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이라고 쓰인 가게에 들어가 새 렌즈를 샀다
"티융~~~"
굳이 글로 옮기자면 분명 그런 소리였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찰칵 소리 대신 외계어 같기도 한 김빠진 소리가 났다.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중고 필름 카메라였다. 인기 모델 니콘 FM3 대신 고르고 고른,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의 많은 부분을 바쳐서 산 중고 캐논이었다. "캐논은 인물이 살지", "중고는 직거래지", 하는 선배의 말에 뭣도 모르면서 어떤 남자를 만나 값을 치렀다. 카메라는 여행준비 체크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이었다.
줌이 되는 렌즈의, 그러니까 줌이라는 기능 때문에 있는 부속품인 '스프링'이 늘어났거나 어떤 압력을 받아 튕겨져나온 모양이었다. 이유를 알면 뭐 하나. 렌즈에 눈을 디밀면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 위로 혼란 그 자체인 스프링 모양이 겹쳐 보였다. 혼돈의 시대와 세상과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인마냥. (@.@ -> 이런 모양의 스프링 말이다.)
"내 카메라가 이상해." 이 말을 입밖으로 내었던 스물넷 1월의 풍경이 지금도 올컬러 총천연색 화보처럼 생생하다. 그날 나는 어떤 축제가 끝나고 인파를 따라 방콕의 거리를 마냥 걸었다. 거리는 버스도 차도 없이 사람들의 물결로 넘실댔다. 한국에서 집회 때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도로 위를 맘대로 걸을 수 있네, 그런 생각을 했던 듯도 하다. 걸음이 멈추었을 때 눈앞에는 잘 가꿔진 공원이 있었다. 사람들과 마구 엉켜 있다 풀려나 맞은 그 고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분명 "찰칵"을 기대하며 셔터를 눌렀는데,
그 여행은 '첫'출근 대신 선택한 '첫' 배낭여행의 '첫' 행선지였다. 그래서 그 렌즈가 그렇게 나자빠진 것이 앞으로 펼쳐질 청춘에 대한 은유 같았다. 여행에 필요한 돈을 환전해 복대에 넣어다니던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여행 이후를 기약하지 못하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에게 곧 청구될 영수증인 것만 같았다.
처음엔 렌즈 문제인지도 몰랐다. 잘못된 중고제품을 사기당해 산 것일까, 그냥 카메라를 버리고 새로 확 마 사버릴까, 또 사기를 당하진 않을까, 그러다 남은 일정을 고려해 새로 사되 또 남은 일정(정확히는 예산을)을 고려해 렌즈만 바꾸기로 했다.
방콕 카오산로드 근처 어느 작은 사진관, 카메라 몇 대가 진열돼 있고 캐논 어쩌고, 코닥 어쩌고 되어 있는 가게에 들러 망가진 카메라를 보여주고 호환이 되는 렌즈를 샀다. 십 몇 만원, 하루 방값이 3천원이었으니 비싸다면 비싼, 객기를 부려 하루치 술값으로도 소용할 수 있으니 싸다면 싼 금액의 렌즈였다.
첫 카메라의 첫 렌즈는 그렇게 2통의 필름을 세상에 내놓고 사라졌다. 한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필름 수십 개와 4개월+@의 일정을 함께할 짐들이 55리터 배낭을 채우고 있었기에 망가진 그 렌즈는 방콕 작은 게스트하우스의 4명이 묵는 도미토리의 작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여행이 끝나고도 한참을. 그 렌즈를 낡은 카메라가방에서 발견한 것은 여행을 마감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로부터도 한참인 이사 전날이었다.
주인은 자기 딸이 들어와 살아야 하니 방을 비워줬으면 좋겠고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으나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 나가줬으면 좋겠고 방 구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나 내 딸이 들어올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 최대한 빨리 방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하 1층부터 1층, 2층까지 층을 바꿔가며 10년째 살고 있는데. 어디인지를 콕 찝어내진 못하면서 집을 더럽게 썼으니 일정 금액을 보증금에서 빼겠다고, 그간 점잖게 눈인사를 나눴던 주인 아저씨는 런닝바람으로 현관 앞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세입자 또 없다며 명절에 음식을 나눠주던 주인 아줌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쫓기듯 이사를 준비하다 오랫동안 책꽂이 맨 위에 부려두기만 한 카메라 가방에 손이 갔다. 그대로 쓸어담아 이삿짐 트럭에 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쩐 일로.
잘 다려진 옷의 옆구리에 터져나온 실밥처럼 스프링이 튀어나온 렌즈가 거기 들어 있었다. 방콕 어느 가게의 비닐봉지를 담요처럼 두른 채. 버렸을 줄로만 알았던, 그냥 거기 두고 온 줄 알았던 청춘의 한 조각이. 렌즈 스프링의 은유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자 큰 웃음이 목젖을 치고 터져 나왔다.
방콕에서는 내내 걸었다. 걷기 좋은 계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비집고 나오던 땀을 훔치며 골목골목을 고양이처럼 쏘다니다 탐마쌋 대학으로 기어 들어갔다. 유유히 흐르던, 그러나 더럽던 강물을 바라보며 다디단 태국식 커피를 사다 마시며 노트를 채워갔다. 사람들이 "방콕에서 2주나 뭐했어요?" 물으면 "방콕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저 그런 관광을 하러 이삼 일을 소요했을 뿐 나머지는 그냥 거기에 있었다.
대학 4학년, 모두 입사원서를 쓸 때 도서관에서 여행가이드북을 빌려다 읽고 한번도 듣지 못한 여행지의 역사에 대해 탐독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개코도 모르면서. 여행 루트를 짜고 관련 자료를 프린트해 스프링제본까지 했다. 누가 보면 면접준비를 제대로 하는 것처럼 여겼겠지.
그렇게 도착한 첫 배낭여행지의, 실은 네팔과 인도로 가기 위해 선택한 값싼 항공권의 경유지였기에 들러본, 이왕 들를 거 좀 쉬다 갈까 해서 선택한 방콕. 그곳의 여행자거리. 쏘다니다 아무데서나 사먹던 거리의 누들과 젊은 일본청년이 운영하던 돈까스 가게와 마치 유학생인양 구내식당에도 구내카페에도 나타나는 나를 벗 삼아 주었던 '유'와 친구들. 그들과 먹었던 톰얌꿍의 거칠은 맛과 촌스러운 이십대의 나. 그런 촌스러운 나를 마치 연예인보듯 대하며 무려 싸인을 요청하던 변두리 유적지의 꼬마 관광객들.
빠져버린 렌즈의 스프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청춘도 추억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렌즈는 새 것으로 교체되고 풍경도 바뀐다. "철커덕!" 필름이 다 되었다. 36방 200 iso 코닥 필름으로 교체한다. 종래엔 필름카메라도 현상한 필름과 사진도 모두 구석에 처박히고 말 테지만 그런 운명따윈 모르는 채. 아니, 필름 카메라가 왠말. 이 글은 사진이라면 핸드폰으로 찍는 시대에 떠올려보는, 싼 곳을 물색해 종로의 한 필름샵을 찾아가 대량의 필름을 사서 배낭에 구겨 넣고 길을 떠났던 때의 이야기다. 빙글빙글 잘도 돌아가는 세상과 인생 속에서 같이 돌아가다 아주 잠깐씩 중심을 잡으려 했던, 그 시절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