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 편이야?

by 북짱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했다.

“너 누구 편이야?!”



편이 갈라지면 싸움이 났고,

같은 편이면 괜히 더 든든했다.

유치했지만 그땐 그게 전부였다.




며칠 전, 딸아이가 한 살 위 오빠와 말다툼을 하다

울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내가 바로 딸 편을 들어주지 않자


“엄마는 맨날 오빠 편이야.

아빠는 그래도 내 편 들어주는데…”


하면서 더 서럽게 울었다.




어떤 부모에게는 특별히 더 예쁜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두 아이 중 누가 더 좋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연년생이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라 더 달라서

각각 더 소중했고 둘 다 사랑스러웠다.




혹시라도 편애받는다는 느낌을 줄까 봐

늘 공평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울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엄마는 누구 편도 아니야.

너희 둘 다 똑같이 사랑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의 눈물 앞에서는 늘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도 세 자매 중 둘째로 자라며

엄마가 큰언니를 더 좋아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진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더 마음이 쓰이는 아이는 있다.




내성적이고, 표현이 서툴고,

울음부터 삼키는 첫째를 보면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 집의 편을 굳이 나누자면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안심되는 건

남편이 늘 내 편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 앞에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내 편에 선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하나의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부부는 서로의 편이라는 것.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결혼을 결심할 때도

나는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편을 가르지 말자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편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쉽게 싸운다.

그러나 아무 편에도 서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회피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의 편인가.

강한 사람의 편인지,

목소리가 큰 사람의 편인지,

아니면 조용히 상처받는 사람의 편인지.




나는

우리 가족의 편이다.

때로는 약자의 편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나를 자기편이라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편이다.




편을 가르는 건 싸움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의 곁에 서는 일은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곁에 선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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