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결혼'을 볼 수 있을까?
이십대 중반,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처음 청첩장이란 것을 받아 보았다. 썩 좋아하지도 친하지도 않은 팀 동료의 것이었지만 다들 간다는데 신입이 빠질 수도 없으니 황금 같은 주말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결혼식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막연히 상상하던 전형적인 웨딩 그 자체였다. 조금 어두운데 반짝거리는 게 많고,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바삐 인사하고, 정해진 식순에 따라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정장을 입은 신랑이 입장하고…. '회사 동료분들 나와주세요' 할 때 앞으로 가서 나는 다시 볼 일 없는 사진까지 찍으면 하객의 역할은 마무리다.
이후 몇 년간 몇 개의 청첩장을 더 받았고 슬슬 지인이나 친구들이 결혼식에 초대하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저 틀 안에서 벗어나는 식은 아직은 특별히 본 적이 없다. 이전에는 괜히 나한테까지 청첩장을 건네서 주말에 시간을 뺏는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고, 지금은 진짜로 축복하고 싶은 사람이 초대한다면 짜증 나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지만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그 자체로 성평등의 관점에서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어쩐지 가라앉은 마음으로 참석하게 된다.
(사진: Unsplash의Colette Allen)
결혼식의 불평등성은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한 바 있지만, 바꾸려는 움직임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으므로 굳이 몇 가지에 대해 불평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결혼식의 꽃이라고 하는 웨딩드레스의 존재가 싫다. 그냥 보기에도 정말 비싼데 너무 불편한 옷이라서, 신부는 흰 옷감 속에 갇혀서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움직일 때마다 웨딩홀 직원 몇 명이 따라붙어서 계속 옷단을 정리해 주어야 하는 의존적인 모양새가 된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비추는 특별한 날이니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어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실은 '신부가 결혼식의 주인공이다'라는 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신부는 결혼식의 주역이 맞다. 하지만 신랑은? 백지장도 맞들어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일 텐데…. 그 상대와 동일하게 주인공인 편이 좋지 않은 걸까? 웨딩드레스는 너무 아름답고, 입은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며 주인공처럼 만들어주는 옷이 맞다. 그러므로 함께 주역인 신랑도 입고 신부도 입는다면 그제야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신부와 신랑이 진짜 주인공이 맞나? 혼주婚主로 불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양가 어머니와 깔끔한 양장을 한 양가 아버지가 혼주석에 앉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이다. 신부 측 어머니는 분홍색 계열, 신랑 측 어머니는 하늘색 한복을 입은 모습이 참 곱기도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이렇게 고정된 혼주석의 이미지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재혼 가정인 경우 난감해 하는 경우도 있다 하니 그냥 주인공 자리를 오롯이 당사자에게 넘기고 양측 가족은 자유로이 축복만 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는 것은 어떨까.
신부가 '버진로드' (번역하자면, 처녀성의 길) 를 걸으며 손이 아버지로부터 남편에게 넘겨지는 의식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고, 그 주인을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과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남편이라는 단어에 ご主人이라는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의 사례를 보자. 메이드 카페에 가면 들을 수 있는 '고슈진사마' 와 동음어이다. 모든 가부장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렇게 노골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거나 더 낮은 위치에 있다는 함의는 결혼식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치사할 정도로 속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청첩장에는 남성의 이름이 앞에 적히고, 식장에 표시되는 이름도 남성이 위쪽이다. '그런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일전을 일한전으로 부르면 큰일이 나고 연고전과 고연전으로 끊임없이 다투는 사회 현상을 보면 사실은 모두가 이것이 중대한 권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례를 보는 분이 불편한 말을 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하거나, '출산율에 기여하라'라고 하는 등…. 그런 말을 들으면 저 대본은 당사자들과 협의가 이뤄진 걸까, 다 미리 어떻게 말할지 의논하고 한다고는 하던데 그렇다면 저들의 결혼생활은 과연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본래 알던 이들을 약간 낯선 느낌으로, 표정을 한 번 더 살피게 된다.
결혼식이 불평등한 방식으로 너무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하루 하는 거, 그냥 보통대로 하고 끝내버리자' 하고 생각하거나, '어차피 부모님 행사인데 원하시는 대로 눈 딱 감고 하자'라고, 생각하는 등의 경우를 보았다. 당사자가 혼인의 주인공으로 불리지도 못하는 만큼 일면 합리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다만 결혼식은 하기로 결정한다면 살면서 한 번 (혹은 몇 번?) 있는 특별한 행사임은 확실하다. 자기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초대해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자리라는 의미가 있다. 결혼을 하는 친구도, 하지 않는 친구도. 결혼식을 하는 친구도, 하지 않는 친구도 모두 축복하지만, 그들을 아끼는 만큼 각자의 개성과 가치관을 발휘할 수 있는 웨딩 행사를 모두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더 이상 청첩장을 받았을 때 '아…. 결혼식 가기 싫다'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