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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보 Aug 31. 2021

4,130m 근처도 못갔는데 고산병에 걸렸다

아묻따 안나푸르나


처음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두 번째는 직장에 다니며 박봉을 모은 돈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살아돌아와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었다. 첫 배낭여행지는 태국-캄보디아-네팔-인도였는데, 당당히 네팔이 1위를 차지했다.

그건 그 산이 있어서였다. 4개월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히말라야 트레킹. 그러니까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푸르나 산의 줄기 하나를, 7박 8일 동안 걸어보았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까지 4,130m를 오르고 내처 내려왔다. 스물넷의 치기가 얼마나 무모했느냐면, 가이드나 포터는커녕 지도 한 장도 없이, 루트를 적은 종이를 들고 덤벼들었다. 트레킹 허가증을 받으러 간 ACAP(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 사무실 담당자가 기름을 부었다. ABC까지 10일은 잡아야 한다고 운을 뗐다가,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듣고선 5~6일이면 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다행히 안나푸르나 여신의 보살핌으로 거기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고, 언니 오빠들은 대책없는 나를 등반일행으로 끼워주었다.


여신의 가호는 짧았다. 겨우 두 번째 날, 일행과 헤어졌다. 일기장은 이렇게 말한다.


메슥거림, 설사, 힘없고 가쁜 호흡이 시작됨.
점심을 먹고 쉬니까 좀 가라앉은 것 같아 출발.
40분쯤 걸었을까, 어지러워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 몸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낀다.
올라올 때 40분 걸렸던 길을 90분 걸려 되돌아 내려갔다.
마지막엔 네 발로 기었다.

고산병이었다. 2,0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이라 설마 했는데. 롯지 주인은 다 안다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지러운 탓에 낡은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얕은 잠 위로 의식이 돋아나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죽음이 시커먼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혹 잘못되어 이 먼 곳까지 헬리콥터를 부르게 되면 어쩌지, 유서를 써야겠는데 펜이 너무 멀리 있네, 일어나면 어지러운데'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또 까무룩.


셋째날, 행운의 여신이 방문을 노크했다. 나는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약이었다. 고도에 적응해 훨씬 개운해진 몸으로, 겸손해진 마음으로, 5박 6일은 무슨, 일행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최대한 천천히 산을 오르기로 했다. 산은 더이상 목표물이 아니었다. 끝까지 오르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는 어떤 게임이 아니었다. 그 멀리 신성한 히말라야에까지 왔기 때문에 '완주'를 하고 싶었던 나는 타이트해진 배낭의 어깨끈을 슬그머니 풀었다.


목적지까지 완전히 혼자였다. 혼자여서 다행이었다. 산에 사는 사람들, 다른 트레커들과 "나마스떼" 인사를 나눌 때 빼고 내게 말 거는 사람은 마음 속의 나뿐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의 젋음이 속삭였고, 다가올 늙음이 헛기침을 했다.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도 고도가 바뀔 때마다 몸체를, 빛깔을, 부피를 바꾸는 이끼, 풀, 나무, 숲, 산의 모든 것을 응시했다. 롯지에서 국수를 배불리 먹고, 배낭 양쪽에 찬 생수병을 비울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음 롯지가 나타났다. 너무 힘들 땐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가 모래알이 될 때까지 부르고 쉬고 부르고 쉬었다. 잘린 나무 둥치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쳤고 정글 같은 곳에선 두려움에 계속 뒤를 돌아봤다. 어떤 날은 아침 7시에 시작해 1시 반까지, 어떤 날은 4시까지 걸었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고산병을 겪고 나자 육체의 작은 고통은 쉽게 잊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짚으며 올라선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는 먼저 갔던 일행들이 쉬고 있었다. 추위에 떨며 도착한 나는 침낭을 외투처럼 뒤집어쓰고 감자수프를 맛있게 비웠다. 빨리빨리 나라에서 왔지만, 평지보다 훨씬 적어진 산소 덕에 아주 느리게 움직여야 했다. 턱을 빠지게 할 만큼 멋진 설산이 그곳에 있었지만 머리가 뎅뎅 울려대 우리는 자주 이마를 짚었다. 그 산을 다 내려와보니 나는 몇 킬로그램의 지방을 덜어내고 '예상외로' 의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의 갑갑함 때문이었겠다. 마스크를 벗고 나무가 내어주는 순도 백퍼센트의 산소를 마시고 온몸의 땀구멍을 양껏 열어 땀을 펑펑 흘려대고, 아무렇게나 흐른 땀을 닦고, 발을 조인 등산화 끈을 거칠게 풀어 바위 위에 두 다리를 턱 하니 걸치고 밭은 숨을 내쉬고 싶어졌다. 어디를 둘러봐도 순박한 사람들 아니면 무해한 자연만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어쩌면 스물넷의 튼튼한 폐와 허벅지가 그리운지도, 무모함이 무모함인 줄 몰라 재지 않고 덜컥 마음에 시동이 걸리는 때를 쫓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나푸르나의 그 길을 아이와 남편과 걷고 싶어졌다.


#Day6 #당장 떠나고 싶은 여행지 #야.나.써 #딱: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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