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금 더 나답게 살기로 했다
모든 일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평범한 하루였다. 정신없이 몰려드는 업무 속에서 숨 돌릴 틈조차 없던 오후, 휴대폰이 울렸다. 집을 보러 와도 되겠느냐는 부동산의 연락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새로운 시작의 예감이 잔잔히 밀려왔다.
일찍 퇴근해 집으로 향했다. 서둘러 공간을 정돈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곧이어 현관 앞에 선 사람들은 결혼을 앞둔 젊은 부부와 그들 곁을 지켜보는 어머니였다. 그들이 집을 둘러보는 동안 얼굴 위로 번지는 은은한 미소와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들이 건넨 제안은 예상보다 더 깎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날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보류했다. 그들이 떠난 뒤, 다음 날 규제 소식이 찾아왔다.
다음 날,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듯 그들이 다시 연락했다. 동시에 부동산 중개인은 내가 이사할 집의 중개수수료를 반만 받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매도 계약을 마음에 새기자마자 그간 눈여겨봤던 동네의 집들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틈날 때마다 여러 동네를 산책하듯 거닐며 마음이 이끄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고민하게 된 곳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오래되었지만 학원이 즐비한 곳이었고, 또 하나는 회사와 마트, 도서관, 공원, 학교와 학원이 가까이 있는 새 아파트였다. 한쪽은 학원을 위한 에너지를 더 쏟아야 했고, 다른 쪽은 내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곳이었다. 학업과 숙제에 치여 아이에게 날카로운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 옆에서 책을 읽고, 아이와 함께 편안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원하는 학원은 셔틀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머리가 아닌 마음이 내린 결정이었다.
늦은 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은 예산을 다소 넘겼지만, 현관문을 열자 잘 정돈된 공간과 넓게 트인 남향의 따스한 햇살이 그려졌다. 마음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여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불안 속에 모험하는 대신, 평온과 안정을 선택했다.
밤이 깊은 시간, 매수인이 요청한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며 매도 계약을 마쳤다. 곧이어 이사 갈 집의 계약도 성사됐다. 다음 날이면 달라질 대출 한도액 때문에 급박했지만, 차분히 일을 처리했다. 모든 일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모든 계약이 끝나자 문득 미소가 번졌다. 오랫동안 묵직하게 얹혀있던 마음의 짐이 내려앉았다. 나답게 살고 싶다던 바람이 비로소 현실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이 집은 그저 새로운 거처가 아니라, 내게 다시 시작할 용기와 여유를 주는 공간이었다.
이 결정이 옳았는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옳은 결정이라 믿고 싶다. 이제 우리는 더 넓고 밝은 곳에서, 더 나답게 살아가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다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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