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관계에 대해 경계심이 많고 마음의 벽이 너무 높으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안 만날 이유를 찾게 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몇번 만나다 보면 내가 거부감이 드는 상대의 그 특징이 몇 가지로 선별이 될 때가 있다. 사실 그렇게 특징이 몇 가지로 추려진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경계'가 드러나는 지점은 인간사에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남혐과 여혐 같은 것들, 종교적인 신념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 구체적인 카테고리도 중요하겠지만 크게는 '내 경계'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살펴보면 좋다.모양만 바꾼 '경계'의 지점이 서로에게 다양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꼭 같지는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특정 경계지점을 부드럽게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사실 내가 그런 특정 경계지점을 갖고 있다보면 그런 상대방과 짝이 되는 경우도 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이성에 대한 마음 깊은 혐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도 그런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큰데,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상대로서 역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나의 경계를 한번 깨 보고 지금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런 상대를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럴때 맨 처음 드는 느낌은 거부감일 것이다. '저 사람은 남혐이 있네, 여혐이 있네, 걸러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사람에게서 떠오르는 특정 키워드를 자기자신에게도 들이대보면 좋다.'나에게는 그러한 지점이 없는가?'하고 말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특정테마는 삶에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를 바꿔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기가 쉽다.왜냐하면 영혼이 특정 테마를 마주하고, 그것을 뛰어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인도라고도 할 수 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럼에도 얘랑은 잘 해보고 싶다'하는 마음이 있어도,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거부감때문에 그 다음 단계를 가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 그런때는 내가 그 테마에서 해방되면 그 존재를 안을수도 있고, 또 더 이상 그런 상대와 마주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자유를 얻는 것이다.
예를들어 남혐, 여혐을 예로 들면, 상대방에게서 그런 부분을 발견했다면, 그 부분을 나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인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자신에게는 그런 부분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특정 상대를 계속 만난다면 그 특정 테마가 마음 깊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우선적으로 잘 살펴본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어느정도 인정이 되었다면, '이 사람과 평생을 같이가야지'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적어도 이 관계에서, 그 특정 테마만큼은 자유를 찾겠다'
라고 1차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떻든 나는 나의 자유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인정이 되었다면, 내가 갖고있는 혐오의 지점, 그로 인해 사람을 자꾸 밀어내는 지점을 내 스스로 깨버리면 된다.내가 그 경계의 지점을 얼마만큼 갖고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상대가 보여줄 수 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안는다는 것은,내가 그 사람보다 내 에너지를 보완하고 키워서 내가 먼저 해당 부분에서 자유를 얻어버리면 된다. 서로가 5만큼의 경계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경계를 없애는 에너지를 그 이상으로 키워버리면 나는 그 사람을 안을 수도 있게 되고, 또 더이상 그 사람과 엮이지 않을 자유도 갖게 된다.
이런 과정이 참 힘들기도 하다.지속적으로 불편함을 마주하게 되고, 거부감이 들고, 두걸음 뒤로 도망가고 싶기 때문이다.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나 자신의 경계지점을 계속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 수가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경계는 때로 굉장히 견고해서 그 하나를 뛰어넘기까지 몇 생을 비슷한 테마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만큼 간절한 경우들이 있다.
그런 관계가 물론 쉽지는 않지만 관계 안에서 안에서 자기가 갖고있는 경계지점에서 깨버리고, 심지어 그 부분을 보완할 정도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 안에서 갖는 성장의 매력이다. 그것은 다소 거칠 수도, 힘들 수도 있지만 굉장히 빠르게 자신의 특정 경계를 깰 수도 있다. 거기다가, '내가 성장하고, 그럼으로서 같은 지점에 어려움을 겪는 어떤 한 존재를 품어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관계 안에서는 아주 디테일한 경험들을 밀접하게 서로 나누게 되는데, 그런 관계 속에서 서로는 각자의 모습을 더욱더 잘 알아가게 되고, 여러 불편한 상황들을 타계해나가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거기다가 '나는 나의 테마에서 해방되었고, 심지어 누군가를 안아볼수도 있다'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내가 특정 테마에서 해방되는 것은 스스로에게 굉장한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거기에다가 나와 같은 어려움을 오랫동안 겪었던 한 존재를 '품을 수도 있다'라는 것은 자신의 에너지의 확장이라는 면에서도, 깊어진 나의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도 된다.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또 내가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 존재와 함께 바라볼 어떤 테마의 지점을 뛰어넘었다면, 그 인연은 자연스럽게 끝이 날 수 있다.저런 과정에서 사랑이 깊어졌을수도 있고,정이 들었을 수도 있고, '내가 저 존재를 더 이끌어줘야지,쟤는 나 아니면 안되니까'하는 집착이 더 생겼을수도 있지만 서로 영혼의 바람에 따라 관계가 더 이어질수도, 끝날 수도 있다. 각자 영혼이 갖는 속도의 차이도 있고, 목표지점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는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보겠다 하는 영혼도 있을 것이고,'나는 이만하면 되었다'하고, 남은 생을 함께할 다른 존재를 찾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나의 자유를 찾아나가든, 아니면 여기서 머무르면서 안정감을 더 구축하면서 살아나가든 자기가 더 원하고, 더 행복한 지점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때로 성장이라는 테마에 너무 목매다 보면 안정감이라는 테마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테마를 잃기도 한다.또 안정적인 머무름을 좋아하는 경우는 도전이라는 테마를 잊기도 한다. 어떤 쪽이든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영혼 깊은 행복감이 인간사에까지 전에질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우리는 향하려고 한다. 때로 그런 선택들은 이별을 동반하기에 인간적으로는 힘들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