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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보 May 12. 2023

외주 주지 않는 삶

제주에 오기 전 도시에서 나는 워킹맘이었다. 메트로놈처럼 회사와 집을 뚝딱거리며 오갔다. 어린이집이 회사 옆이어서 아이는 3살 때부터 출퇴근을 함께했다. 9시 출근을 맞추려고 폭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폭탄을 안은 것마냥 매일을 뛰어다녔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차려먹고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그 사이사이 나머지 한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촘촘한 루틴으로 하루하루 쳇바퀴는 돌아갔다.


아무리 둘이서 잘 해내려고 해도 하는 수 없는 때는 있기 마련이었다. 연고 없는 신도시에 우리밖에 없었으니 아이가 아프면 남편과 번갈아가며 휴가를 냈다. 3개월 연속 구내염, 독감, 수족구에 걸린 어느 여름엔 더는 휴가를 낼 수 없어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기도 했다. 처음 코로나가 번성했을 때엔 아이를 3주간 시골 부모님댁에 보냈다. 이때 아이를 낳고 5년 만에, 잠든 그 자세로 7시간을 깨지 않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얌전히 가슴에 모은 두 손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던지.


아이의 기관지가 약해 둘이 살 때보다는 청소 빨래에 신경써야 했다. 성능 좋은 무선청소기, 로봇걸레청소기, 건조기를 샀다. 그렇더라도 회사일이 많아 야근을 하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어쨌든 매일의 가정살림을 해내기 어려워 집이 거칠거칠해질 때엔 청소해주는 분을 모셨다. 한달에 두 번, 청소가 다 된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다림질 잘 된 셔츠처럼 고단한 몸과 마음이 쫙쫙 펴졌다.

식당을 오래 해온 엄마의 영향일까, 잘하지 못해도 가짓수가 변변찮아도 음식은 직접 했다. 그때만 해도 번아웃이 오기 전이라 뭐든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잘, 해내려 했다. 이유식도 한 번 사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며 반찬이며 조리된 제품을 사게 되었다. 애써 반찬을 해도 아이가 잘 먹지 않는 날들이 쌓여갔고, 회사일로 지쳐버린 날들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동생이 아이와 놀아주는 날이면 남편과 치맥을 하기도, 야트막한 산에 오르기도, 한 번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연중 몇 번이었지만 그 덕에 아이와 함께 다닐 때마다 달고 있는 긴장감을 내려놓고 공공장소에 몸과 마음을 부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가 너무 크게 소리지르지 않을지, 뛰어다니지 않을지, 음식을 너무 흘리진 않는지, 아이에게 티 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주의에 경고를 하고야마는 상황에서 벗어나니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였다. 하지만 아이가 없어야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서비스를 누리는 우리 모두에게 딱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에는 아는 이 하나 없다. 하지만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우리가 있다. 회사에 가지 않지만 무척 바쁘다. 외주 주는 삶에서 멀어져서다. 그리고 가사노동은 계속 되니까. 아이 돌봄도, 의식주가 매끄럽도록 하는 모든 활동들도 직접 한다.


이곳에서 아이가 아파 문제가 되는 건 돌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병원이 멀어서다. 충분히 우리가 돌본다.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제철 재료로 집에서 많은 식사를 한다. 갑자기 뭔가가 먹고 싶어도 별 수 없다. 배달앱은 늘 ‘텅’이라고 나오고, 집 근처에서 배달 가능한 곳은 치킨뿐이다. 육지에선 곰팡이 피고 상해서 버린 식재료가 많았는데 여기선 냉장고와 부식 두는 선반을 수시로 확인하며 곳간을 채워둔다. 메뉴를 정하고 장보는 일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제주도에선 주로 도내에서 생산되는 것을 사다 요리해 먹는다. 돼지고기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회는 왜 이리 싱싱한지. 국내 생산량의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제주산 콩나물, 당근은 왜 이렇게 아삭한지. 집에서 가까운 목장에서 생산되는 요거트와 우유도 배달시켜 먹는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보잘것 없던, 아이가 “엄마 맛없어” 하던 나의 요리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

남편은 오랜만에 청소도구를 직접 고르고 청소 루틴을 짰다. 대청소를 하는 날, 힘들 것 같아 좀 도와주려 하면 “괜찮아 내 일이야. 좀 쉬고 있어.” 한다. 예전에는 욕조 하수구멍에 쌓인 머리카락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였는데.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나고 체력에서 배려 돋는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둥글어지고 있다.


어린이집과 달리 학교는 일찍 끝나지만 괜찮다. 근처에 학원이 거의 없어서일까? 놀이터에서 늦도록 노는 애들이 많다. 제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설득해 데려오는 날들의 연속이다.


제주살이 100일차, 텃밭을 일구고 오름을 걷고 삼시세끼를 해먹고 아이와 뛰놀며 잠도 잘 자게 되었다. “이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는데…” 하고 자주 말끝을 흐리게 되었다. 어차피 건물 안에만 있으니 날씨가 상관없던 때와는 달리 매일 눈뜨면 날씨를 확인하고 일희일비한다. 신발이 자주 더러워져 운동화 손빨래를 자주 한다. 어지간하면 바르지 않던 썬크림이 쑥쑥 줄어드는 중이다. 좋은 점들 옆에 무수히 불편한 점들이 있지만 그게 싫지 않은 삶이 흥미롭다.


외주 주지 않는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 휴직이 끝나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 쳇바퀴에 몸을 맡기게 될까. 돌아가서도 돌봄과 가사를 외주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손 닿는 많은 것들을 매만지고 일상을 윤기 나게 하려면?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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