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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Mar 23. 2023

고양이에게 보은 당하다

텃밭이라 쓰고, 중노동이라 읽는다

첫 번째 이야기


시골집 주변에 자주 눈에 띄는 길고양이들이 몇 보입니다. 주인집에 허락을 받고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 비싸지 않은 사료를 사서 그릇 두 개를 가득 채워놔 봤습니다. 신기하게 사람이 없을 때 먹고 가는지 얼마 뒤에 보면 비워져 있어요.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자 두 마리의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걸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외출해서 돌아오면 '애미야, 밥그릇이 비었다.' 하는 것 마냥 눈에 아주 잘 보이게 숨어서 "야옹"합니다. 이 둘을 하양이와 얼룩이로 이름을 지어주었어요.(아주 직관적이죠.)

보는 걸 허하노라


그리고 하양이는 이제 자신의 궁둥이를 보여줍니다. 고양이가 궁둥이를 보여주면 친해진 거라고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다리에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벌러덩 자빠지기도 합니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였을까요? 개냥이인 듯 애교도 부리고 말을 걸면 대답도 해줍니다. 왠지 퇴청까지 올라오며 쳐다보는 걸 보니 집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예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하니 슬쩍 내려가 줍니다.


고양이랑 놀아주기? 고양이가 놀아주기?


그러던 중 주말 아침, 퇴청 앞에 무언가 놓아져 있네요. 그 주변을 하양이가 어슬렁거립니다.


응? 꼬리가 기네요.

... 움직이지 않습니다.


딱 밟기 좋은 곳에 놓인 그것은 바로... 새끼 두더지였어요.


그냥 두더지도 본 적이 있나 싶은데 새끼 두더지는 생전 처음이에요. 그것도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니요. 생명이 꺼진 무언가를 보는 건 삶에 찌든 어른에게는 "흐익!" 할 만한 일이지만 애들은 좀 신이 났습니다. 하양이에게 선물을 받은 것 같은가 봐요.

원하시면 사진 내릴 수 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 걷고 있는 하양이.

이렇게 고양이의 보은을 당해버렸습니다.


보고 있을 때 치우면 안 된다고 하여 하양이가 밥을 먹고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어요.


정말로 보은인지 단순한 고양이의 사냥 본능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냥 보은 당했다고 생각하려고요. 


하양아, 지네와 쥐를 멀리 쫓아내 줄 수 있겠니?

그리고 보은은 이제 충분하단다.



두 번째 이야기


주인집 사장님의 권유로 작은 텃밭을 일궈보기로 했어요. 뭔가 시골 생활의 로망이 아닐까요? 집 근처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공급받아 식탁에 올리는 것. 그 로망 하나를 한 번 이뤄보겠다고 남편과 의지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제공받은 땅은 그냥 잡초가 무성한 곳.

이랑을 만들어야 뭘 심어도 심을 수 있으니, 식물 재배 경력 제로의 두 사람은 의지만 가지고 삽과 괭이를 들었습니다. 하필 구름 한 점 없한낮에 말이죠.

밭 가는 아씨


농사는요,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드넓은 밭도 아니고 2평 남짓의 텃밭 이랑을 만드는데 쓴 몸은 왜 두들겨 맞은 것 같을까요?


민들레와 쑥은 뿌리가 내핵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듯 파도 파도 나옵니다. 머리채 잡고 한 번 붙어보자는 심정으로 뜯어 내고 또 뜯어 냅니다.


원래 땅 속에는 돌이 그렇게 많은가요? 박혀 있는 돌을 파내니 담장을 쌓을 수도 있겠어요.


커서 뭐가 될지 모르는 굼벵이는 처음 볼 때만 놀랍지 10마리가 넘어가니 손으로도 잡을 지경입니다.


일어나렴, 경칩 지났다


경칩이 지났는데 늦잠 자는 개구리님 모닝콜 서비스도 해드렸네요. 암요, 물가까지 대리 운전도 가능하죠.


군대 사전 체험


애미, 애비는 허리가 휘고 손가락 마디가 저린데, 아들내미는 아주 신이 났어요. 굼벵이를 모두 잡아 채집통에 모아두고(물론 다시 묻어 드렸습니다.) 잠이 덜 깬 개구리의 꿈벅거리는 눈에 까르르 넘어갑니다. 눈으로 배운 삽질도 제법 따라 하며 도와줬다 거드름도 피우네요.


처음에는 만져보지도 못하던 각종 곤충과 굼벵이를 이제 손으로 잡아내는 아이가 되었어요.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볼 수 있는 광경이 아이의 마음속을 좀 더 풍요롭게 채워주었겠지요? 그렇다면 파스 붙이는 거, 그까이것 일도 아닙니다.


비포 앤 애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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