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느린 걸음에서 찾은 나를 위한 위로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참 많은 긴장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며, 일정표를 살피고, 예약해야 할 곳들은 미리 예약하고, 다른 일정은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일정 중에 몬세라트 수도원 방문이 있었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투어를 고민하다가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 우리끼리 천천히 다녀오기로 했다. 커다란 바위산과 고요한 수도원이 주는 평온함을 기대하며 일정 중 컨디션이 괜찮을 것 같은 날로 잡아놓았다. 왕복 티켓은 현장에서 구매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 싶어서 예약을 하려 했더니 원하는 시간에 티켓이 없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비 예보였다. 결국 우리는 일정을 변경해 아이가 더 좋아할 만한 해양박물관, 피카소 미술관, 아쿠아리움 등 실내 볼거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변경한 일정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는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여행의 피로가 몰려왔는지 둘이서 함께 졸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고, 다음 날엔 반드시 몬세라트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침이 오자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조금 더 자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중간에 무리하면 끝까지 건강하게 마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변화가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결국 천천히 흘러가는 물처럼 조금 느리고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바르셀로나 곳곳을 천천히 살펴보며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실 여행을 준비할 때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더 지쳐 있었다. 아이는 번역기를 돌리며 열심히 관찰하고 기록했지만, 나는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아 쉬기 일쑤였다. 발가락의 굳은살이 걸을 때마다 연한 살을 눌러 아팠고, 발목과 허리까지도 통증이 이어졌다. 사진 속의 나는 살이 쪄 있고 지쳐 보여서, 그동안 참 고생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해서, 늘 내 어깨는 무거웠다. 그러다 이 낯선 도시에서 사진 속의 나를 마주한 순간,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사진 속 내 모습은 멋지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 한편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지쳐 있었구나. 이렇게 힘들었구나. 비로소 스스로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나라고, 앞으로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 사진으로 남기자고 다짐했다. 아이는 벌써 다음 여행을 5년 후로 정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는 내 일상도, 마음도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으면 좋겠다. 너무 많은 짐을 혼자 짊어지고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나를 다독였다.
이곳에서 마주친 자유로움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만의 속도를 찾았다. 그 하루하루가 행복이었다.
물론 모든 순간이 평화롭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여행 중 아이와 마음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아이에게 천천히 설명해주면 잘 통하기도 했지만, 반복해서 이야기했음에도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곤 했다. 어찌 모든 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는가. 아이와 내가 여행을 왔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모든 무거운 목표와 완벽한 계획을 내려놓고 그저 편안하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 속의 나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때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고. 너무 열심히만 살았으니 이제는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아이는 사실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천천히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조급하게 재촉하기보다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자세히 보려는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어 나도 천천히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두 번이나 찾고, 구엘 공원을 재방문하며, 까사밀라의 커피숍에서 느긋하게 쥬스를 마시며 쉬기도 했다. 박물관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아쿠아리움 관람을 저녁으로 미루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이 여행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아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난다는 사실을, 나는 이 여행에서 매일매일 다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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