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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도 좋을 꽃

해담's 소로_그

by 해담 Jan 21. 2025


한 해의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좋아하는 파스텔톤 보라색과 노란색, 아기자기한 계란꽃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개꽃을 닮은, 사장님의 서비스 꽃까지 더해진 작은 꽃다발이 어느새 손에 들려 있었다.


24년의 끝을 채울 마지막 마침표가 이 정도의 은은함을 가진 알록달록함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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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선물로 받은 꽃들은 만개한 상태가 많았다. 항상 단명했고, 대신 잘 말려 오래 간직하곤 했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들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화 전의 꽃들도 적절히 섞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꽃꽂이를 시작했다. 특별한 화병이 없어 긴 갈색 술병, 자그마한 화분, 산타 모양의 둥근 병까지 동원했다. 각자의 높이에 맞춰 꽃대를 자르고, 꽃잎을 다듬었다.


창가에도, 침대 머리맡에도, TV 옆에도. 집 안 곳곳에 꽃들을 가져다 두며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물을 머금고, 향기를 내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한동안 생명력이 없던 공간은 작은 숨을 내뿜는 친구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꽃은 피면 시드는 법.


열흘쯤 지났을 무렵, 꽃잎을 터뜨리던 꽃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환경에서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보내줄 준비를 했다. 놓아둔 화병들을 모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싱크대 창가에 놓인 작은 꽃대 하나가 여전히 24년 마지막 날, 처음 우리 집에 온 모습 그대로 있었다.


3주, 꽃잎이 떨어지고 시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 그런데도 그 꽃은 시들지 않았고, 더 피어나지도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이 아이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견디고 있을까.

"나도 저런 모습일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활짝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물을 머금고 살아가는 작은 나무처럼, 나도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주면 설 연휴로 본가에 내려가, 집을 일주일 이상 비운다. 돌아왔을 때 그 꽃대가 살아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설령 꽃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있더라도 괜찮다. 난 그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잘 버텨줘서, 모두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란 걸 덕분에 알았다고. 같은 속도로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다짐해 본다. 적당한 햇빛을 쬐고, 조금의 바람을 맞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나만의 호흡대로 살아가겠다고. 올해는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겠다고.


꽃과 함께한 하루는 그렇게, 나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작은 다짐을 남겼다.



번외. 당신에게 전하는 말.  

어떤 꽃은 금세 활짝 피고, 어떤 꽃은 천천히 자신만의 시간을 채운다.

어떤 날은 쉽게 시들지만, 또 어떤 날은 꿋꿋이 버티며 생명을 이어간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그러니 당신도 조급해하지 않기를.

각자의 호흡대로 피어나기를.


올 한 해, 당신의 시간이 그저 소중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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