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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Jun 21. 2024

이기는 가족_슬픔의 불꽃(2)


사흘 후 그들은 이태리 음식점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서일까.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좋았다.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근데 저보다 네 살이 많으시네요? 당연히 저보다 어리거나 비슷할 줄 알았어요. 너무 어려 보여서."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경찰복을 입고 있지 않으면 대학생으로 보더라고요. 하하. 너무 겸손하지 못했나요?"


재희가 어떤 말을 내뱉든 이나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던 그때.


"삼촌?"


도혁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옆에는 우희가 있었다.

"이나야."

도혁은 멋쩍어했다. 서점에 갔다가 책을 한 보따리 들고 있던 우희를 만났고, 그녀의 짐을 들어주다가 감사의 의미로 밥을 사주겠다는 말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생일인데 밥도 못 먹었다고 말하는 우희의 얼굴이 지나치게 귀여워서 더 이상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더 귀여운 건 '소리'였다.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게 아닌가. 순간 도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은 직원이 안내해 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이나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희 언니가 도혁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 주길 기대하며.


"꺄악!!!"


네 사람의 즐거운 시간을 질투라도 하듯이 거리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레스토랑은 2층이었다. 비명 소리를 들은 도혁과 이나는 창문을 열고 거침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칼을 든 열댓 명의 청소년 무리가 거리에 있던 사람들을 찌르거나 찌르려고 위협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찌르기 일보 직전의 상황. 재희는 계단으로 내려가며 경찰과 구급차를 요청했다. 도혁과 이나는 빠른 속도로 그들의 손에서 칼을 회수해 갔다. 칼을 빼앗아 그들을 바닥에 눕히며 제압하는 일은 간단했다. 문제는, 이미 칼에 찔린 사람들이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이 넷이나 됐다.


"좀 도와주세요!"

재희가 소리쳤다. 앞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피를 지혈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칼을 든 무리가 완전히 제압당한 걸 보고, 도망갔던 시민들 중 일부가 되돌아왔다. 쓰러진 사람들의 곁으로 가서 재희의 지시를 따라 지혈하는 걸 도왔다.


칼을 든 무리는 겨우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다.

이 어린 학생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이나는 화가 났다. 무엇이 이 아이들 손에 칼을 쥐어준 걸까.


칼에 찔린 네 사람이 구급차에 옮겨져 병원으로 이동했다. 빠른 대처 덕분에 다행히 목숨에 지장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재희는 상황이 정리되면 연락하겠다며 먼저 들어가 보라고 했다.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두 히어로가 아니었다면 아마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거라며.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이나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일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마치 지구가 렉에 걸린 것 같았다. 아까 칼에 찔릴 뻔한 순간에 처한 사람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만약 그들이 오늘 그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날 새벽, 이나는 재희를 만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학생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무조건 죽어라 공부만 시키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아이.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버려져 혼자 자취하며 지내는 아이. 아빠와 단둘이 살다가 음주운전자의 사고로 아빠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아이. 학폭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방치된 아이.


부모의 부재 혹은 방치 혹은 학대.

제대로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 하는 아이들이었다.

세상에 악이 바칠 대로 바친. 그들은 어떤 게임에서 만났다.


 아이들에게 아이템도 사 주고 사탕발림 같은 소리를 해가며 끝없이 가스라이팅을 했던 자가 있었다.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아이들은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 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런 상태에서 그가 새로운 게임을 제안했던 것이다. 거리에서 칼로 사람들을 찌르는 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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