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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Sep 06. 2024

수상한 그녀(3)


모텔에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이 와 있었다.

조직원 몇 명이 경찰에게 붙잡혀 있었고, 이한과 이나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의 물결이 도혁을 덮치고 있었다. 그는 경찰 몰래 조직원 중 한 명을 건물 뒤로 빼냈다. 놈의 팔을 완강히 꺾으며 이나와 이한을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말하지 않으면 팔을 부러뜨리겠다고 무섭게 협박했다. 조직원은 장소를 불지 않을 수 없었다. 도혁의 표정과 힘과 음성으로 보아 틀림없이 팔을 부러뜨리고도 남을 기세였으므로.


그 시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한이 눈을 떴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거대한 창고처럼 보이는 그곳은 예전에는 공장이었던 걸로 보인다. 바로 옆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나가 쓰러져 있다. 손과 발은 묶인 채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입술에서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각목으로 머리를 맞아 흘러내린 피가 입술까지 내려와 있었다.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다행히도 이나는 멀쩡해 보였다. 좀 전에 모텔에서의 상황이 떠오른다. 둘이서 서른 명을 상대하기란 버거웠던 걸까. 정신없이 싸우는 도중에 조직원 중 한 명이 이나가 잠시 방심한 틈을 노려 마취주사를 찔렀고, 쓰러지는 이나를 보고 놀란 이한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내리쳤다.


희미하게 조직원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분은 저들을 왜 살려두라고 하는 거야?"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그분의 머릿속을 어찌 알겄냐."

"뭘 어떻게 하려고 조직원을 전부 소집한 거여."


그분?

얼핏 봐도 수십 명에 가까운, 아니, 100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을 보고 이한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손에는 연장들이 들려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부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철문이 부서지며 자동차가 한 대 들어섰다. 도혁이 차에서 내렸다. 화가 많이 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이한과 이나를 발견한 그는 포효했다. 짐승처럼. 하필 이한과 이나가 쓰러져 있던 위치의 주변은 붉은 피로 흥건해 있었기에 죽은 걸로 오해를 한 모양이다. 혼자서 100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에게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눈에서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굉음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 이나는, 피로 물든 이한의 얼굴을 보며 죽은 건가 싶었다. 이내 이한이 끈적한 피를 닦아낼 수 없어 힘겹게 눈을 뜬다.


"강이한. 너 괜찮아?"

"몰라 씨. 우린 망했어. 놈들 숫자가 겁나 많아."

"삼촌 왔잖아."

"바보야. 삼촌이 아무리 괴물이어도 혼자서 100명을 어떻게 상대하냐?"

"왜 혼자야? 우리가 있잖아."

"우린 손과 발이 묶여 있.."


어느새 뒤로 묶여 있던 손을 다 풀어헤친 이나는, 이한의 손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신발 속에 작은 접이식 칼을 끼워 넣었다.


"이 누나는 파워 J 아니겠니? 쓸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준비는 철저히 해야지?"


이한은 풀린 손으로 엄지 척을 내밀곤 묶인 발을 마저 풀고 일어섰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도혁에 이어서 갑자기 일어서는 두 사람을 보고 뒤에 있던 조직원들은 얼빠진 사람들처럼 제자리에 서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상황을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고 차가 또 한 대 들어섰다. 수현과 준호가 내렸다. "아직 늦지 않았지?" 라면서. 마치 그 상황은 도미노처럼 착착 이루어졌다.


싸우면서도 이나와 이한이 괜찮은 걸 확인한 도혁의 얼굴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괴물의 형상에서 삼촌의 형상으로 잠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싸움에 집중했다. 도혁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던 놈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놈들이 이나와 이한, 수현과 준호를 향해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다. 겨우 다섯이서 100명에 가까운 조직원을 상대하고 있었다.


CCTV로 지켜보던 '그분'은 생각했다.

저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왜 이따위 세상에서 히어로를 자처하는가.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한순간이라도 방심하거나 실수를 한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위험해진다는 걸 아니까. 온 힘을 다해, 전력을 다해 싸우는 일만이 서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조직원들의 반 정도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즈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몰래 빠져나간 조직원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그 모습은 마치 야생동물의 전쟁 같았다.

곧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총소리와 함께 싸움이 중단됐다. 늘 이기는 가족의 몰골이 이번엔 아주 처참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다. 얻어터지기도 하고 칼에 베이기도 했으나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부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찬란한 승리 아닌가.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다."

모두 무사한지 가족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이나의 귓속에 할아버지의 나직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늘 했던 말씀이다. 그녀는 지금 그 말의 의미를 생생히 실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싸움의 기술이나 괴력, 스피드, 우월한 감각, 단단한 근육이 아니라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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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기는 가족> 연재 마지막화였습니다.

이제 세부적인 스토리와 대사, 묘사 등을 추가하며 조금 더 완성하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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