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할 뿐입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9년 차 마케터입니다.
시간이 쌓인 만큼 보고서 쓰는 속도는 빨라졌고, 광고 계정이나 대시보드를 켜면 어디부터 봐야 할지 이제는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럼에도 일은 여전히 어렵고 고민은 줄지 않습니다.
성과 리포트는 나쁘지 않은데, 마음의 온도는 그래프만큼 곧장 올라가 주지 않는 날들이 조금씩 쌓여 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성과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있더군요. '이게 정말 나다운 선택인가?'
1~3년 차의 저에게 커리어란 대부분 비교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링크드인에서 보이는 누군가의 화려한 경력과 높은 연봉, 이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등, 저는 늘 외부 기준으로 제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 시절 모든 것들은 괜찮은 커리어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들이었죠.
마케팅에서는 흔히 퍼널을 그립니다.
인지/유입 → 활성화 → 전환 → 리텐션 → 리퍼럴
이렇게만 두고 보면 참 단순한데, 현실에서는 이 사이사이에 수많은 상황과 변수가 끼어듭니다. 참 쉽지 않죠. 어느 날, 퇴근을 하고 혼자 생각을 끄적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야, 그로스 마케팅이 그냥 인생인데?’
숫자로만 보던 퍼널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 삶의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와 관계는 계속해서 새롭게 유입되고, 연결되다가도 끊어집니다. 어떤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고, 어떤 경험은 재방문처럼 몇 번이고 되풀이됩니다. 마치 서비스 안에서 이탈 유저와 핵심 유저로 구분되듯이요.
하나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퍼널별로 수집된 데이터가 서비스의 방향을 말해 주 듯, 제가 선택해 온 것들은 단순히 커리어가 아닌 저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여정이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저는 프로모션 기획자부터 두 번의 대행사와 두 번의 앱 서비스 마케팅까지, 다양한 업종과 역할을 경험했습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고민의 결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이런 질문들이 저를 더 오래 붙잡습니다.
'이 캠페인이 정말 브랜드 방향에 맞을까? 실제 우리 유저들에게 핏한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멤버들과의 관계는, 과정은, 나는 어떤 상태였지?'
'이 선택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기준과 부합할까?'
예전의 질문이 생존과 외부 지표로 저를 평가한 영역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존재 가치의 레벨로 옮겨온 거죠. 또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바깥으로 향해 있던 질문 방향이 천천히 저를 향해 돌아선 겁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더 애정을 느끼는지, 어떤 팀에서 에너지가 나는지, 어떤 방식의 문화를 원하는지. 일과 관계, 경험과 기록을 통해 쌓인 데이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저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조금씩 보였습니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누군가의 일상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화려함보단 일상에 스며드는 작은 변화에 마음이 가는 사람이구나’
이게 제가 마케터로, 그리고 사람으로서 조금씩 정리한 ‘나답다’는 기준입니다.
물론 성과는 중요합니다. 마케터에게 숫자는 현실의 언어니까요. 하지만 그 기저에는 저를 중심으로 한 레이어들이 더해진 거죠. 업에 대한 태도와 기준, 지속 가능성, 그리고 선택의 조각들이 만들어가는 '브랜드로서의 나'.
하나의 일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데이터와 감정 사이에서 매일 자라나는 관찰과 실험의 기록을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조금은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힌 고구마일 때도, 달콤하고 따뜻한 고구마로 느껴질 때도 있을 겁니다. 어떤 날은 잘 익은 것 같다가도, 여전히 덜 구워진 고구마 같기도 하겠죠. 그래도 언제나 저는 ‘고구마’입니다.
이 글이 무언가에 대한 정해진 답은 아닙니다. 여전히 헷갈리고 흔들리고 매일 고민하면서도, 그럼에도 일과 사람과 삶을 좋아하고 싶은 한 고구마의 기록입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함께라는 마음만 전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 여정이 당신의 나다움을 선택하는 데 작은 소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오늘의 데이터.
“나의 커리어는 지금, ______라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