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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보 Oct 19. 2023

비키니를 입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몇 해 전 뭐에 홀린 듯 에스닉한 무늬의 비치 로브를 샀다. 눈으로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미로찾기를 하는 기분이 드는, 몇 가지 색과 선이 아름답게 뒤엉킨 하늘거리는 로브였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언젠가 여름 해변에서 입을 심산이었다. 긴 로브 안으로 ‘쭉쭉 뻗은’ 다리를 만들어야지 다짐하면서. 제주 일년살기 짐을 싸면서 로브를 빼놓지 않고 챙겼다. 짐을 줄이기 위해 양말 개수도 제한했으면서 말이다. 마치 그 로브를 입기 위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제주를 선택한 것만 같았다.


육지에서 섬으로, 배를 타고 옮겨진 로브는 내 집의 옷장 안에서 연세로 얻은 집의 옷장 안으로 들어가 가을이 깊어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했다. 그건 로브 안에 입을 비키니를 사지 못해서다.



지난해 한 작가님의 책에 글이 인용되면서 사례금을 받았다. 10년도 전에 쓴 책의 인세는 더이상 들어오지 않고 글을 써서 번 돈은 오랜만이라 꼭 나를 위해 써야 할 것 같았다. 고심하다 새로운 수영복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수영에 미쳐 있던 때였다. 그러다 제주로 오게 되면서 실내 수영복 대신 비치용 수영복을 사기로 결정해 두고 혼자 씰룩댔다. 신혼여행 때 샀던 무려 10년이나 된 비키니가 더이상 몸에 맞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제주도에 오면, 아이를 낳으면서 회복하지 못한 몸을 되돌리고 원하는 몸매를 찾고 건강한 몸이 될 줄 알았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없겠지, 바다로 곶자왈로 걸으며 살이 쭉쭉 빠지겠지, 비키니든 핫팬츠든 원하는 몸에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척척 소화해낼 줄 알았지. 하지만 급체와 복통이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미력함을 알려온 마흔 넘어서의 소화력처럼, 그런 소화력은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 제주에 가서 회사도 K장녀도 통장도 나 몰라라 제멋대로 살리라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젊은 여성들의 핫바디와 핫패션에 나의 한줌 용기는 그만 쪼그라들었다. 뱃살도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네버.


결국 고른 것은 검은색 래시가드. 해변에 가면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 10에 8은 입고 있는 평범한 디자인의 래시가드다. 때마침 심해진 햇빛 알레르기도 래시가드라는 선택을 응원해주었다. 비키니 끈을 풀고 엎드려 태닝을 하는 것도 내심 기대했던 제주 여름의 풍경이었지만, 나는 백내장이 있는 오른쪽 눈을 걱정하며 강렬한 태양을 피해 파라솔 아래를 떠나지 않았다. 래시가드가 가리지 못한 목, 손등, 정수리, 무릎부터 발등까지 햇볕에 골고루 그을린 덕에 다리가 좀 가늘어보이긴 했지만 '쭉쭉 뻗은' 다리는, 네버.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여고 시절 선생님들은 대학 가면 살이 빠진다면서 잘 먹고 열심히 공부나 하라고 했다. 남자친구도 생길거라면서. 언니들은,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절로 엄마가 되니 걱정 말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OO에 가기만 하면", "~내 나이 OO살이 되면"... 얼마나 많은 욕망을, 일시적 유예인 줄 착각하고 무한정 유예해왔는지. 그 착각이 그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라는 것도 모른 채로.


해 지는 장면을 물 안에서 보며 바다수영을 하고 있노라면 내 안의 두꺼운 벽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리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올여름 정말로 비키니를 사지 못한 걸까? 사지 않은 걸까? 결국 비키니를 입고 싶다는 욕망을 유예한, 아니 폐기한 나는 불행했을까?


지난해 수강한 비폭력대화 수업이 내게 남긴 작은 흔적이 있다면 그동안 참아왔던 혹은 애써 무시해왔던, 그러느라 뒤엉켜버린 욕망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풀어보는 것이었다. 예전의 내가 "괜찮아", "아무거나", "난 뭐든 상관없어"였다면, 오늘의 난 "점심 때 고사리육개장을 먹어야겠어", "어제 푹 못 자서 오늘은 동백동산이나 갈래", "너무 수영하고 싶다, 금요일엔 꼭 바다 가자, 꼭이야!" 하고 말한다.  


그렇게 풀어헤쳐보니 비키니는 나의 철지난 욕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몸을 욕망한 것은 그 몸이 담고 있던 그 시절의 자유로움, 거칠 것 없음, 해방감이었다. 귤이에게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나이듦의 징후를 매일 마주하면서, 요즘의 나는 보기 좋은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원하고 있다. 내 안의 욕구와 느낌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조금씩 내 것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나의 욕망, 나의 관심, 나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딸린 식구라곤 없는 사람처럼, 그냥 잠시 나를 사는 겁니다. 역할을 떠나, 존재를 느끼는 거지요. 그런 순간이 바로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 말을 들어주는 순간입니다." - 오소희, <엄마의 20년>


'나'를 나눌 벗들은 랜선에 있고 지금 여기의 '나'를 들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그럴 때조차 괜찮았다. 예전엔 내가 가장 먼저 나의 목소리를 외면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 말을 충분히 들어주니까.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내가 하는 말에 대한 응답이자 욕망에의 응수다. 그러니까 비키니를 입지 못하고, 로브를 재활용 의류수거함에 넣으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정말로 원했던 건 해변에 누운 내가 아니라 바다를 가르는 나였다는 걸 깨달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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