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있다 보면 별의 별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딱 옛날분들의 삶을 사셨다. 특히 여자들이 무언가를 많이 감내한 집안이다. 지금생각하면 '아니 이런것까지 받아들였다고?'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도 간혹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면 기구한 사연이 꽤 있다. 놀라운 것은 할머니는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성품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컸는데 할머니는 나한테도 단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나를 지켜줄 때 이외에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들어본 적도 없다.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생전에 나한테 제일 많이 하신 말씀이 "절대 화는 내지 말아라"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저 말을 들을때마다 답답하고 화가 더 났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할말 다 하고 살아야 똑부러진 신여성이 아니던가? 그래야 가정 내에서의 나의 권리와 안전도 지킬 수 있는게 아니던가? 몇년 전만 해도 나는 남자/여자 갈라치기에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이 다분히 좀 심각하다고 느껴졌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이 있다. 내가 이 집안에 태어난 것도 영혼의 큰 그림 안의 선택이라는 것은 말이다.
나같이 쫀쫀히 따지는 것 좋아하는 애한테는, 딱 보고 배울게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거다. 적당히 뭉개주고, 적당히 눈감아주고, 적당히 넘어가는 인간미 가득한(이라고 하기엔 많은 일이 있었음) 집안. 할머니가 화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것도 적어도 나한테는 꼭 필요한 말이다. 나는 대립각을 많이 세우는 영혼적 삶을 많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번 생에는 기필코 그것들을 보완하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들어보면 우리집안 남자들도 많은 걸 감내했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서, 혹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각자가 '죽어'주었다.
흔히 말하는 좀더 양보하고, 좀더 참고,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이 차원을 넘어선 각자의 죽음들이 순간순간 있었다. 물론 이것은 목숨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때로는 무리였고,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현재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관계의, 연애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는 더욱 의미깊다. 사실 내 경우는 나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서 굉장히 사회흐름과는 다른 흐름으로 살아왔다. 그 안에서 버려야 할 것도, 포기했던 것도 실제로 많았고 나만의 길을 고수하면서 겪는 고독감과 외로움도 말로 다 할수 없었다. 일반적인 성공의 공식을 거스르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많은 것들을 실제로 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가 해 왔던 것은 결국 '나'를 바로세우고 갈고 닦는 것이었으며, 어느 정점을 지난 순간부터는 이런 흐름의 삶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돈과 명예를 좇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초탈했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각자 결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바로세우고 갈고닦는데 골몰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경력을 쌓는다. 사실 다들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줄 한줄 나를 설명하는 것들을 쌓아나간다. 나를 설명하는 조건들이 아주 많아진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죽일 수 있는가?'측면에서 볼 때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자기만의 벽이 너무도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쌓아왔던 것들은 나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대신에 나를 지키는 철벽같은 견고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를 진전시키고 지키는 것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없앨 수 있는가'하는 부분인 것 같다. 환경이 좋을때는 항상 좋다. 그러나 자신과 상대의 진면목은 '결정적인'순간에 드러난다. 대부분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목이 칼이 들어오면 자기자신을 지키느라 바쁘다. 평소에 아무리 착하고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어도 그 결정적인 순간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잘 되는 사람은 예수나 부처 정도이지 않을까 싶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를 없애는 것'은 사실 영혼들의 목표지점과도 궤를 같이한다. 영혼들은 자신의 경계를 깨고 영역을 더 넓히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적인 성장이고, 에너지의 성장이며 그것이 나에게 더 많은것들을 표현하고 창조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내가 굴레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더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 부분이 어렵다. 결정적인 순간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이라서, 정말로 순간적으로 나 자신이 앞서고 나를 보호하고 싶어진다. 평소엔 그토록 사랑했던 상대보다 내가 더 소중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 그 이상으로 가 보겠다고, 나의 경계를 깨 보겠다고 그렇게 오랜 시간 오랫동안 쌍둥이불꽃(트윈플레임)과 요란한 이별과 후폭풍을 겪었음에도 나는 아직 그부분이 어렵다. 애초에 내가 나를 그렇게나 앞세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쌍둥이불꽃(쌍둥이불꽃)과 이별을 안했어도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별을 했더라도, 그 이별의 슬픔에 그렇게나 오래 잠식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있었던것도 다 '나'를 앞세운 것들이었다.
숱한 영혼적인 , 인간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작했던 새로운 연애의 마지막도 결국에는 '나'를 버리지는 못한 순간들의 반복이었다고 생각한다.나는 지금껏 '나'를 버려가며 얻은 나의 깨달음으로서 상대방을 닦달하면서 또다시 '나'를 앞세우면서 계속해서 경계를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마지막 연애는 시절인연으로서의 연이 다 한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의 숙제는 나에게 남겨주었다.
글에 울림을 느끼셨다면 구독해주세요♡
댓글과 응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혹시 인간관계나 연애 문제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으시다면
soulfriendsolea@gmail.com으로 고민 상담 주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