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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Dec 27. 2023

아내의 운전지도(運轉之道)

멀리보고 차량의 흐름을 읽어야 좋은 운전을 할 수 있어요

차를 몰고 대형마트나 병원, 혹은 처음 가보는 곳을 갈 때면 대부분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나는 당연한 듯이 조수석에 앉는다. 아내의 운전 실력과 공간에 대한 감각, 지리에 대한 이해, 심지어는 주차실력까지 나보다 훨씬 낫다고 나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수석에 앉는 순간부터 운전에 대해서는 어떠한 한마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을 코칭하는 것보다 더 우울한 난센스는 없다. 임즉물의任卽勿疑(맡겼으면 의심하지 않는다.)다.

 

얼마 전 아내가 장인어른의 차를 운전해 병원을 가다가 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그냥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아내는 이미 장인어른의 운전 습관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이날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만 운전하며 목적지인 병원으로 조심스럽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장인어른의 운전 간섭이 목사님 방언 터지듯이 도도滔滔해졌다고 한다. “이 길로 가야 하는데, 왜 그 길로 가느냐? 그 길로 가면 돌아가는 것이고, 저 길로 가면 막히는 길이다.”(아, 우리 장인어른은 원래 내비게이션이란 물건을 신뢰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의 경험을 최우선시하시는 분이다.) 차선을 변경하면 변경한다고, 우회전 길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면 그냥 가면 되는데 기다린다고...., 딸 운전에 대한 장인어른의 불만이 쉴 틈이 없자, 참다못한 아내가 화가 나서 “그러면 아빠가 운전하고 가세요.”라 말하고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버스를 타고는 병원 대신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날 이후 아내는 장인어른께 한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고, 장인어른 또한 한동안 딸에게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나중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처남이 아버지에게 왜 그러셨냐고 전화로 한마디 했다가 부자 관계가 소원해질 뻔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아,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원래 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아내는 어깨가 아파서 운전하는 것을 힘들어했다.(아내는 몇 년 전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많이 아파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그날 장인어른 차를 운전하러 간 것이었다.) 그래서 근래에는 나의 운전이 가끔에서 자주로 단어 선택을 변경하게 됐다. 하지만 난 원래 운전을 좋아하지도, 또 그렇게 썩 잘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인지능력까지 떨어져 운전이 더 서툴러졌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차를 몰지않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아내의 옆자리에서 그저 침묵의 도를 수행한다.

 

하지만 시국이 하 수상하고 어수선한 최근 어느 날, 늘 내가 앉아 있던 조수석을 아내가 차지하자 어쩔 수 없이 운전석을 차지하게 된 내가 처가妻家였던가?, 아니면 병원이었던가?,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요즘 당신 운전이 너무 이상해졌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그래요?” 내 운전이 불안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자주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고, 나의 브레이크에 아내는 자주 몸이 앞으로 쏠렸고, 앞으로 쏠린 다음에는 뒤로 몸이 튕겨졌다. 브레이크 중에서도 급브레이크였다. “앞 차만 봐서 그래요. 앞 차의 움직임에만 반응하다 보니 급브레이크가 나오는 거예요. 운전을 할 때는 앞 차의 앞 차, 멀리 보시고, 차량의 흐름을 보세요. 그래야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아요.” “멀리 보고 넓게 보라고/하느님이 내게/선물을 주셨다.(拙詩 ‘노안老眼’)”며, 깊은 이치라도 깨우친 듯 시도 한 편 썼었는데, 내 이치는 어설퍼서 아내의 운전지도運轉之道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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