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 빵.
창고 앞에 멈춰 선 자동차가 클락션을 시끄럽게 울려댔다. 그 소리에 많은 수가 창고에서 쏟아져 나왔다. 세상 험악한 얼굴을 하고서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매섭게 비추고 있다. 그 순간. 차에서 누군가 내린다. 이나였다. 이어서 도혁, 수현, 준호가 차례로 내린다. 한 명씩 영화처럼 등장했다. 다만 멋있게 등장한 것치고 의상이 에러였다. 잠옷이라니.
"어디서 굴러온 것들이냐?"
"몽유병 환자들인가?"
사채업자들이 구시렁대며 비웃었다.
그때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이한이 가족의 곁으로 이동하며 명랑하게 말했다.
"아, 왜 이제 와. 근데 잠옷은 좀 아니지 않아?"
"미안미안. 자다 일어나서 곧바로 오느라고."
준호가 손을 저어 보이며 말했다.
담배까지 건네며 그의 말을 정말로 믿었던 남자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겨우 이 애송이에게 지금 놀아난 건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이나의 가족 다섯 명과 사채업자 조직 30여 명의 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놈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섯 중 둘이 여성인 데다, 넷은 잠옷 차림에 하나는 거지꼴이었으니. 도혁만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기대하지 않는 건 이나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후딱 끝내고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지난번에 이나네를 겪어본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제일 뒤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외형만으로 압도적인 도혁까지 합류했으니. 섬뜩할 수밖에.
"저것들 보통내기가 아니야. 여자들도 마찬가지고. 조심해. 난 분명히 경고했다."
동료들에게 속삭이듯 경고했지만 아무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
우당탕탕. 치고받고 요란한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 썩 요란하진 않았다. 깔끔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도혁과 이한이 맨 앞에서 선두로 싸웠다. 이한을 우습게 봤던 놈들이 지금은 그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빠른 스피드로 한 놈씩 치고 빠지고 치고 빠졌다. 도혁의 강철 주먹을 막아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방에 픽픽 쓰러졌다.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생긴 풍선 인형을 치는 걸로 보일 듯. 바로 뒤에선 수현이 거꾸로 들어 바닥에 내리꽂고 있었고, 그 옆에선 준호가 초크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이 뭐야. 나까지 안 와도 됐겠어"
이나가 시시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그냥 돌아갈 순 없지.
"삼촌!!" 하고 부르며 뒤로 몇 걸음 가더니, 앞으로 돌진하면서 몸을 살짝 숙여준 도혁의 등을 밟고 붕 날아올랐다. 빛의 속도로 몸을 옆으로 꺾으며 제일 뒤에 있던 세 명을 발차기로 한꺼번에 휩쓸었다. 모두 기절했다. 평소에도 남들보다 타격감이 몇 배인 그녀의 발차기가 점프와 가속도의 힘을 받아 더 큰 타격감을 발휘했을 텐데. 기절하지 않고 버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옆에 떨어져서 지켜보던 한 놈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자진해서 기절했다.
총 10분. 10분이면 됐다.
이나네가 30여 명의 사채업자 조직을 상대하는 데 걸린 시간이.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
이번에도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때맞춰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경찰차가 여러 대 도착하고 있다. 이곳에 왔을 때 이나가 미리 신고를 했었다.
형사들이 창고 안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선별해 몰래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감금하고 폭행하고 고문하며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잡혀 있던 사람의 대부분이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수준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여러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의 가면을 쓴 악마들일까?
이한이 창문으로 봤던 여성도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구급대원을 향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 살았나요? 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 오늘이 며칠이에요?"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가 어려워진 이한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사채업자 조직의 우두머리다. 창고에 도착하기 전에 경찰차를 발견한 그는,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저녁, 이나네 거실.
이나네 가족은 오늘도 어김없이 운동으로 몸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TV에서 어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고 있었다. 끔찍한 고문을 당한 그들은, 그곳에서 겨우 살아 나왔지만 적어도 장애를 한두 개씩은 얻었다고 했다.
화면이 인터뷰 영상으로 이어졌다.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진 남성이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기분이에요.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하더라고요. 살아서 나온 기쁨은 잠시예요. 이제 평생을 다리를 절며 살아가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앞날이 캄캄해요. 어머니,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형제도 친척도 없이 저 혼자예요.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았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어요. 어제 저희를 구해주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이 말씀은 꼭 전하고 싶네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나가 운동을 멈추고 내려왔다. 안타까움과 걱정이 밀려들어 더 이상 운동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가까운 친지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던데. 그 끔찍한 트라우마와 장애를 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너무 막막하지 않은가. 적어도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가족회의를 열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