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지키는 선택
나는 묵묵히 살면 인생도 저절로 풀릴 거라 믿었다. 그러나 전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실패가 찾아왔다. 그 전까지는 나를 믿고 묵묵히 살아왔지만, 그 일은 그 믿음을 산산이 깨뜨렸다. 더는 나를 믿지 못하던 시절, 상담을 치열하게 받고 새로운 경험을 하나씩 쌓으며 겨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이 내 마음 깊은 상처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특히 큰 결정을 앞두면, 예전처럼 곧바로 도전하지 못하고 몇 번이고 점검하고 확인하며 현실적인 시간표를 그려 넣는다. 그래서 이 선택이 이렇게도 무겁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켜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잘 안다.
밤마다 나는 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실거래가, 금리, 월 상환액. 지도 위에 동그라미는 늘어 갔지만, 내 안은 점점 비어 갔다. 불안은 나를 사람들 쪽으로 밀었다. 전문가의 말, 지인의 조언, 익명의 글. “어디가 더 좋아요?” 확신 같은 문장을 빌리면 잠깐은 편안했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불안은 더 커졌다. 남의 확신은 내 불안을 데려가 주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을 풀기 위해 하루 연차를 내고 잘 쉬었다. 일부러 천천히 밥을 씹고, 집안을 조용히 거닐며 숨을 고르게 했다. “오늘만큼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반복했다. 그러나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부동산 사장님들의 문자가 이어졌다. “사모님, 오늘 6시~6시30분에 집 볼 수 있을까요?” “남편분은 마음에 들어하시는데, 여성분이 아직 고민 중이시고 내년 1월 이사라 시간이 좀 남았어요.” 잘 쉬었던 하루의 여운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현실의 무게가 스며들었다.
나는 분명 퇴근 이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는데도, 더 빨리 볼 수 있냐는 연락이 재차 이어졌다. 최대한 맞춰주려 시간을 당기려 했지만,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나다운 게 뭘까?’ 그래서 결국 내 루틴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휴가 갔다 와서 일이 많아 평일은 어렵다, 주말 중 가능한 시간을 조율하자고 문자를 준비해 두었다. 아직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준비조차 나를 지키려는 노력이고, 또 하나의 연습이었다. 쉼과 고민이 교차한 하루는, 오히려 다음 선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집을 고르는 일은 결국 내 삶의 방향을 고르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고민은 두 갈래 사이에 머물렀다. 지금 당장 편안한 곳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오래도록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것인가. 또다시 이사를 하게 되면, 그 이동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 오늘의 편안함도 소중하지만, 내일의 안정감 또한 놓칠 수 없었다.
어느 밤, 계산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이 집에서 나는 편안할까?” 질문이 바뀌자 지도가 달라 보였다. 가격의 곡선 대신, 내 호흡의 길이 보였다. 출퇴근이 짧으면 아침의 문장이 살아난다. 저녁의 운동이 빠지지 않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진다. 하지만 편안한 곳엔 불쑥 불러낼 친구가 없을 수도 있다. 교육이 든든한 곳에선 마음이 놓이지만, 긴 이동은 피곤을 하루치 더 얹는다. 삶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일임을 알았다. 그때, 아주 단순한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편안해야, 내가 행복하다.”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기준이 아니라 조건이어야 한다. 기준은 언제나 나의 편안함, 조건은 그 편안함을 지켜 줄 방법. 여행을 다녀온 사이 부동산 시장이 조금 오른 건지, 연락이 더 많아졌다. 연락이 몰리자 아차 싶었다. 내가 책정한 값이 낮았던 것이다. 그래서 가격을 천만 원 올렸다. 그래도 연락이 계속 온다면, 한 번 더 천만 원을 올릴 생각이다. 그건 남의 확신이 아니라, 상황을 바라본 내 판단이었고, 그 역시 하나의 연습이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를 믿는 과정의 일부였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는 지도를 접고 내 계획을 펼쳐 정했다. 꼭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장기 목표와 루틴을 적고, 출퇴근·글쓰기·아이의 길·친구와의 거리·밤의 고요에 점수를 매겼다. 그 표 위에서야 비로소 내가 살고 싶은 하루가 또렷이 보였다. 내가 장기 목표를 세우고 플랜을 짜는 건, 일상에서의 반복이 힘겹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고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미리 그려 두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면 희망이라는 따뜻함이 생겨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다시 힘이 난다.
나는 오늘도 지도를 켠다. 그러나 동그라미를 그리기 전에 심호흡을 먼저 한다. 그리고 세 가지를 묻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숨이 고르게 쉬어지는가.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을 따라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는가. 퇴근길의 마음이 너무 무겁지 않아, 아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세 가지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집이다.
나는 안다. 도시는 변하고, 아이는 자라고, 꿈도 자란다. 집은 언젠가 다시 옮길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의 선택은 오늘의 나를 지키는 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남의 확신 대신, 나를 믿는 연습으로. 행복은 먼 미래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내 루틴을 지켜 주는 오늘의 선택에서 온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전하고 싶다. 남의 확신보다 당신의 속도를 믿고, 그 속도 안에서 편안함을 지켜 가길 바란다. 작은 호흡과 작은 선택이 모여 결국 당신을 단단하게 지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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