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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Nov 10. 2022

밥그릇이 깨졌다

떨어지더라도 설마 깨지기야 할까?

은 아침을 먹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밥을 다 먹은 빈 밥그릇에 물을 부어 달라붙은 밥알들을 떼어내고

안에 담긴 물을 마시려고 밥그릇을 들었는데,

그만 밥그릇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내 손을 벗어난 밥그릇은 아래로 떨어지며

내가 앉은 의자 위에서 ‘툭’하고 한번 멈추었으나, 자리를 잡을 공간이 없는지라

중력의 법칙에 따라 다시 떨어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瞬息間의 일이었는데, 또 그 과정이 슬로우모션처럼 눈에 선명했다.

끝내 바닥에 떨어진 밥그릇은 깨져 두 동강이 났다.

만약 바닥이 딱딱한 폴리싱 타일이 아니고

좀 더 부드러운 나무로 된 강화마루였다면

밥그릇은 깨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혹은 내가 민첩하게 손을 뻗어 떨어지는 밥그릇을 중간에 낚아챘더라면

밥그릇은 내 손에서 고이 식탁 위로 다시 옮겨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깨진 밥그릇의 파편이 바닥에 낭자狼藉했다.


밥그릇이 깨진 것을 보고 아내가 내게

“왜 밥그릇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보고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그것이 그때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혹시 내가 손을 뻗어 떨어지는 밥그릇을 잡으려고 했다면 잡을 수는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밥그릇이 떨어지는 순간, 잡으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냥 밥그릇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아무 것도 안한 행동이 할 수 있었는데 안한 것인지,

아니면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안했던 것인지,

혹은 할 수 없어서 못한 것인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밥그릇이 내 의자 위에서 떨어지기를 멈추지 않을까?

혹은 떨어지더라도 설마 깨지기야 할까? 이런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밥그릇은 깨졌고, 십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하던 밥그릇은

아파트 쓰레기장의 재활용 사기砂器 분리수거함에 버려졌다.

“왜 바닥에 푹신한 양탄자 같은 것을 깔아놓지 않았느냐”라든지,

또는 “왜 이렇게 높은 식탁 위에 밥상을 차려 놓았느냐”라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말이었다.


이것이 2022년 11월 5일 토요일 점심때쯤 우리집 식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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