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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a Dec 10. 2024

헤매고있는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 트윈소울)들을 위해1

twinflame, twinsoul

앞서 쓴 글들은 보다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게끔 딱 쌍둥이불꽃만 특정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쌍둥이불꽃으로 창조된 존재들은 우주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구 생활 중에는 그것이 딱 와닿지 않는 여정을 계획한 존재들도 많고, 또 쌍둥이불꽃이라고 하는 관계성은 쌍둥이불꽃으로 태어난 존재 뿐 아니라 지구생활의 관계성에 있어서도 보편적으로 시사할수 있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또 한편은 우주의 원리를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는(마치 우주가 빛과 어둠으로 창조되었듯이) 존재들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분들이 참고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었다.


그러나 이제는 쌍둥이불꽃이라는 자신의 존재성을 자각하고 있고, 또 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점점 표면화되는 느낌이기에 오늘은 쌍둥이불꽃으로서의 여정을 이번생에 가고 계시는 분들을 위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쌍둥이불꽃은 태초에 한 몸으로 태어나 어느 시점에 둘로 분화가 된 존재들이다. 마치 우주가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들도 한 몸일때 한쪽의 극단을 서로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둘로 이루어진 한 덩어리가 계속해서 그것들을 유지하려면 한쪽의 어떤 지점을 한쪽이 동시에 감내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작용-반작용이 한 존재 안에서 이루어 지게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우주의 원리를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쌍둥이불꽃의 여정은 매우 다양하다.


쌍둥이불꽃의 여정은 우리가 부부의 관계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각 존재마다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계속해서 함께 할 수도 있고, 갈라설 수도 있고, 오랜 시간 후 다시 합쳐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 자신이 쌍둥이불꽃과 분리됨을 통해서 성장을 이루었기에, 주로 이별하는 쌍둥이불꽃에 대해 다루었지만, 그들의 여정은 매우 다양하다. 지구에 각각 따로 육화해서 전혀 모르는 존재로 살아갈 수도 있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느 시점에 다시 합치는 경우들도 있다. 쌍둥이불꽃을 찾기 위해 지구로 존재들도 있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게 펼쳐질 있지만, 헤어진 쌍둥이불꽃이라면 그들의 목적성은 대부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헤어진 쌍둥이불꽃들의 성장 포인트


존재가 이별한 이유들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몇가지 표적인 카테고리로 그들의 성장 방향을 유추할 있다.


1.서로에 대한 의존성

태초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날 때부터 나와 완벽하게 맞는 짝과 함께했다고 상상해보자. 어느 시점까지 둘은 정말로 지극한 행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만 함께하며 충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질 않았을 수 있다. 이 우주는 끊임없이 진화하니까 말이다. 쌍둥이불꽃들도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딱 맞는 짝' '내 완벽한 짝'이 있는 경우 필연적으로 따라오기가 쉬운 것이 한쪽에 대한 의존성이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다'하는 부분 말이다.

 하지만 영혼들의 성장이란 곧 영혼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여기서 자유로움이란, 무질서하고 무분별하게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족쇄에서 스스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상태가 되어버렸다면? 영혼이 원하는 다음 스텝은


나는 당신 없이도 살 수 있어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의존성에서 벗어나겠다는 이야기도 되고,  곧 각자의 존재가 스스로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키워간다는 말도 된다. 다른 말로는 '너 아니면 안된다'하는 서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이야기도 된다.

 쌍둥이불꽃이 아닌 존재에게도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의존이나 집착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면, 그것에 대한자유를 찾아나가면 자신의 에너지에 대한 보완을 할 수 있다.



2.자신이 가진 극단성에 대한 보완

 쌍둥이불꽃이 이별하게 되는 또 다른 상황은, 둘 사이의 극단성이 너무 강해져서 도저히 그 안에서 융합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때 분리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 둘 사이에는 작용-반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밖에 없는데, 한쪽이 어떤 극단성을 심화시키다 보면 다른 한쪽은 에너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것을 점점 감내해야 된다. 예를들면 한쪽이 사방팔방 튀는 성향이 있고 그것이 심화된다면? 나머지 한쪽은 붙잡고, 유지하고 안정화시키려는 경향이 심화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느 임계점 이상을 넘어가면 그것들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심한 경우 서로가 서로를 붙들고 있느라 에너지적인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가장 완벽했던 나의 짝이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꼴이 되는 것이다. 쌍둥이불꽃들이 이런식으로 이별을 하게 될 경우 사실 서로에게 큰 충격으로 남는다. 일단은 이별 자체가 그들에게는 존재자체가 거의 죽다 살아나는 정도의 영혼적인 상실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설령 그들이 결론적으로는 성장을 원해서 한 이별일지라도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입힌 에너지적 손상, 그리고 이별당시의 충격은 영혼의 기억에 각인되어서 인간의 삶에도 꽤 오랫동안 반복이 되기도 하는데, 영혼들은 윤회를 통해서 이를 어느정도 극복해나간다.

 '서로의 극단성으로 인한 이별' 이것을 좀더 확장시켜서 생각해보면, 만약 자신의 어떤 극단성때문에 둘이 이별을 겪었다면 성향은 자신의 카르마로서 전생과 현재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을 있다. 카르마라고 하는 결코 원죄나 잘못 같은 개념은 아니며, 단지 반복적으로 발현하는 자신의 에너지의 극단이고, 그 극단에 대해서 반동적으로 자신이 받는 결과다. 극단이 강할수록 자신의 극단성의 반작용적인 역풍을 자신이 맞게 된다.


 시점에서 쌍둥이불꽃으로서 자각해나가고, 나의 여정을 어떻게 나갈지 아리송하고 헷갈린다 하는 영혼들은 쌍둥이불꽃과의 관계성에서 무언가를 개선해나가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삶을 통해서 반복되어왔던 자신의 극단성에 대해서 잡아가는 것이 빠르다. 이것은 사실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부끄러운 자기 모습도 받아들여야 하며, 내가 믿어왔던 많은 것들을 깨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쌍둥이불꽃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려는 많은 영혼들은, 보다 깊은 수준에서 자신의 극단성을 뿌리깊게 자각하고 보다 완전한 자유로 향하고 싶은 용기있는 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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