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삶은 고구마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할 뿐입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요리를 워낙 좋아했다. 기존 레시피에 변주를 주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자연스럽게 떠올린 진로가 올리브채널 PD였다. 맛있는 음식을 화면으로 옮기고, 사람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전담 교수님과 커리어에 대한 면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교수님은 나를 한 번 훑어보시더니, 짧게 한마디 하셨다. “방송가는 체력도 정신력도 엄청 센데… 네 체구랑 성격이면 버티기 힘들 거다. “
그 말은 칼처럼 짧았다. 그리고 나는 놀랄 만큼 쉽게 그 꿈을 접었다. 다른 가능성을 찾기보단 물러섰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무책임한 방식의 포기였다.
그때부터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그림은 사라졌다. 막연하게는 ‘마케팅’과 ‘기획’ 일을 하고 싶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수업에서 접한 마케팅 원론이 재밌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획과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브랜딩, 캠페인, 프로모션’ 이런 단어들이 주는 어감도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씨앗은 훨씬 더 이전부터 심겨 있었다. 어릴 적, 시장 한가운데서 쌀가게를 하시던 아빠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름대로 디스플레이를 바꿔보기도 했다. 손글씨로 가격표를 써 붙이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먼저 인사하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했다. 주변 가게들과 가격을 비교해 단가를 맞추고, 어떤 말투와 표정일 때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무는지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부터가 마케팅 커리어의 잠재적 시작이었다.
나는 학점도 평균, 대외활동도 평균, 실제 스펙이라 부를 만한 건 거의 없는 취준생이었다. 원하는 기업과 포지션을 위해 무엇을, 어느 정도, 얼마 동안 채워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알아볼 생각도 별로 없었다. 눈앞에 주어진 선택지 중 그나마 덜 불안한 쪽으로 대충 발을 옮기는 삶.
지금도 가끔, 그때 썼던 이력서를 열어볼 때가 있다. JD에 대한 분석도, 구체적인 성과도 수치도 없이 그저 ‘열심히’와 ‘진심’이라는 단어만 도배된 문장들. 이력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나라도 너는 안 뽑겠다…”
서류에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그제야 조금씩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인 준비보단 일단 뭐라도 해보자에 가까운 몸부림이었다. 어느 날, 삼성에서 진행하던 디딤돌 마케팅 인턴 프로그램 공고를 보게 됐다. “교육 수료 후, 희망 기업 인턴 연계” “교육비 지원”
장소는 수원이었다. 더운물, 찬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 문장만 보고 큰 고민도 없이 지원했다. 간단한 면접을 진행했고, 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걸 시작으로 부산에서 수원으로 올라갔고, 타지살이가 시작됐다. (다행히도 큰 이모댁이 교육장소 근처였고, 2층 사촌 언니 공간에 신세를 지고 살았다.)
한 달 동안은 마케팅 실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그다음 3개월은 실제 기업 인턴으로 일하는 구조였다. 그 선택이 내 커리어의 첫 단추였지만 그때의 나는 단추를 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일단 붙었으니 가야지라는 마음뿐이었다.
입사 후, 부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디지털 콘텐츠 마케팅 vs 오프라인 클래스 기획/마케팅.
단순 오피스 업무보다는 기획, 행사 운영, 출장 같은 키워드에 마음이 갔다. 뭔가 더 재밌을 것 같았다. 큰 고민 없이 후자를 골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직하게 말하자면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임산부와 육아맘 대상의 맘스클래스를 운영했고, 자그마한 창고가 하나 있었다. 그 창고에는 협찬사에서 보내온 물품들이 꽉 차 있었다. 출산에 가장 기본 필수템인 기저귀와 물티슈부터 젖병, 아기 간식, 아기띠, 고가의 유모차까지. 보기에는 푸짐하고 풍요로운 풍경이었지만 실제로 그 물품을 옮기는 건 전부 우리의 몫이었다.
오프라인 클래스가 열리는 날이면 지하에서 1층까지 40~50박스가 넘는 물티슈 박스와 물품들을, 먼지를 뒤집어쓰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르고 또 날랐다. 오피스룩? 구두? 그런 건 없었다. 우리는 군대 깔깔이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채 사무실을 나섰다. 엑셀 대신 박스를 들고, 프레젠테이션 대신 카트를 끌던 날들이었다.
그 기간 동안 단순 막일만 했던 건 아니다. 창고 작업은 클래스 운영을 위한 과정 중 하나였고, 행사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기획자로 인정받는 경험도 분명 있었다. 처음으로 진행한 제안서 작업은 회사 우수 사례로 선정되었고, VOC 기반으로 설계한 신규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일 또렷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함께 깔깔이 입고 계단을 오른 동료들이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보내던 몇 달은 ‘경력’이라 부를 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동료애와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만난 몇몇 동료들과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 그 시절의 고생은 흘러가도 사람은 남았다. 긍정적으로 임했던 태도와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도 기록됐고.
시간이 꽤 흘러 지금의 나는 더 많은 포지션과 산업을 경험했다. 데이터도 보고, 퍼널도 그리고, 브랜드 전략도 고민한다. 그 모든 층위 위에 서울에서의 첫 직장, 서초 근처의 첫 독립, 창고의 깔깔이와 목장갑이 아주 조용한 기초층처럼 깔려 있다. 그 경험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선택의 기준도 생겼다. 후회는 없다.
다만, 그 시점에 내가 최소한의 커리어 로드맵을 갖고 준비를 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은 분명히 있다. 경험을 쌓을 무대는 내가 선택한 첫 단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연한 선택도 결국엔 나를 만들어갈 하나의 데이터이자, 어떤 산업과 조직, 역할에 따라 동일한 시간에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은 다를 테니까.
나는 아무 로드맵 없이 시작했지만, 돌아보니 ‘첫 단추’는 꽤 중요했다. 올바르게 끼워 맞추기 위해 방황도 많이 했다. 모든 시간에 남는 건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조금 알고 준비했더라면. 가끔 팀에서 주니어 팀원들과 원온원을 할 때엔 실무만큼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내가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어떤 산업이 나와 잘 맞을 것 같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정도는 적어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보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완벽한 로드맵을 짜라는 말은 아니다. 인생이 그렇게 계획대로 굴러가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시작 전 최소한 준비와 설계를 세웠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첫 단추가 너무 엇나가는 일은
조금 줄어들 테니까.
오늘의 데이터.
“지금의 나는, 첫 단추를 어디에 끼우고 있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