 있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플랫폼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연극 무대의 하이라이트처럼 철로를 비추던 금빛의 따뜻한 조명, 그랬다. 그것이 금빛의 시작이었다.


악명 높은 인도의 기차역 치고는 한산한 자이살메르 역


도시는 도시 가운데 위치한 금빛 성으로 유명했다. 상점들이 즐비한 성 안쪽의 번화가에서 그 가방을 만났다. 내가 그 녀석을 찾아냈다. 여행 중에도 쓰기 편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의상을 잘 매치시키면 '시크'하고 '프리'한 분위기를 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가방이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열흘 치 숙박비와 맞먹는 금액의 그 가방은 도시를 둘러싼 사막에서 기꺼이 소용되는 낙타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그래, 낙타. 그 도시도 그 가방도 낙타가 아니면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메르스로 유명해진, 하지만 그땐 그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긴 눈썹이 청순한 한 마리 슬픈 짐승이었다. 일박이일, 오직 사막에서 별을 보겠다는 오래된 소망으로 떠난 사막 트레킹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낙타를 만났다.


사파리를 하러 모여든 우리들처럼 낙타들도 어디선가 무리를 지어 나타나 한 마리씩 배정되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짝짓기라니. 낙타를 배정받은 우리들 중 누군가는 (마치 사람의 짝짓기가 그러하듯이) 다른 낙타에게 눈길을 주기도 하고 탄탄한 허벅지 근육 같은 것을, 더 길쭉한 속눈썹과 큰 눈을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내가 배정받은 낙타는 발정이 났는지 자꾸만 옆의 낙타를 기웃거리고 침을 흘리고 해대서 나는 낙타의 어미인양, 상대방 낙타를 탄 여행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는 한편 오래전 중국 카스에서 나를 태웠던 조랑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무거운 나를 태우게 하여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찌하면 낙타가 편할까 (편한 자세가 있으리 만무하지만 미련하게도) 궁리를 하느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낙타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화의 사막으로 나아갔다.


그래, 사막. 나의 첫 사막은 중국의 타클라마칸이었다. 꽤 오랜 시간 낡은 봉고에 실려 이동하는 와중에 지켜본 그곳은 중국이 개발 일로를 걷느라 흙을 파내 한쪽에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끝없는 사막에 마찬가지로 끝없이 긴 띠로 이어진 전봇대와 도로가 '이곳은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풍겼다. 돌풍 때문이었을까 뒤집혀 구겨진 트럭 한 대, 우리 봉고 말곤 주로 트럭들이 사막의 도로 위를 짐을 싣고 달리는 것을 보고 '발전', '산업화', 이런 말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반면 인도 북부 이 작은 쿠리 사막은 아라비안나이트 속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통해 수만 번 머릿속으로 그려본 '사막의 정석'과 같은 느낌, 정돈되지 않은, 어쩐지 사막에서 삐죽삐죽 솟아오른 작은 이름 모를 풀들처럼 정감 어린 느낌이었다.


개가 사막에 있었다는 것이 왜곡된 기억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사진


그래, 느낌. 여행은 끝나고 모호한 느낌들만 남는다. 기록된 사진은 '팩트'일 것 같은데 사진의 분위기는 어쩐지 모호하고 그 당시의 기분이나 심정도 어쩐지 모호하게 기억날 듯 말 듯하다. 그날 사파리의 백미, 사막에서의 하룻밤. 가이드가 차려준 저녁식사에는 서걱서걱 모래가 씹혔던 듯도 하고 밤의 사막은 몹시 추웠던 듯도 하고 어디서 왔는지 그 사막엔 코카콜라를 파는 아이도 있었고 어찌 된 영문인지 개도 한 마리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가 먹다 남은 음식에 입맛을 다셨는데. 이게 다 꿈인가 싶을 때 쏟아지는 별빛에 별똥별에 어지러워하며 잠에 빠져들었는데. 새벽녘 알람 없이도 잘도 깨어 일출에 입을 벌리고 어둠이 빛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바꾸는 걸 지켜보았는데. 나를 실어다준 낙타에게 내 너희 종족의 가죽을 벗겨 만든 가방을 사고 말았노라 고백했는데.


그래, 가방. 사실 이 이야기는 낙타가죽 가방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어쩐지 사막에서 길 잃은 페르시아의 상인처럼 글도 길을 잃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낙타가죽 가방은 버려졌다. 나는 한국에서 한 번도 그 가방을 매지 못했다. 분명 한국에서 매면 어쩐지 집시의 분위기를 낼 것 같았는데. 집시는커녕 어쩐지 후줄근한 것 같아 용기를 내지 못했던 거다.


그래, 용기. 여행 내내 너무 치솟아 곤란한 적도 많았던 그 용기가 이젠 없다. 그 후로도 이어진 여행 덕에 경험치는 높아졌으나 어쩐지 그 경험들만큼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그 경험들과 함께한 여행은 생각보다 강한 나를 만나게 하고 몰랐던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두 눈 가리고 싶은 만큼 나약한 습관, 추함,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더러운 마음들도 함께 끄집어냈다. 그래서 어쩌면 그 가방을 버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는지 모른다. 용기를 내지 못하게 했던, 실용은 없고 추억만 먼지와 함께 쌓여 있던 가방을 버리고 자유로워지겠다 생각했다. 낙타가죽 가방이 시작이었다.


이런 골목 어딘가에서 발견했던 낙타가죽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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