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문화'의 섬이라는 걸, 살아보기 전엔 몰랐다. 전입신고를 하자마자 찾아본 도서관. 회원가입을 하면서 보니 온갖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걸 왜 도서관에서 하지?' 싶었던 분야의 교육부터 행사까지, 물론 책과 관련한 북토크, 독후활동 프로그램도 잔뜩이었다. 살면서 생각해 보니 제주도는 생각보다 무척 넓고, '문화생활'이란 걸 제공하는 곳은 주로 시내에 있으니 그나마 '지역'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듯하다. 실제로 제주도 공동도서관 15개, 제주도교육청 공동도서관 6개, 마을에 밀착된 작은 도서관들, 그 밖의 수많은 단체와 센터들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경쟁하듯 쏟아낸다.
그리하여 입도하자마자 꾸준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기웃거렸다. 심드렁한 시간부자에게 이런 무료 프로그램들은 고맙고 새로운 자극이었다. 첨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소설 쓰기, 독립출판제작 같은 걸 찜해두고 신청했지만, 웬걸 문화의 섬답게 문화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건지 광탈을 하고 말았다. 글 쓰는 거 말고 책이나 글자와 관련된 거 말고, 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신나는 것, 안 해본 것,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라탄공예. 내가? 다른 것도 아닌 손을 쓰겠다고?
이 단어가 멸칭일까 아닐까 고민하다가 이 단어만큼 나의 상태를 적확히 나타내주는 말도 없는 것 같아 써본다. 나는 똥손이다.
똥손의 기원은 국민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게일로 바빴던 엄마는 아마도 돌봄의 개념으로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던 것 같은데, 그 심정도 모르고 '바이엘(상)'을 치다 그만두고 말았다. 도에서 파까지 손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고 건반을 보면서 치려니 목이 아픈 것 같다면서. 중학생 시절 가장 존경했던 선생님은 가정 과목 담당이셨는데 나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수업에서 자주 고통받았다. 실습으로 바느질을 하면 실이 엉켜 끊어내기 일쑤였다. 엇, 첫 남자친구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십자수 핸드폰 고리의 조악함이 갑자기 떠오른다. 분명 행운의 네잎크로버를 생각하고 임했지만 이파리가 찢어진 것처럼 보였었는데. 그것이 헤어짐의 복선이었나, 아무튼.
미술이나 공예, 만들기와는 먼 삶이 불혹까지 이어졌다. 생계유지를 위한 요리, 업무를 위한 타자치기나 펜을 잡는 일 말고는 손 쓸 일이 없었다. 게다가 업무로 얻은 손목터널증후군 덕분에 손은 그저 보호의 대상이었다. 머리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딸을 낳았을 때 위기가 올 뻔 했지만 다행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온갖 스타일로 머리를 묶어주신 덕에 아이는 내게 머리를 맡기지 않았다. 잘 숨겨온 똥손의 실체가 탄로 난 건 귤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여섯 살 때는 내가 그려준 엘사 그림에 하트 눈으로 "와~ 엄마 진짜 잘 그린다" 칭찬했던 꼬마는 소근육 쓰기 만렙이 되더니 이렇게 소리친다.
"아, 엄만 잘 못하지?"
"엄마 이것도 못해? 이렇게 해야 하잖아!"
동녘도서관에서 열린 매주 목요일의 라탄공예. 야자 줄기 녀석을 물에 담가 부드럽게 해서 이리저리 꼬고 교차하고 감아서 티코스터, 물병주머니, 바구니, 휴지케이스, 모자 등을 만든다. 선생님이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묵묵히 각자의 라탄 줄기를 이어가는 시간, 목소리가 선율을 가른다. 똥손이다.
"선생님! 이거 그냥 풀고 다시 할까요?" (똥손이지만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편)
"하하, 어떻게 이렇게 하셨어요? 그것도 재주네요."
오, 이런 재주가 있었군. 분명 시키는 대로 했는데 라탄 줄기가 인생처럼 꼬이고 있다. 손재주 있는 수강생들은 뒷정리를 하는 시간에도 헤매이며 마무리를 하다 화들짝 외친다.
"선생님! 이거 끊어진 거 아니에요?"
스웨터처럼 이어진 라탄줄기가 중간에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 갈라져 덜렁거리는 라탄 줄기가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실수처럼 느껴지고.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이건 다시 짤 수 있으니 다행인 건가 위로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결과물은 나온다. 비록 티코스터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게 휘어 컵을 올려두기 어렵지만. 분명 귤이의 머리둘레를 재고 만들었는데 모자는 작아서 쓰지 못하고 걸어두었지만 말이다.
10주간의 수업은 실로 오랜만에 몰입의 경험을 선사했다. 똥손의 전전긍긍으로 왔다갔다하긴 했지만 음악을 들으며 한 가지에 몰두하는 2시간. 철기 시대 사람들이 뗀석기 시대 무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시간이 분 단위로 쪼개져 일상이 돌아가고 예전처럼 영화나 책을 통으로 볼 수 없게 된 지금, 벽에 비스듬히 기대 '이승환' 신보 테이프 A, B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기분이다. 손이 노랗게 되는 줄도 모르고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토지>를 쌓아놓고 읽던 그때 같다.
손으로 하는 많은 작업들의 묘미는 작업이 단순할수록 명상의 맛을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모든 행동에 의미를 담아 손가락은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 사이에 생각이란 녀석이 끼어들 틈이 없고, 자동화된 손의 움직임에 상념들은 이리로 저리로 뒤통수를 맞고 떠나버린다. 라탄 줄기와 나만 존재하는 시간. '오롯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괜찮은 때.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손가락 스트레칭을 해본다. 손재주는 없지만 손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주름이 생기든 손마디가 굵든, 망치든 잘 못하든,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교적 건강한 손이.
"엄마, 이거 나 줘! 내가 가질게!" 손재주는 없고 손만 있는 자의 작품에도 볕 들 날 있다. "아이~ 이거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 엄마 거야." 하면서도 귤이에게 기꺼이 작품(이라고 해두자)을 뺏긴다. 이쯤 되면 똥손과 금손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동(銅)손'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사람이 손이 있음 다행이지 손재주까지 필요 있나? 뿌듯함이 라탄 줄기를 타고 밀려든다.
얼마 뒤. 라탄공예가 끝나고 신청한 원데이 가죽공예 클래스. 똥손이 또 외친다.
"선생님, 바느질 이거 실 풀고 새로 해야겠죠?"
"아니에요. 잘 안 보여서 괜찮아요. 그것도 멋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