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활보 Sep 09. 2021

346-90번지에는 청춘이 산다

문득 그리워질 때면 지도 앱을 켜고 로드뷰를 본다. "와, 샷시 갈았네. 방범창도 달았구나." "헐, 곱창집 없어졌어." "어쩜 여긴 아직도 있네! 대박!" 자주 찾았던 가게가 없어진 것도 그대로인 것도, 예전 자취방 창문에 방범창이 달린 것도 발견한다. 등굣길, 술 마시고 토했던 길(죄송합니다),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밤 산책을 했던 길을 화면으로나마 거닐어본다. 그러다 보면 대학 입학으로 시작돼 결혼으로 끝난 '나 혼자 산다' 시절로 접속 가능.


서울살이 세 번째 집, 346-90번지. 거기서 층을 바꿔가며 10년을 살았다. 반지하에서 1층, 2층까지 순차적으로 올라왔으니 어떻게 보면 성공일까? 글쎄.


346-90번지에 오기 전, 그러니까 서울살이 첫 집은 하숙집이었다.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둥그런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반찬 접시들은 정겨웠지만 서로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히 이어지던 젓가락질, 쩝쩝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그 식탁의 풍경은 서울만큼이나 낯설었다. 식당 하는 엄마 밑에서 먹을 것만큼은 맛있게 원 없이 먹었던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그건 좋은 핑계가 돼주었다. 저녁엔 밖에서 술 마시느라, 아침엔 어제의 술에서 비롯된 숙취로, 하숙집 밥상 앞에 앉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하숙은 밥 먹으려고 하는 건데). 게다가 주인집 내외는 '부부는 일심동체'의 교과서였다. 밥이 나오지 않는 주말에 컵라면 물을 받으러 내려가면 주인 할머니가 꼭 한소리씩 했다. "정수기 물은 왜 이렇게 빨리 떨어지는 건지!" 놀러 온 친구에게 주인 할아버지는 "너 여기 안 살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반년도 안 돼 이삿짐을 쌌다.


두 번째 집으로는 부엌도 없이 욕실조차 나눠 쓰는, 고시원과 다를 바 없는 자취방을 골랐다. 이사 갈 집은 골목 몇 개만 지나면 되었기에 학생회에서 빌려주는 리어카에 한 줌 짐을 실었는데 다 도착해갈 무렵 '하이타이'가 바닥에 툭 떨어지며 가루세제가 골목에 흩어졌다. 그때 나는 울었던가?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두 번째 방이 너무 추워 산행 때 쓰던 침낭 속에 들어가 자야 했다는 것.


그리고 1년도 안 돼 이사를 결심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동아리방에서 보내고 일요일 하루 정도 방에서 쉬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부엌이 필요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라면을 끓여먹는 게 스무 살이라도 해도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매주 6일을 술 마시는 건 왜 넘어갔는지). 그때 346-90번지에 살고 있던 친구가 반지하방이 비었다며 소개해주었다.


346-90번지 반지하방에는 눅눅함이 있었고 그에 걸맞게 밑으로 냉각수를 흘려내던, 그래서 수건을 바꿔가며 대줘야 했던 오래된 냉장고가 있었다. 싱크대 찬장 문은 옥빛 필름지가 덜렁거렸고 귀뚜라미인지 곱등이인지가 종종 울어댔다. 너무 비가 쏟아져 길거리에서 누군가 감전사를 당했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들리던 어느 여름날,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다 반지하방이 걱정된 나는 "저 지금 집에 가야 돼요! 물에 잠겼을지 몰라요! 반지하거든요!" 다급하게 외쳤고, "야 정말 잠겼으면 어쩌냐 우리가 물 퍼줄게" 하며 선배, 동기들이 따라나서 콸콸콸 쏟아지던 물줄기를 뛰어넘으며 우르르 몰려갔다. 다행히 방은 멀쩡했고, 우린 모자란 술을 더 마시고 고스톱을 쳤다. 젊은 우리들의 땀냄새, 발냄새가 좁은 방을 가득 채워 눅눅하고 꿉꿉한 여름 장마 냄새를 밀어내 주었다.


346-90번지 1층은 반지하보다 한 층 높았기에 엄밀히는 1.5층이었다. 그렇다고 반지하보다 나을 건 없었다. 반지하방과 마찬가지로 창문이 뒷 건물과 닿아 있어 늘 닫아둬야 했다. 샷시가 아닌 갈색 나무 창틀의 틈을 비집고 온갖 냄새와 소리가 파고들었다. 물론 나의 그것들도 밖으로 퍼져 나갔겠지만. 부모님은 내가 독립을 한 지 8년째 되는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방을 방문해 소박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살림을 살펴봐주었다. 1층에서는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다음날 하이킥을 할지언정 일기를 썼다. 아파서 동아리방에 못 간 날 동기 녀석이 죽을 사들고 와 던져주며 구시렁대던 일, 그걸 바로 먹지 않고 오래도록 뚜껑을 매만져 손바닥에 온기가 가득하던 날도 있었다. 후배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배웅하려 현관문을 연 순간,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계단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주인집 할머니의 뜨억한 표정도 선명하다. 할머니가 늘 하고 다니던 복대와 구부정한 자세까지도. 1층 집의 이웃은 화목한 4인 가구였다. 비 오는 날 부추전을 건네던 몸이 잰 젊은 아주머니, 훗날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다며 밝게 웃던 그녀가, 아파트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던 내가 함께 떠오른다.


346-90번지 2층은 방이 2개였다. 방이 2개라는 건 전세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 전세금 일부를 부모님께 부탁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내던 나의 당당함에 조금은 스크래치가 났지만, 삼십만 원에서 몇만 원 더 왔다 갔다 하던 월세를 아낄 수 있었다. 사람 둘이 누우면 꽉 찰 작은 방엔 한동안 동생이 살았다. 늘 호기로웠던 동생은 싱크대를 새 걸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주인집과 반반을 나눠 설치한 싱크대는 옥빛이 아닌 은은한 우드톤이었다.지하에서 2층으로 올라온 것처럼 상황이 나아진 기분이 아주 잠깐, 들었다. 2층 방은 길 쪽으로 창이 나 있어 종종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청춘들이 새벽에 골목에서 시끄럽게 굴어 꼭 잠이 깬 날이 있는가 하면, 싸운 뒤 남자친구가 골목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2층 옆집에는 베프가 살았다. 기숙사처럼 그녀의 방에 들락날락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다. 베프가 이사 가고 난 뒤 코골이가 굉장한 청년이 이사 와서 코골이뿐 아니라 굉장한 소음을 내었기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문 앞에 조심스레 포스트잍을 붙였다. 나의 담대함을 마주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 방에 있는 동안 첫 회사를 다녔다. 꿈꿨던 미래와 막상 마주한 현실이 불화해 작은 텔레비전으로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는 일이 잦았다. 다행히 회사 동기, 선후배들은 끝내줬다. 직장 위치와 상관없이 여전히 대학 주변에서 자취를 하던 우리의 대학이 가까웠기에 서로의 동네로, 단골 술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마셨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에 회사에서 다시 만났다.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서로의 출퇴근카드를 찍어주면서. 저녁까지 해장이 안 되는 날들이, 퇴근길 혼자 동네 밥집에 들러 해장국을 시켜먹는 일이 잦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동생에게 집을 맡기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 텅 빈 잔고를 확인하면서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책을 썼다. 방의 네 귀퉁이 한쪽에 놓아둔 작은 이케아 조립 책상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그 겨울, 발이 너무 시려 수면양말을 계속 끌어올리고 담요를 매만지다 보면 훌쩍 아침이 되었다. 혼자서 잘 지내지만 잘 지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날들이었다.


346-90번지는 나쁜 기억으로 마무리됐다. 갑자기 나가라는 주인의 말에도 토를 달지 않았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보증금에서 얼마를 제하고 싶었던 걸까 집을 왜 이렇게 더럽게 썼냐며 팬티 바람으로 현관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함께 소리치면서 쥐었던 주먹,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을 파고든 손톱자국이 선명했던 5월의 어느 날을 뒤로하고 346-90번지를 떠났다.


그럼에도 346-90번지를 추억한다. 한 층에 두 세대만 살아서 좋았다. 주인집이 꼭대기에 살아서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안심도 되었다. 21살부터 31살까지, 반지하부터 2층까지 올라오며 조금씩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젊음이 젊음인 줄 몰라 젊음을 낭비했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게 아니라 낭비할 젊음이 있어 좋았던 때. 그 방들을 거쳐간 나의 벗들과 애인들로 행복했지만 날로 더해지는 어른의 무게가 버거워 때때로 불행하다 느꼈던 때. 346-90번지에서 살면서 겪은 모든 감정과 사건과 관계가 내 안을 관통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여물어갔다. 여하간 346-90번지가 좋지 않았다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즈음 다녔던 왕복 3시간 거리의 회사 근처라던가. 하지만 나는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유령처럼 종종 346-90번지 부근을 배회하기도 했다. 청춘이 갔다.


아, 분명 청춘에 대해 쓰려했는데 어쩐지 음주 연대기를 읊은 것만 같다.


#공간/장소 #딱:삔

이전 01화 스무살, 속초병원 응급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