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그를 돕기로 마음먹은 것은 물론 그를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내가 더 이상 나의 에너지를 나누는것을 미룰 수가 없었기도 했었다. 상황이 그리 몰아간 것도 있다. 당시 나는 삶의 지표를 한번 더 잃은 상태였고, '더 큰 사랑으로 향하겠다'라는 내 영혼적인 방향성을 정해둔 이상 그 안의 큰 흐름을 따라가야 삶의 그 다음스텝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내 상태도 노답이긴 했던 것이, 수녀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경계심은 커질대로 커져있었고, 연애세포는 모조리 메말라 있었다. 혼자 사는 상황이 익숙해지다보니 사실 누가 옆에 없는 것이 아쉽지도 않았고 귀찮았다.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를 만나도 썩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연애에 시간을 쏟느니 차라리 도를 닦겠다, 나를 갈고 닦겠다, 일을 열심히 하겠다, 내가 가르치고 있던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것들도 물론 방법은 방법이었겠지만 역시나 나와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부분의 에너지,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을 마주하기를 피하고 피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사실 그만큼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 두려움이 크기도 했고, 독고다이로 오래 살다 보니 관계라는 것을 어떻게 시작하고, 형성하고, 유지해가는지 그것이 너무도 어려웠었다. 한편으로 내가 오랜시간 나 자신을 갈고 닦기는 했지만, 또 예전의 비슷한 연애 패턴을 내가 반복적으로 창조할까봐 두렵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관계를 만드는데 영 소질이 없다면 내가 뭔가를 알려주기라도 하자, 하는 마음이었다. 저 사람이 필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으니 그것이라도 나누자는 마음이었다.
솔직히 마음이 자꾸 식었었다. 그는 그냥 내 타입이 아니었고 나는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상대방도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이 있었기 때문에 나 또한 전혀 그의 타입이 아니었을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연애감정이라기보다는 어떤 한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갔던 것 같다. 나같은 어려움을 너무 오래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컸던 것 같다. 부드럽게 이 상황을 넘길 수 있기를. 헤메지 않기를.
전생의 인연도 한 몫 했었다. 만남을 이어나가다보니 차례로 우리가 함께 했던 몇가지의 전생이 떠올랐는데, 그때 해소되지 못한 것들을 이번생에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그는 나보다 훨씬 영소울이었기 때문에 그가 나처럼 고인물이 되기 전에 스무스하게 이 단계를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사실 그 마저도 애초에 집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약간 헬리콥터맘 같은 마음 말이다. 실제 모자지간이었던 생도 있고 말이다.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과한 것은 카르마로 작용하기 쉬운 지점이다)
굳이나 그와 가까운 관계가 되기를 선택했던 것은 그는 '표면적으로 보기에'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어느정도 적당히 거리를 둔 관계에서는 자기 끝의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영혼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끝끝내 숨기고 싶어하고, 심지어 '나는 전혀 그런사람이 아닌데?'하고 부정하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연인 관계에선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확 드러나는 것은 그런 것 때문이다. 속아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실 어떤 존재들도 자신의 깊은 모습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쨌거나 그 또한 나처럼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과 이별을 겪었었고, 그 이후 반성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보완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해 왔고, 실제로 보완도 되었는데,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좀 힘든 지점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비슷한 문제를 오래 겪어왔기에 걸림이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해서 함께 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의 영혼도 그런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더 전개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의 영혼적 여정과 인간적 여정을 관찰하고 마음을 쓰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어쨌거나 사람끼리 만나다 보니 치사하고 유치한 사건들도 있었다. 내가 꿈꿨던 연애는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지금껏 보완했던 나의 극단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걸 확인해서 절망한 때도 많다. '저 존재가 길게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 나의 집착임을 확인하게 되어버린 적도 많다.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과 이별 후 피눈물을 흘리며 하지 말아야지 했던 부분들을 또 반복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는 이별을 했다. 생각해보면 이번 관계는 많은 순간 스스로의 두려움에 도전하는 순간들이었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두려움, 관계맺기가 어려운 상대에게 먼저 손 내미는 두려움, 사과를 해야하는 순간의 두려움, 이별해야 하는 두려움 등등 말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넘어선 영혼들은 자유를 얻는다. 나는 분명히 이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던 의미있는 한걸음의 시작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나에게 딱 맞는 짝'이 나타나 나의 모든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의 상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상대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만난 인연들 속에서 나는 항상 허전함을 느꼈고 행복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마저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었다. 내 쌍둥이불꽃과 나의 이별은 명백한 서로의 한계점때문에 발생했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는 오히려 더더욱 내 에너지를 잡아나가야겠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감나무 밑에서 '내 운명의 사랑'을 그냥마냥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도 않는다. 막연한 결핍감도 많이 사라졌다. 나는 사랑받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이제 먼저 손 내밀수 있다. 하나씩 차곡차곡 사랑을 쌓아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에너지로 상대를 안아줄 수도 있고, 이끌어줄 수도 있다. 어떨때는 상대방을 확 제압할 수도 있고, 필요할때는 확 죽을 수도 있다. '나에게 다 맞춰줘'했을때는 불만족으로 가득했던 관계가, '누군가를 품어보는 것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누군가를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나의 영혼과, 또 자아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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