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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16. 2021

옷장과 마음

New York Comic Con을 보면서

요 근래 출근길에 영화만화 속 인물처럼 꾸민 사람들 부쩍 늘었다. 머리 색깔부터 옷의 매무까지 정말 공을 많이 들인 듯 복장의 사람들이, 는 길에 있는 전시회장 앞에서 순서를 기다. 몇 달 전만 해도 임시 지정된 백접종센터는데, 제는 천막과 함께 New York Comic Con이라는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알록달록 물들인 머리에 짙은 화장과 함께 찢어진 셔츠를 입고 나온 사람도 있고,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한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길을 건너는 모습도 보다. 모두가 한 번은 되고 싶었던 상상의 모습을 겉으로라도 되어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뜩 신이 난 사람들을 보면서 는 무엇을 입고 싶을까 각을 다.


휴일이면 나는 옷장 앞에서 긴 고민을 한다. 출근 복장이 아닌, 직접 고른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 시도해 탓에, 부조화스럽기 일쑤였다. 이 분야에 일가견이 없다 보니 안전하게 선물로 받은 옷을 닳을 때까지 오래 입는 편이다. 그러면 되려 준 사람이 그만 입으라고 설득는 경우 . 학교 1학년 때는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 청바지에 넣고 가죽 벨트에 배바지로 다녔는데, 검은색 뿔테 안경까지 쓴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교수님이라고 불렀었다. 대학교 첫 수업 때 앉을자리를 찾던 내가 교단 앞에서 서성이자, 착각한 동기 중 한 명이 나에게 기말고사 날짜를 물어보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New York Comic Con 행사가 한창이다. 출처: TimeOut

교복, 군복과 양복은 나에게 이러한 고민거리를 해결해줬다. 학교에서는 입어야 할 옷이 한정되어 있었고, 같은 나이의 친구들 함께 비슷한 수업을 다. 군대에서는 모두 짧은 머리를 하고 보급받은 옷으로 지내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계급과 함께 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회사 또한 마찬가지로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입고 사무실에서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멀리서 나를 보았을 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하는 것은 나의 옷이었다. 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주어진 드레스 코드가 나는 편했다.


그 와중에 몇몇 친구들은 기발하게 발산할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기숙고등학교 당시 수의 돋보였던 옷차림은 연어 색처럼 강한 단색의 바지에 보색의 와이셔츠를 입는 것이었다. 이 위에 어울리는 무늬의 재킷이나 벨트에 나비넥타이까지 매면 캠퍼스 내에서는 완벽한 패션의 완성이었다. 엄격한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발랄한 표현방식이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종종 보이는 검은색 정장 바지 아래 소심하게 숨어있는 무지개색 양말들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 기숙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이다. 나름 규정 안에서 구축한 패션이 돋보인다. 출처: Business Insider

신체적인 외모와 별개로,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과 상태를 달하는 매개이, 되고 싶은 모습을 본뜨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유행은 그 세대가 동의하는 범주의 것이고, 그것이 이전 세대에 대한 반항 또는 향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강한 영향은 소속감을 부여하면서, 설적으로 개인을 구속기도 한다. 공동체의 색깔이 곧 개인의 색깔이 될 때가 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페르소나 꾸미기 위해,  동체의 옷을 입고 문을 나선다.


나 자신을 소개할 때에 가장 먼저 오는 것은 직업이고, 그다음은 학교다. 내가 입은 정장은 첫인상을 각인시켜주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에 그들이 속한 곳을 보려 한다. 하지만 New York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이러한 나의 잣대를 서서히 무너뜨리게 했다. 페에서 시간제로 일하면서 밤에는 재즈 드럼을 연주하는 이도 있고, 밤늦게 야근하는 은행원이지만 주말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절대적인 기준은 무뎌지고, 이질적으로 느껴 차림새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배워가는 게 점점 익숙해져 간다.

정장 외에 걸어둘 옷들을 찾아보려한다. 출처: Pixabay

나는 나의 시선이 아닌, 남의 시선으로 자주 나의 옷장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옷장을 열고 나서 지레 겁을 먹고 전에 입어보았던 옷만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울리지 않은 색깔과 무늬의 옷을 맞춰보는 것은 당연한 시행착오. 같은 치수에 같은 색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는 옷이 될 수 있다. 스로 울리는 옷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이제는 존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으로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장인이기도 하지만, 락과 재즈를 좋아하고, 베이킹과 요리를 좋아하는 나이기도 하다. 조만간 나옷장을 꾸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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