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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Dec 14. 2023

나는 누구인가... 다른 이들 없이?

함께 살기 

나는 누구인가... 다른 이들 없이, 혼자

     

프랑스 어린이책에서 자주 발견하는 테마는 “함께 살기”다. 프랑스 파리는 다국적의 도시이다. 국제적인 도시라 불리는 인터내셔널 도시 (ville internationale)이기도 하지만 코스모폴리트 도시(ville cosmopolite)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들 즉 프랑스사람들에게 외국인으로 불리는 외국인이 대략 2017년 기준으로 176개의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 아파트 건물의 이웃으로 아래위 또는 옆집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그냥 다 다르다. 다 다른데 다 같이 모여 산다.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보면 내가 언제 라오스(Laos)라는 나라에 가 볼 것이며, 조지(Georgie)라는 나라에 갈 수 있을까. 사실 조지라는 나라는 얼마 전 처음 들어본 나라이다. 파리 아니면 그 여러 나라 출신의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여러 번이다.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함께 살아가기”는 꽤 중요하고 일상적인 문제임이 틀림없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서도 이 테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함께 어떻게 잘 살아갈까에 대한 문제는 먼저 ‘자아 형성’을 요하는 게 일반적이다. 프랑스 어린이책의 제목에서부터 “자아” 혹은 “나”에 대한 표현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자아를 인식하고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 역시 모든 이들에게 중요하며 특히 어린이에게 더없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의제에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그림책 중에 “내 곰 인형” ( Mon ours a moi)라는 글 없는 그림책이 있다. 문학 비평가이고 어린이 그림책의 전문가인 소피 반 데르 린덴 (Sophie van der Linden)은  “글 없는 그림책”은 텍스트를 제거한 그림책이 아니며,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이어지는 즉 이미지로 이루어진 그림책이라고 전한다. 글 없는 그림책의 애초 목표는 어린이들이 말을 배울 수 있게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자체로 하나의 어린이문학의 장르가 될 정도로 발전해 온 게 사실이다.      

내 곰 인형

“내 곰 인형”은 케라스코에 (Kerascoët)의 그림으로 2023년 8월 파스텍 출판사에서 발행된 된 36쪽 분량의 그림책이다. 어린이에게 (곰) 인형은 뗄 수 없는 단짝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어느 순간은 그 단짝과도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곰 인형을 세탁할 때라든지, 학교에 갈 때라든지 단짝과 헤어져야 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곰 인형과 함께 사는” 어린이    

 

누구나 어린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린이 그림책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책은 서로 다른 두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책을 어른이 구매를 하고 어린이에게 읽어준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어린이”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의 등장인물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 등장인물은 어린이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 독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린이의 세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때론 아이와의 관계 또는 아이에게 무심코 한 행동을 되짚어볼 수 있다.     

 

아이는 곰 인형과 함께 산다. 함께 자고, 함게 밥을 먹고, 함께 놀고, 속내 이야기를 하고, 정성껏 돌본다. 유치원에서 배운 재미난 것을 인형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쳐 준다

그림책 “내 곰인형”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 곁에 늘 ‘곰 인형’이 있다. 아이가 누워있을 무렵엔 마치 장식처럼 우두커니 아이 곁을 지킬 뿐이다. 그러나 차츰 아이와 크기가 비슷한 곰 인형은 아이 삶의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곰 인형과 함께 자고, 밥을 먹고, 놀이를  하고, 때론 엄마에게 안 하는 속내 이야기를 한다. 곰 인형이 피곤해 보일 땐 정성껏 돌보고 유치원에서 배운 재미난 것들을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아낌없이 가르쳐 준다. 그뿐인가 어쩌나 화가 나면 애꿎게도 곰인형에게 화풀이도 한다. 곰인형과 모든 것을 같이 하면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며 “함께 살기”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분리' '헤어짐'은 아이에게 직면할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그림책은 아이에게 물리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한다. 아이는 곰인형에 대한 그림움을 그림으로 승화시킨다

어쩌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곰 인형으로 인해 위안을 받는데, 곰 인형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어쩌면 아이에겐 가장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바로 학교에 가야 할 때이다. 유치원은 간혹 곰 인형을 동행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낮잠 자는 시간에 함께 잠자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학교는 유치원과 다르다. 아이는 곰 인형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참고 학교에 가지만 내내 곰 인형 생각뿐이다. 다행히도 어린이책은 늘 어린이 독자에게 일상에서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 중의 하나를 제시한다. 당연히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아이는 미술 시간에 자신의 곰 인형을 그리며 그리움을 달래는데 꽤 만족스럽다. 어린이 / 미디어 시민단체 설립자인 데니즈 본 스토카르 (Denise Von Stockar)에 따르면,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가 가상의 등장인물이 행하는 모습에서 자신과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고 확언한다. 어린이 독자는 분명 그림책의 등장인물인 아이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만들어간다. 그림책 “내 곰인형”은 어린이 독자에게 ‘분리’ 혹은 ‘헤어짐’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아이를 보여주며, 물리적인 헤어짐은 아주 잠깐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헤어짐’은 아이를 독립적인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을 둘러싼 또 다른 여러 사람과 혹은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와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른 독자의 관점에서 이 그림책을 살펴보면, 아이 아빠가 곰 인형을 세탁하기 위해 강제로 아이에게서 곰 인형을 빼앗는다. 아이는 두려움에 얼굴이 빨개져서 울고,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곰 인형을 보면서도 빨개진 얼굴을 수습하기 어려워 보인다. 곰 인형과 아이와 함께 목욕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아이는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어른의 무심한 행위가 아이의 자아에 상처를 낼 수 있다. 가슴 아픈 장면이다.   

   

위 그림책은 글 없는 그림책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 아이에게 어떻게 읽어줄 것인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나란히 앉아서 아이가 스스로 그림을 읽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소피 반 데르 린덴은 강조한다. 어른은 아이가 그림을 읽는 리듬을 살펴 가며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이는데, 이는 아이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다. 아이가 어느 장면에서 더 오래 집중하는지 어느 장면에서 웃음 짓는지 혹은 찡그리는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또 다른 두 권의 그림책 “나도, 난 아니야” 는 마리오 하모스(Mario Ramos) 작가의 컬렉션이다. 이 그림책은 동물들과 아이 사이의 단순한 차이를 유머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동물들과 비교하면서 아이는 자기 자신을 조명할 수 있다. 우리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들과 같은 점도 있고 또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와 강아지, 원숭이, 코끼리, 양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비슷할까?    

  

"나도, 난 아니야" 1, 2 <코끼리는 엄마를 좋아야 / 나도>,  <강아지는 밖에 나갈 때 목줄을 해 / 난 아니야> 

이 그림책은 어린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동물들이다. 어린이책에 왜 동물들이 자주 등장할까? 페르 카스토르의 편집장인 폴 포쉐(Paul Faucher)는 어린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동물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평한다. 동물의 삶은 어린이를 사로 잡기 충분한데, 동물들의 생존 본능, 모성 본능, 두려움, 배고픔, 그리고 재치, 교활함, 도주, 공격 등 동물의 특성으로 인해서 말이다. 어린이는 의인화된 동물을 자기 자신이 투영된 모습으로 여긴다. 어린이는 인간에 반해 동물의 행동은 그릇되거나 왜곡되지 않았음을 직감한다고 설명하다.       


어린이는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이 세! /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져!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이 세” 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있어” 역시 마리오 하모스 작가의 그림책이다. 이 두 그림책은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인물이다. 엣이야기에서 교활하고 잔인한 동물로 유명한 늑대가 이번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멋지다고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묻는다. 자신을 우러러봐주기를 원한다. 잘 알려진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등장한다. 빨간 모자, 아기 돼지 세 마리, 일곱 난쟁이, 백설공주까지. 대부분이 늑대의 물음에 “당신이 제일 힘이 세고, 멋지십니다”라고 대답한다. 늑대는 “진실은 어린이의 입에서 나온다” 며 무척 흡족해한다. 정신 심리학자 피아제는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3단계로 나누며, 첫 단계에서 “어린이는 입으로 생각한다고 믿는다”라고 한다. 즉 말이 곧 생각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매우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말한다.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고 돌려서 말할 줄도 모른다. 익히 알려진 옛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인 빨간 모자, 아기 돼지 세 마리, 일곱 난쟁이, 백설공주 등은 이미 사나운 늑대를 만나본 경험이 있다. 그들은 늑대에게 생존본능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제일 힘이 세고 멋져요” 그러나 아기 공룡은 다르다. 늑대를 만난 경험이 전혀 없는 아기 공룡 역시 아주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늑대에게 대답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힘이 세고, 우리 아빠가 제일 멋져요”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늑대의 태도이다. 늑대는 아기 공룡과 함께 있는 커다란 형체를 발견한다. 아기 공룡이 “그럼 넌 누군데?”라고 묻는 물음에 늑대는 “난 아주 착한 작은 늑대야”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늑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세지도 멋지지도 않다는 아기공룡의 말을 받아들인다. 진실은 어린이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을 진정 믿는 늑대가 참 솔직하다. 어린이처럼 말이다. 늑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다른 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고려하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편집자이며 역사학자인 알벵 스리지(Alban Cerisier)에는 “두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림책은 친숙한 동물과 어린이들의 우정관계를 그리고 있다”라고 전한다.      

그림책 “나도, 난 아니야” 시리즈에서 예를 들면 “원숭이는 손이 4개야./ 난 아니야” “코끼리는 엄마를 좋아해 / 나도”에서 보듯이 어린이와 동물들과의 관계를 재미있게 친숙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책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아이들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위 그림책은 텍스트에서 드러난 것 이외에 아이와 함께 놀이로서 다른 이들과 같은 점 다른 점을 찾아가는 놀이로 활용해도 무난하다.      

"공원" : 다른 이들이 존재하기에 나 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함께 산다.

또 다른 그림책을 보면, 글 없는 그림책으로서 잔 아즈베(Jeanne Ashbé)의 “공원”이 있다. 이 그림책은 “루(Lou)와 무프(Mouf)의 이미지들”이라는 시리즈의 하나이다. 루는 어린아이이고 무푸는 루의 절친 인형이다. 공원에서의 루와 무프의 일상을 보여 주고 있다. 루는 늘 인형 무프와 함께 있는데, 킥보드도 타고, 그네도 타고 말도 탄다. 미끄럼틀은 물론이거니와 모래놀이도 같이 한다. 루와 무프는 오리에게 풀도 뜯어준다. 또한 공원에서 아이가 놀다가 다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이의 일상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이 존재하기에 나 역시 존재한다       

다른 이들 없이 나 혼자? 물건도 동물도 사람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 존재의 의미가 부여된다. 어린이 그림책은 '함게 살기'를 구체화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그림책의 레이아웃을 보면, 왼쪽 페이지엔 물건들을 예를 들면, 그네, 미끄럼틀, 일회용 반창고, 모래밭, 등을 배치하고 오른쪽 페이지엔 아이가 왼쪽의 물건들을 가지고 노는 활동을 배치하고 있다. 왼쪽에 배치된 물건들은 혼자서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을 가지고 활동을 했을 때 의미가 부여된다. 아이는 기구를 가지고 놀 때 기쁨이 두 배 이상이다. 그것도 혼자 놀지 않는다. 인형도 같이 있고, 동무들도 있다. 아이가 다리를 다쳤을 때 누군가 일회용 반창고를 아이 다리에 붙여준다.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면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의 아픔이 반은 줄어든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공원에서 동물은 장식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다. 아이들이 오리에게 말을 걸고 풀을 뜯어주면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소통하고 있다. 물건, 동물 사람들이 다른 존재들을 서로서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림책은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네트워크에서 에피소드 하나를 읽었다. 한 아이의 엄마는 2살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누가 노래를 제일 잘해?라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내가 제일 잘해!”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럼 누가 춤을 제일 잘 춰,라고 물었더니 “내가 제일 잘 춰!”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객관화가 전혀 안되어있다고 한다. 그림책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에게는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며,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어른에게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린이의 세계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어린이책으로 모든 이들을 초대하고 싶다.      

많은 어린이 그림책이 자아 형성, 자아 인식, 그리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어린이가 한 존재로 거듭나는데 꼭 필요하다. 나는 다른 이들 없이, 나 혼자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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